사진/옛추억담기

2만원짜리 모나미 볼펜

하마사 2014. 1. 25. 12:57

'7080세대'는 중·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주로 만년필을 입학 선물로 받았다. 국산으론 빠이롯트 만년필이 인기였다. 미제 파커 만년필이라도 들고 다니면 친구들 사이에서 부잣집 아이 대우를 받았다. 학교에서 글씨 연습을 할 때는 펜대에 끼운 양철 촉에 잉크를 찍어 썼다. 볼펜으로 연습하면 글씨체가 나빠진다며 선생님들은 꼭 펜으로 쓰라고 했다. 펜대를 잊고 간 날엔 모나미 볼펜 꽁무니에 펜촉을 끼워 쓰곤 했다.

▶하얀 플라스틱 육각 몸체를 지닌 모나미 볼펜은 쓰임새가 많았다. 손에 쥘 수 없게 짧아진 몽당연필은 마구리를 칼로 깎아 모나미 몸체에 끼워 썼다. 늘어진 카세트테이프는 구멍에 모나미를 넣어 돌려 팽팽하게 조였다. 1970년대 교실에선 너도나도 손가락으로 볼펜을 돌려댔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 몰래 볼펜 돌리는 재미가 짭짤했다. '1958년생 개띠'들이 만든 묘기라는 얘기가 있다.

만물상 일러스트

▶볼펜은 광복 후 미군이 선보였다. 처음엔 신문기자가 많이 써서 '기자 펜'이라 했다. 언론계에선 취재기자를 '볼펜'이라는 은어로 불렀다. 1942년 아르헨티나에서 볼펜 상용화에 성공한 라즐로 비로도 헝가리 신문기자 출신이었다. 한창 취재하는데 만년필 잉크가 말라버리는 게 짜증 나 볼펜을 고안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1958년 왕자화학공업사가 처음으로 볼펜을 생산했다. 그러나 볼펜 시장은 1963년에 나온 모나미 볼펜이 장악했다.

▶상표 모나미는 프랑스어 'Mon Ami(내 친구)'에서 따왔다. 처음 모나미 볼펜 값은 15원이었다. 신문 한 부 값에 맞췄다고 한다. 필기구 업체 모나미가 모나미 볼펜 생산 50년을 기념해 한정판 볼펜 1만 자루를 내놓았다. 몸체를 플라스틱 대신 황동으로 만들어 니켈과 크롬으로 도금했고 독일제 고급 잉크와 심을 썼다. 한 자루 값을 일반 볼펜 200원의 100배, 2만원으로 매겼는데도 하루 만에 매진됐다고 한다.

▶중장년에게 모나미 볼펜은 필기구 이상 의미를 지닌다. 이름처럼 아날로그 시대에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동반자다. 속도와 효율을 받드는 디지털 시대에 손으로 글 쓸 일이 줄면서 볼펜은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하루 120만 자루에 이르던 모나미 볼펜 생산량도 20만 자루까지 줄었다. 모나미도 이젠 필기구 생산보다 사무용품 유통에 눈을 돌려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추억은 추억일 뿐인가. 아날로그 시대엔 '대중화'가 성공 방정식이었다. 한정판 모나미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서 디지털 시대를 '소품종 고급화'로 헤쳐나갈 가능성을 본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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