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주변 중국 음식점에서 파는 해물짬뽕은 국물이 희멀겋다. 그런데 한두 수저 떠먹으면 이내 혀가 따갑고 목구멍이 컬컬해진다. 청양고추로 맛을 냈기 때문이다. 삼겹살집에서도 청양고추를 넣어서 혀가 얼얼한 된장찌개를 먹기 쉽다. 청양고추 즙을 소주에 타 먹는 술꾼도 있다. 어느덧 청양고추는 우리 입맛에서 빠질 수 없게 됐지만 실은 그 역사가 오래되진 않다.
▶1983년 중앙종묘가 새 고추 품종 '청양고추'를 내놓았다. 제주도 고추와 동남아 고추를 교배한 뒤 경북 청송과 영양에서 시험 재배한 고추였다. 청송의 '청'과 영양의 '양'을 따서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고추 생산으로 유명한 충남 청양군도 연고권을 주장한다. 중앙종묘가 1970년대 청양농업기술센터에서 매운 고추 씨앗 여러 종을 받아갔다고 한다. 청양군은 "나중에 여러 품종이 섞였다 해도 뿌리는 청양고추가 틀림없다"고 한다.
▶IMF 외환 위기 때 토종 종묘 회사들이 자금난에 시달렸다. 국내 종묘 산업에서 상위 다섯 회사 중 네 곳이 외국에 넘어갔다. 1996년 국내 종자 시장에서 외국 회사의 점유율은 14%였지만 요즘엔 50%가 넘는다. 신고 배, 캠벨 포도, 후지 사과 모두 외국에 로열티를 내고 먹는다. 외국 종묘 회사들은 우리 업체가 개발한 무·배추·고추 종자로 중국과 일본·인도 시장을 장악했다고 한다. 세계 농산물 시장에서 종자는 새로운 금맥이다. 2010년 698억달러였던 종자 시장은 2020년 1650억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미국과 일본 10대 종묘 회사들이 벌써 세계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우리 종자 업체 중 98%는 직원 10명도 채 안 되는 영세 판매상 수준이다. 지난해 우리가 8900만달러어치를 수출한 파프리카도 전부 외국 품종에 로열티를 주고 재배한다. 우리가 앞으로 10년간 물게 될 종자 로열티가 8000억원이라고 한다. 토종 씨앗을 키우는 육종사(育種士)를 벤처기업인처럼 밀어줘야 할 때다. 종자 주권도 지켜야 한다. 한 톨 씨앗을 우습게 여기다간 나중에 돈을 한 움큼 줘도 밥상 차리기 힘들어질지 모른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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