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서른 갓 넘은 사르트르가 첫 소설 '구토'를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냈다. 10년 가까이 갈리마르에 원고를 보낼 때마다 퇴짜 맞은 끝에 꿈을 이뤘다. 원래 사르트르가 붙인 제목은 '멜랑콜리아(우울)'였다. 출판사 사장 가스통 갈리마르는 그런 제목으론 책이 안 팔린다며 자기 맘대로 '구토'로 바꿔버렸다. 사르트르는 군말 없이 따랐고 책이 잘나가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가스통 갈리마르는 1911년 스물다섯에 출판사를 차렸다. 그는 원고를 꼼꼼히 읽고 작가를 따끔하게 야단치기로 이름 높았다. 아끼던 작가 앙드레 말로에게 월급을 주며 소설만 쓰게 한 적도 있다. 그는 '출판의 왕, 문학의 재판관, 소설의 왕자, 시의 보호자, 인쇄계의 군주'로 불렸다. 아흔넷에 떠나기까지 그의 좌우명은 "찾아라, 냄새를 맡아라, 그리고 찾아내라!"였다.
▶우리 문단에선 1966년 서울 종로에서 탄생한 민음사가 산실 역할을 했다. 박맹호 대표는 광복 이후 등단한 시인들의 대표작만 골라 '오늘의 시인총서'를 내 새바람을 일으켰다. 학교에서 일제강점기 시만 공부한 독자들에게 시의 새 맛을 안겨주며 '시집도 팔린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시집을 처음 가로쓰기로 찍자 다른 출판사들도 뒤따랐다. 오늘의 작가상과 김수영 문학상을 만들어 이문열·박영한·장정일 같은 스타 작가를 배출했고, 계간 '세계의 문학'도 창간했다. 얼마전 세계문학전집 300권을 돌파하기도 했다.
▶관철동에 있던 민음사 3층 편집부는 문인 사랑방이기도 했다. 글쟁이들은 일층 맥줏집 '사슴'에서 술잔을 주고받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래서 70년대 한국 문단을 '관철동 시대'라고 한다. 시인 고은이 문예지에 연재한 그 시절 일기에는 '민음사에 갔다. 박맹호가 산 맥주를 마시고 대취(大醉)했다'는 대목이 거의 날마다 나온다. 민음사는 1990년 관철동 시대를 끝내고 신사동으로 옮겨갔다.
▶박맹호 민음사 회장이 팔순을 맞아 자서전 '책'을 냈다. 50년 가까이 5000종 넘는 책을 찍고서야 처음 쓴 자기 책이다. 작가 지망생이었던 박 회장은 일찌감치 창작을 포기한 것이 가장 잘한 일이라고 했다. 쓰기보다 작가를 발굴하는 게 큰 보람이었다고 했다. 갈리마르도 고교생 때 문학의 꿈을 접고 출판인이 돼 숱한 명작을 캐냈다. 그래서 '갈리마르가 곧 프랑스 문학의 반세기'라고 한다. 출판인 박맹호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잉크로 두툼하고 알찬 한국 문학사(史)를 써 온 것이 아닐까.
-조선일보 만물상, 201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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