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한국인 기댈 사람이 없다.

하마사 2013. 11. 9. 10:22

동짓날 즈음, 설이 다가왔다고 맨 먼저 알리는 것이 윗방 바닥에 널어둔 산자(糤子)였다. 어머니는 찹쌀가루를 반죽해 시루에 쪘다. 쫀득한 반죽을 방망이로 얇게 밀고 네모지게 잘랐다. 며칠 방바닥에 말려 딱딱한 조각들을 기름에 지졌다. 조청 바르고 쌀튀밥 가루에 굴려 고물 묻히면 산자가 완성됐다. 쌀강정도 여간 손이 가는 게 아니었다. 불린 쌀을 말려 튀기고 물엿에 버무려 틀에 붓고 밀대로 밀어 마름모로 썰었다.

▶찹쌀풀 발라 김부각 부치고 식혜 끓이고 수정과 거르고 떡시루 안치고…. 섣달 그믐날엔 놋그릇을 꺼내 마당에 펼쳤다. 푸른 녹이 앉거나 거뭇한 놋그릇을 기와 가루 묻힌 짚으로 닦았다. 놋그릇이 발하는 황금빛은 설 채비가 끝났다는 신호였다. 그렇게 열흘 넘는 명절 준비를 어머니 혼자서 해낼 순 없었다. 윗동네 아랫동네 사는 사촌 누님과 사촌 형수가 거들었다. 인절미 떡메는 힘 좋은 사촌 매형이 쳤다.

[만물상] 한국인
 ▶아버지는 타지에 나와 자리를 잡자 고향 큰댁의 장손과 맏딸네를 불렀다. 함께 일하고 의지하며 살았다. 명절이면 스무 명 넘는 세 집 식구가 모여 왁자지껄했다. 백석의 '여우난골족'처럼 축제가 따로 없었다. 갯가 소도시에서 자란 5남매는 도청(道廳)이 있는 대처(大處)로 진학하면서 차례로 '고모' 집 신세를 졌다. 촌수도 따지기 힘들게 먼 고모였지만 기꺼이 먹이고 재우고 수발해줬다. 으레 친척 식솔이 딸릴 것으로 알던 시절이었다.

▶그때에 비하면 사는 게 훨씬 번드르르해졌지만 고향집은 스산하다. 명절 귀성을 거듭할수록 식구가 줄어들었다. 차례 자리에 있어야 할 가족 친척의 그림자를 그리워한다. 이젠 사촌이나 조카를 함께 살며 거두고 챙기는 집을 찾기 어렵다. 다들 제 알아서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자식을 하나만 두는 집이 흔해 사촌이 뭔지도 모르고 자라는 아이가 많다. 사는 게 고단할 때 도움 받는 건 고사하고 마음 기댈 데가 드물다.

OECD가 35개국 삶의 질(質)을 쟀더니 한국이 27위였다. 재작년 26위, 작년 24위에 이어 하위권을 맴돈다. 항목별 평가에선 '사회적 유대'가 32위로 밑바닥이다. "어려울 때 주변에서 도와줄 친척·친구가 없다"는 답이 23%로 작년보다 3%포인트가 늘었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가족 말곤 믿을 곳 없는 우리네 삶을 생각하면 그나마 적게 나왔다. 피 섞이지 않았어도 서로 가족처럼 돕고 살던 두레의 마음은 옛 얘기다. 주변 사람 배려할 줄 모르고 자기만 알고 사는 각박한 세상. 잘 먹고 잘 입은들 뭐하나 싶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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