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왜 이념과 정파에 편향된 분노만 하느냐… 反論이 있어야 正論이 서”
‘메시아’적 주장을 하면 미친 사람 문재인 후보는 알 수 없는 사람 박원순 시장은 좌파 성향 강해
“아름다운재단 이사장 재직 시절 이사들에게 후원금 1000만원 요청 그때 유일하게 안 낸 안철수”
"이 세계에선 내가 소수파지. 이들이 내세운 주요 이슈에 난 다 반대했어요. 광우병 시위나 천안함 의혹, 제주 해군기지 중단에도 반대하고. 한 가지 이념과 입장만을 고수하는 태도는 옳지 않아."
박상증(82) 목사의 발언은 당초 예상보다 너무 멀리 갔다. 나는 분명하게 하고 싶었다.
―목사님은 진보 진영에 속하지요?
"뭐, 중도좌파라고 할 수 있지."
그는 얼마 전까지 '참여연대' 공동대표와 '아름다운재단' 이사장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일했다. 그는 소위 진보 교계의 원로(元老)고, 역대 정권에서 늘 재야 진영에 속해있었다.
―그런 분이 한 달 전 새누리당의 국민대통합위원장직을 제안받았습니까?
"국민 통합을 하려니 자기네 판단으로 중도좌파가 필요했던 거지."
―당시 황우여 대표와 만나 영입이 확정됐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황우여 대표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가 내 제자거든. 그래서 만났지. 국민 통합에 관심은 있다고는 했어요."
―마음이 있었군요.
"내가 2000년 초 박원순씨 등과 '희망포럼'을 만들어 그런 통합 운동을 벌였다가 실패했죠. 그때 이해찬 총리가 나를 찾아와 '총리실에서 주도하겠다'고 했어요. 문제 있는 사람이야. 정부가 주도해선 될 리가 없지. 지금도 국민 통합에는 관심이 있어요. 하지만 그 직책을 맡으면 대선판에서 표(票)를 얻어줘야 하는데, 내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렵지."
- 박상증 목사는“지금 좌파는 내가 1948년 서울대 다닐 때의 좌파 세력과 비교해 전혀 진화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명원 기자
"나도 피해를 받았고(웃음). 하지만 그 시절에 대해 다른 입장이 있을 수 있다, 독선적인 입장만을 고집할 게 아니다,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오. 그 시절을 없었던 걸로 하자는 것은 아니오."
―지금 참여연대에서 일하는 후배들은 박근혜 후보만은 안 찍겠다고 할 겁니다.
"나도 박 후보를 좋아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오. 기독교적으로 보면 세상에는 선한 정부는 없어요. 덜 나쁜 정부만 있을 뿐이지. '메시아'적 주장을 하는 후보는 미친 사람이지. 그러면 히틀러를 따라갔어야지. 결국 경험과 자질 중에서 상대적으로 나은 후보를 택할 수밖에 없지. 나는 박근혜 후보를 찍겠다고 공언했어요."
―살아온 이력으로는 문재인 후보를 밀 줄 알았는데.
"문재인씨가 청와대 비서실장 때 '세종시 수도 이전''혁신도시' 등의 사안을 놓고 논쟁을 한 적이 있어요. 도시도 유기적 생명체인데, 탁상에서 만들어서 될 일은 아닌데 말이오. 그는 힘으로 밀어붙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비타협적인 사람 같았소."
―점잖고 온화한 인상이지 않습니까?
"그때는 그런 좋은 인상이 아니었어. 지금 모습을 보면서 '사람은 알 수 없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박근혜 후보도 세종시 이전에 찬성하지 않았나요?
"그건 알아요. 하지만 박근혜씨와는 그걸로 토론한 적은 없어. 문재인씨는 당시 책임자였으니 논쟁을 한 것이고. 나는 노무현 정권에 대해 비판적이었어요."
―같은 편인 줄 알았는데…, 왜 비판적이었지요?
"당시 내가 통일자문위원을 맡고 있었는데, 그 정권에서 대북 문제를 끌고 가는 자세가 별로 마음에 안 들었어요. 이들 논리로는 대한민국은 생겨서는 안 될 나라야. 정통성을 부정하는데, 북한인민공화국을 내 조국으로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문재인 후보를 겨냥해 "북방한계선(NLL) 의혹을 해명하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지요?
"하도 답답해서 한 거지.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는 게 어렵다는 걸 왜 모르겠나. 노무현 대통령의 성향을 보면 '땅따먹기 한 것'이라는 등 NLL을 북에 양보하는 발언을 했을 거라고. 헌법 파괴인데, 이명박 대통령이 가만히 있는 것도 문제요. 국가 안보에서 잘못된 것은 시정하는 게 대통령의 책임 아니오."
―어째 우파(右派) 논리 같습니다.
"국가 안보는 좌우 이념을 뛰어넘는 거지. 좌파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오. 내가 1948년 서울대 예과에 들어갔는데, 미군 철수와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 남로당 가입을 요구받았어요. 밤에 삐라를 뿌리다가 경찰서에 다섯 번 잡혀가야 입당 자격이 생겨요. 그런 학내 분위기에 내가 왕따가 돼서 미국으로 도망갔어요. '통합진보당' 사태가 터지는 걸 보면서, 요즘 좌파는 그때의 세력에서 전혀 진화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구먼."
―문재인 후보 얘기가 나왔으니, 안철수 후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는 '아름다운재단' 이사를 맡은 적이 있지요.
"착한 사람·성공한 사람 같은데, 내 나름의 견식이 있지 않겠소. 믿을 만한 대통령감 같지는 않아요. 내가 아름다운재단 이사장으로 있을 때 이사들에게 후원금을 1000만원씩 내달라고 요청한 적 있어요. 그때 유일하게 안 낸 사람이 안철수씨요. 이제 와서는 자기 재단을 만들 만큼 돈이 많은 사람 아닌가요."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겠지요.
"안철수씨가 포스코 사외이사를 맡았을 때 받은 돈을 기부했다는 말은 아직 못 들었어. 박원순씨는 그렇게 번 돈은 다 기부한 걸로 나는 알고 있어요."
―좌파 진영 원로들의 '원탁회의'(백낙청 서울대명예교수,김상근 목사 등)가 후보 단일화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그들은 다 목사님의 동지 아닙니까?
"1980년대까지 민주화운동은 같이 했어요.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된 뒤로는 함께 밥을 먹은 적이 없어. 다들 권력을 누렸던 사람이잖아요. 원로라고 하지만 나보다 나이가 아래요. 별로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잖아. 젊은 애들이 막 휩쓸리는 것이 안타까워."
―같이 일하던 젊은 후배들은 "목사님은 우리와 노선이 다르다"고 하지 않나요?
"내게 대드는 사람은 없어. 내가 하는 말은 '논리'가 있으니까. 기본적으로 내게 동의하진 않지만, 내 입장을 인정하는 거지. 서로 다르다고 배척하면 시민운동이 아니죠. 내가 공동대표를 맡았던 참여연대가 민주당이나 진보당의 하부 구조가 아니라면 이런 의견을 포용해야 하는 거지."
―현 정권 초기에 참여연대가 광화문 촛불 시위를 주도하지 않았나요?
"나는 시위에 반대했지. 미국 쇠고기를 먹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미국 교포들은 다 죽어야지. 그때 내가 미국에 체류 중이었어요. '사는 놈도 나쁘지만 파는 놈이 더 나쁜 놈 아니냐. 미국이 진짜로 광우병 걸린 쇠고기를 판다면, 파는 놈들을 추적해 족치는 운동을 내가 여기서 주도하겠다'고 전화하니, 그건 안 하겠대. 당시 시위의 본질은 선거 불복종이었지. 그 안에서 이런 반대는 소수였지."
―참여연대는 '천안함 폭침'에 대해서도 가장 앞장서서 의혹을 제기했지요. 그때도 반대했나요?
"내가 반대했다고 하면 안 되지. 내 입장에서는 정론(正論)이지. 나는 '그동안 겪어온 역사적 경험으로 그건 김정일이가 했다'고 말했지. 직접 안 봤다고 정부 발표를 믿지 못하겠다? 그러면 자작극을 했다는 얘기냐. 우리 실무자가 유엔에 편지를 썼어요. 23페이지나 돼. 내가 '유엔의 배부른 관리들이 이 편지를 읽고 있겠느냐. 내가 읽어 보니 3페이지면 충분하더라'고 야단쳤어요."
―이런 입장을 갖고 있으면서 '참여연대'나 '아름다운재단'에서 활동했나요?
"나는 참여연대가 좌파 단체로 규정되고, 독선적이 되는 것이 안타까워. 특히 '선택적 분노'를 할 때가 그렇습니다. '너희는 왜 이념과 정파에 편향된 분노만 하느냐. 내가 느끼는 문제에 대해서는 왜 분노를 느끼지 않는가'라고. 나는 필요할 때 내 얘기를 해요. 하지만 극단적인 상황까지 간 적은 없어요."
―그 비슷한 상황까지 간 적은 있다는 뜻인가요?
"참여연대에서 '낙천·낙선 운동'(2000년)을 할 때, 박원순씨가 '악법은 법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나는 반대했어요. 결국 상임집행위에서 투표로 갔어요. 반대표는 나밖에 없었어. 이 사실을 기록에 남기라고 했어요. 나는 비록 주도하지는 못했지만, 내 입장을 지켜왔어요."
―불행하지만 시민단체가 정파화하고 교조적이 된 게 현실입니다.
"내가 논쟁을 하면 듣긴 해요. 나 같은 반론이 있어야 정론(正論)이 있는 거지. 제주 해군기지도 그래요. '제주도는 평화의 섬'이라고 하는데,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평화가 안 되는가, 납득하기 어려운 거죠."
―작년 6월 제주 해군기지 건설 중단 촉구 선언문에는 박원순 시장과 함께 이름이 올라가 있던데요.
"저네들이 내 이름을 그냥 넣은 거지. 내 이름은 사방에 있지 뭐. 이번 여름에 제주도를 다녀온 뒤 참여연대 실무자들에게 '이제 시위 그만하고 손 떼라'고 했어요."
―아름다운재단 이사장은 어떻게 해서 맡게 됐나요?
"참여연대 공동대표였으니까, 이사장을 금년 8월까지 했죠. 참여연대부터 따지면 12년을 했어요."
―박원순 시장과 관계는요?
"나한테 예의를 갖춰요. 내 말을 반대한 적도 없고, 다툰 적도 없어요."
―역사관과 입장에서 차이가 있는데 같이 일할 수 있었나요?
"박원순씨는 어떤 사안에서는 자기주장대로 가기 위해 아예 나와 논의하지 않았지요. 생각 이상으로 그가 좌파 성향이 강한 걸 알았어요. 하지만 상당히 현실주의자 면모도 있어요."
―목사님은 앞서 말씀하신 '중도좌파'는 아무래도 아닌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제가 중도좌파가 됩니다.
"나는 마르크스를 공부했고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기독교 교계 안에서는 명백히 좌파로 분류돼요. 나처럼 '에큐메니컬(교회일치) 운동'을 하는 사람은 빨갱이로 봐요. 과거 한때는 극우파 목사들로부터 'KGB(옛 소련 정보기관) 돈을 받는다'는 말까지 들었으니까요. 물론 사실이 아니죠."
―전향(轉向)한 것은 아니지요?
"나는 일관되게 지금의 입장을 취해왔어요. 뭐라고 할까, '세련된 상식'을 갖고 세상을 살아왔어요."
―이런 인터뷰를 하면 후배들이 등 돌리지 않을까요?
"내가 이만큼 살았는데 걔들한테 아부해야 해요?"
-조선일보, 201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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