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기타자료

클림베 보고서

하마사 2013. 12. 14. 09:14

2000년 2월 영국의 한 병원에 빅토리아 클림베라는 여덟 살 소녀가 실려 왔다. 저체온증, 장기 손상, 영양실조로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온몸엔 상처가 128군데나 나 있었다. 담뱃불로 지진 자국, 밧줄로 묶인 흔적, 자전거 체인에 맞은 멍자국…. 소녀는 이튿날 숨졌다.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서 태어난 소녀는 이모할머니에게 입양돼 열한 달 전 영국에 왔다. 소녀는 이모할머니와 그녀의 남자 친구가 때려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 의회와 정부는 조사단을 만들어 클림베가 숨지기까지 아동보호서비스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병원과 경찰 대응엔 문제가 없었는지 조사했다. 의회 증언대에 세운 사람만 155명이었다. 의회는 2년 조사 끝에 아동 학대 방지 정책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담은 400쪽 '클림베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아동보호기관, 병원, 경찰이 클림베를 도울 기회가 적어도 열 차례 있었는데도 다들 놓쳤다고 했다. 무관심하거나 자기네 업무가 아니라며 못 본 체했다고 지적했다. 

[만물상] 클림베 보고서
▶영국은 보고서를 바탕으로 아동법을 뜯어고쳤다. 처벌에서 예방 중심으로 바꾸고 조기 발견과 지역사회 참여를 이끌어내는 아동보호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아동 학대를 막으려면 학대받는 아이를 일찍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어서 아이들과 곳곳에서 마주치는 어른들이 잘 살피고 신고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 캐나다 덴마크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아동 학대 신고 의무제를 두고 있다. 

▶우리도 2012년 아동복지법을 개정해 22개 직군을 신고 의무자로 정했다. 신고 의무를 소홀히 하면 300만원까지 과태료를 물린다. 교사, 의사, 보육 공무원, 아동복지시설·유치원·학원·교습소 종사자, 소방 구급대원들이다. 지난 10월 여덟 살 소녀가 계모에게 맞아 갈비뼈 스물네 개 중 열여섯 개가 부러져 숨진 사건이 있었다. 어제 울산 울주경찰서가 소녀가 학대당하는 사실을 알았을 가능성이 있는 신고 의무자 일곱 명을 울산시에 통보했다. 소녀가 다녔던 초등학교와 학원의 교사, 소녀를 치료했던 병원 의사들이다. 

▶울산시는 이들이 알고도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 과태료를 물리겠다고 밝혔다. 소녀의 친엄마가 울면서 말했다. "아이가 '엄마한테 맞고 있다'고 주변에 말했대요. 어른들이 흘려듣지 않고 시스템이 허술하지만 않았어도…." 한 소녀의 끔찍한 비극이 아동 학대를 막는 사회적 관심과 노력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한국판 클림베 보고서부터 만들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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