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기타자료

軍 통수권 이양

하마사 2013. 2. 25. 19:04

1995년 5월 새 프랑스 대통령 시라크가 엘리제궁에서 한 시간 넘게 전임자로부터 여러 '권한'을 넘겨받았다. 가장 따끈하지만 별로 쓸 일이 없는 것이 핵 발사 코드였다. 엘리제궁 지하 10m에 있는 핵전략 지휘소 '주피터 사령부'도 새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핵가방은 수행원이 들지만 발사 코드는 대통령이 몸에 지녔다. 퐁피두는 조끼주머니에 넣고 다녔고 지스카르 데스탱은 목에 걸었다. 미테랑은 언젠가 벗어놓은 저고리에 발사 코드를 그냥 넣어두는 바람에 그걸 찾느라 엘리제궁이 뒤집힌 적도 있다.

▶지난해 5월 크렘린궁에서 러시아 대통령 이·취임식이 열렸다. 국가원수 자리에 두 번째로 오른 푸틴은 대통령기(旗) '슈탄다르트', 그리고 붉은 십자가 모양의 러시아 문장(紋章)이 달린 대통령 목걸이를 받았다. 십자가 뒤에는 '은혜, 명예, 영광' 세 단어가 쓰여 있다. 붉은 하드 커버 위에 금박 글씨를 새긴 대통령 전용 헌법 책도 주어졌다. 제일 중요한 절차는 핵무기 통제권 이양이다. 새 대통령은 크렘린궁 비밀 장소로 가서 핵가방을 넘겨받았다.

▶미국 대통령이 이·취임 때 주고받는 핵가방은 '풋볼' 혹은 '블랙박스'라고 부른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은 뒤부터 핵가방을 대통령 곁에 두었고, 군 통수권을 넘기는 상징으로 핵가방을 건넸다. 20㎏ 핵가방 속에는 네 가지가 들어 있다. 적 타격 목표물을 적은 75쪽짜리 '블랙 북', 핵 승인 암호가 담긴 카드 '비스킷', 비상(非常) 방송 개시에 관한 절차 서류, 대통령이 긴급 대피할 안전 장소 목록이다.

▶미국 핵 사용은 '투 맨 룰'에 따른다. 대통령은 국방장관과 핵잠함 함장은 부함장과 함께 겹으로 핵 사용을 확인한다. 대통령이 여행 중이면 핵가방은 백악관과 부통령도 하나씩 갖는다. 권력을 넘길 때를 포함해서 적 도발에 대응하는 일은 단 한순간도 공백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대통령 이·취임 때는 핵가방이나 목걸이, 깃발, 헌법 책 같은 상징물은 건네지 않는다. 우리의 군 통수권 이양은 합참의장이 지휘통제실에서 군 근무 상황을 보고하고 핫라인을 넘겨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새 대통령은 25일 0시 정각 군정권(軍政權)과 군령권(軍令權)을 포괄하는 국군 통수권을 전임으로부터 넘겨받았을 것이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해 국방장관, 합참의장, 각 군 총장 같은 군 수뇌부가 핫라인을 통해 비상체제에 들어갔으리라. 군 통수권을 넘겨받은 뒤 핫라인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시험 가동은 해봤을까. 

 

-조선일보 만물상, 201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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