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때 美 적십자 초청 백악관 방문
팸플릿 위의 케네디 사인 지워졌지만 '공익 위해 살겠다' 결심한 계기
케네디, '국경
무의미하다'며 UN 지지
나도 청년들에 '세계에 봉사하라' 조언… 세계시민 되는 것이 나라 사랑하는 길
반기문 | UN(국제연합) 사무총장
내 인생의 몹시 큰 후회 중 하나가 존 F 케네디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친필 사인을
제대로 보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1962년 7월 18세이던 나는 미국 적십자사 초청으로 한 달 동안 미국을 방문했다. 적십자사가 세계 42개국
학생 102명에게 미국 방문을 통해 견문을 넓힐 기회를 준 것이다. 이때 백악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케네디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의 이름
모를 시골 소년이 그를 만나는 엄청난 행운을 누린 것이다. 그리고 어렵게 용기를 내서 백악관을 소개하는 팸플릿에 그의 친필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광택이 있는 팸플릿 위에 쓴 그의 사인은 오래가지 않았다. 함께 방문한 학생들이 앞다퉈 이 팸플릿을 돌려 본 후
나에게 돌려줬을 때는 케네디의 사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하지만 사인이 지워졌다고 그가 내 인생에 남긴 흔적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와 만난 일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그날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케네디가 했던 말은 내가 외교관이 돼서 공익을 위해 인생을
바치겠다고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냉전이 한창이던 철의 장막 시대에 세계 각 나라에서 온 젊은 학생들에게 케네디 대통령은
"세계에 많은 나라가 있는데 정부끼리는 잘 지내기 어렵더라도 사람들끼리는 친구가 될 수 있다"면서 "여러분이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미래의 희망이다"고 했다. 그리고 내 인생의 금과옥조가 된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가 서로 도움의 손길을 건넬 의지만 있다면 국경은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는다."
이후 직업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그리고 UN(국제연합) 사무총장이 된 이후에도 나는 이 말을 항상 가슴속에
깊이 새기고 있다.
케네디 대통령은 UN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다. 암살당하기 몇 주 전 그가 UN 총회에서 한 마지막 연설은 지금
국제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한 모범 답안이나 다름없다. 그는 보편적 인권을 강조하고, 무분별한 군비 지출에 반대했다. 또 인종과 종교에
관계없는 관용을 촉구했다. UN의 평화 유지 활동도 적극 옹호했다. 단지 서류상 평화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평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는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UN 직원들이 지켜내려고 애쓰는 가치와 똑같은 것이다.
난 세계 젊은이들과 만날 때마다 케네디
대통령으로부터 들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세계 시민이 돼라. 그리고 세계에 봉사하는 것이 바로 여러분의 국가를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직후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축하하려 방문했다. 그는 수십 년 전 케네디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만난 우리 일행의 사진 사본을 액자로 만들어 선물했다. 케네디 대통령과 만난 일을 내가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이해해준 케네디 상원의원에게
깊은 감동을 받았다.
케네디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 이후 반세기가 흘렀다. 돌이켜보면 내가 제대로 보관하지 못한 케네디의 사인은 그냥
허공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고 굳게 믿는다. 그의 사인은 함께 백악관을 방문한 세계 각국 또래 친구들의 손을 통해 그들의 피부로 흡수돼 전
세계로 퍼진 것이다. 나는 케네디의 숭고한 이상이 앞으로도 널리 퍼져 나가기를 바란다. 특히 그가 주목했던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말이다.
-조선일보, 201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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