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개미들도 동맹으로 敵을 격파… 승리하면 한마리만 女王 나머지는 숙청"
"벌과 개미의 수놈은 未수정란… 엄마의 유전자만 갖고 태어나 반쪽이 모자라니 비주류인 셈"
"개미 제국에서도 영역 전쟁이 벌어진다. 여왕개미가 혼자 힘으로 어렵다고 판단할 때 이웃 여왕들과 동맹을 맺어 적들을 각개격파한다. 동맹은 천하를 평정할 때까지다. 제국이 만들어지면 거의 예외 없이 단 한 마리 여왕이 다스린다. 나머지는 제거된다. 연합 통치를 하는 경우는 없다."
최재천(58)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민감한 시기에 정치 얘기가 부각되면 안 되는데" 하면서 정치 화제로 끌려들어 왔다. 미국 유학 시절에 구입했을 것 같은 물 빠진 진셔츠를 입고서 말이다.
- 최재천 교수는“꿀벌 멸종에는 전자파, 살충제, 진드기 등의 원인이 제기됐지만‘생태계의 엇박자’때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이명원 기자
―'권력은 부자(父子)간에도 나눌 수 없다'고 하지만, 개미 제국에서도 그런가?
"자연계에서 우리 인간 사회와 가장 흡사한 게 개미 사회다. 분업하고 농사를 짓는다. 강도도 있고 반체제 세력도 있다. 개미를 연구해보면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혹 구상하는 '공동 정부' 같은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동맹한 여왕개미들끼리 마지막 승부는 어떻게 가리는가?
"여왕들끼리 직접 혈투를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일개미들이 결정한다. 가령 여왕개미 다섯 마리가 동맹을 맺어 승자가 됐다. 승리의 자축연을 하는 자리에서 이들에게 딸린 일개미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서로 바쁘게 왔다 갔다 하며 뭔가 의사를 교환한다. 그런 뒤 여왕 네 마리를 숙청한다. 얼마나 기막힌가. 일개미들은 여왕들이 낳은 알에서 부화한 것이다. 자기 자식한테 물려 죽는 셈이다."
―이들의 최고 지도자 선택 기준은?
"가장 많은 알을 오랫동안 낳을 수 있는 여왕이 옹립된다."
그는 역서와 감수(監修)까지 포함해 책 60여 권을 냈다. 기고와 강연, 사회 활동에서 쉴 줄 모른다. 관련 직책도 여럿 된다. 개미 세상이었다면 그는 왕성한 정력으로 '여왕'에 등극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 '침팬지 연구소(생명다양성 재단)'를 설립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침팬지는 개미와는 규모가 다르다. 일본에서 침팬지 다섯 마리를 들여오고, 공간과 기금도 마련해야 한다. 개인 생물학자가 꿀 수 있는 가장 큰 꿈일 것이다. 그를 위해 '침팬지의 어머니'라는 제인 구달(78) 박사도 방한한다.
―왜 침팬지 연구가 당신의 꿈이 됐나?
"우리 인간은 참 재미있는 동물이지 않은가. 툭하면 몇 년에 한 번씩 지도자를 뽑느라 난리법석을 떤다. 기껏 뽑아놓고는 욕하기 바쁘다. 또 최근에는 성폭행 등이 왜 이렇게 많은가. 인간이 점점 포악해지는가. '작은 결혼식' 캠페인을 하는데, 왜 인간은 쓸데없는 데 많은 돈을 뿌리고 비이성적인 짓을 하고 사는가. 그런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그건 인간에게 물어봐야지, 침팬지한테 답이 나오겠나?
"인간을 갖고 연구하기에는 윤리적 문제 등 한계가 있다. 또 인간은 이미 진화를 해버렸다. 인간을 연구하면 진화의 결과밖에 못 본다. 전(前) 단계에 해당하는 놈을 들여다보면 인간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됐나를 알 수 있다."
―인간이 침팬지에서 나왔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지 않나?
"침팬지에서 나오진 않았지만, 공동 조상에서 인간과 침팬지가 갈라졌다. 침팬지는 인간에 이르는 진화의 중간 단계에 있다. 이 계보는 '진화생물학'이 무너지지 않는 한 추호의 의심이 없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생물 진화보다 사회 문화적 관점에서 봐야 하지 않겠나?
"지금까지는 인문사회학의 영역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자연과학적으로 분석해보면 훨씬 근원적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때로는 물질에 기반해 인간이 어떻게 이런 식으로 진화했나를 찾는 것은 흥미롭다."
―그게 소위 '사회생물학'에서 유전자가 인간 본성과 행동을 결정한다는 것인데.
"결정이라기보다… 영향을 준다."
하버드대의 에드워드 윌슨 교수가 명명한 '사회생물학'은 유전자가 인간의 모든 행위를 조종한다는 것에서 근거한다. 하지만 인간과 사회 현상의 복잡성을 오로지 생물학적 요인의 결과로만 보려는 '환원주의'이고 인종차별의 정당성을 제공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는 윌슨 교수의 제자다.
―생물학도 범위가 넓은데, 왜 '사회생물학'을 전공했나?
"펜실베이니아 대학을 다닐 때 '사회생물학' 과목을 처음 접했다. 그때 윌슨 교수의 '사회생물학'(1975년)을 읽게 됐다. 가슴이 막 뛰는데 어쩌지 못하겠더라. 그 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도 읽었다. 젊은 날의 방황과 고민…, '인간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있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가 바로 이 분야임을 알았다. 용기를 내 윌슨 교수를 찾아갔고, 하버드대에서 그분의 지도 아래 박사 논문을 썼다."
―사회생물학은 한마디로 '생물(유전자)'로써 '사회'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겠나?
"바로 그렇다."
그 생물학이 실제 우리 사회에서 영향을 끼쳤다. 2005년 헌법재판소에서 '호주제의 위헌 여부'를 다툴 때, 그는 '모든 생물계는 모계 혈통이지 부계 혈통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생물학적 의견서를 제출했다. 호주제는 헌법 불일치 판정을 받아 폐지됐다.
"내가 의견서를 내고 2주일 뒤 결정이 났다. 9회 말에 '끝내기 안타'를 친 것과 같았다. 그때 여성계의 히어로가 됐다."
―나는 어려서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고…'라고 배웠다.
"남성은 씨앗이고 여성은 밭(田)이라는 말인데, 생물학적으로는 사실 씨앗도 반반이다. 같이 낳은 것이다. 굳이 누구의 기여가 더 큰가를 따지면, 생물학자로서는 여성의 기여가 더 크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무슨 근거로 여성의 기여가 더 크다고 하는가?
"유전과 관계되는 핵 속 유전자(DNA)는 암수가 반반씩 기여한다. 하지만 영양분은 암컷의 난자(세포질)에서만 제공된다. 번식에서 수컷의 기여는 유전자 반쪽밖에 없다. 전 동물계를 봐도 수컷은 존재감이 없다. 암컷이 주도하고, 수컷은 잠깐 번식에 참여할 뿐이다."
―수컷은 변방이나 비주류?
"그렇다. 개미와 벌은 수정란이 암놈이 되고, 미(未)수정란은 수놈이 된다. 수놈은 유전자의 절반인 엄마의 유전자만 갖고 태어난다. 반쪽이 모자라는 게 수놈이니, 비주류인 셈이다."
―전체 동물계에서 보면 인간의 남성 지위는 독특한가?
"그렇다."
―그렇다면 인간만은 신이 창조한 게 맞는다.
"…(웃음)."
―최 교수는 2000년대에 들어섰을 때 "여성의 시대가 밝았다"고 한 적이 있다.
"긴 역사를 보면 남성이 여성을 지배한 것은 노동력이 필요한 농경시대가 되면서였다. 수렵과 채집 시대에는 허구한 날 남성은 빈손으로 들어왔다. 식탁에 기여한 게 없으니 발언권도 별로 없었다. 세상은 더 이상 남성의 근력만이 중요하지 않게 됐다. 요즘 '아들 낳고 싶은가 딸 낳고 싶은가'하고 물으면 75%가 딸 낳기를 원한다. 이 정도면 게임은 끝난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여성 대통령'을 둘러싼 공방도 있다.
"몇 년 전에 '미국은 우리보다 훨씬 보수적이다. 흑인 대통령이 나올망정 여성 대통령은 굉장히 시간이 걸릴 것이다. 미국보다 우리나라에서 먼저 여성 대통령이 나올 것으로 본다'고 쓴 적이 있었다. 그 뒤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이 맞붙었다. 클린턴이 이기면 내 예측이 틀리는데, 오바마가 이겨줬다. 지금 대선 후보 중 누구를 편드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연세대 한 교수의 '생식기' 발언이 논란이 됐는데.
"표현이 거칠었지만, 여성들의 사회적 고민을 겪어본 사람이 여성 대통령이 되면 좋은 게 아닌가 하는 취지였을 것이다."
―출산·보육을 안 겪은 여성은 사회적으로 여성성이 없는가?
"그렇게 얘기할 수는 없다."
―그러면 생물학적 여성이면 무조건 사회적으로도 여성인가?
"성(性)의 역사를 보면 중세에는 남성 여성 둘만 얘기하지 않았다. 중간적인 성도 있었다. 성을 둘로 딱 구분하지 않았던 시절이 인류 역사에서 여러 문화권에 있었다. 식물에는 꽃 안에 암수가 다 들어있다. 수술이 먼저 앞으로 튀어나온다. 벌이 들어오면 꽃가루를 묻혀주는 역할을 한다. 그 수술이 시들면, 그때부터 가운데 있는 암술이 꽃가루받이 역할을 한다. 꽃은 암수한몸으로 났다가 처음에는 수놈, 끝에는 암놈이 되는 셈이다. 꽃의 생물학적 성이 무엇이냐 물으면 모호해진다. '사회적 성(젠더)이 무엇이냐'고는 물을 수 있다. 37% 수놈과 63% 암놈이다."
―최 교수 본인은 어떤가? 호주제 폐지에 기여한 공로로 남자로는 처음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받았다. 남자 입장에서 보면 배신자 같다(웃음).
"결혼 후 나는 지금까지 설거지를 줄곧 해왔고, 학부모 행사가 있으면 아들 학교에 자주 나갔다. 원칙적으로 보면 나는 사내자식이 아니다. 하지만 꼭 남성적인 일과 여성적인 일을 구분하는 게 맞는가. 요즘 육아휴직을 해본 남편들은 '아내 못지않게 아이를 잘 본다'고 말한다. '바깥양반'과 '집사람'도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집사람이 꼭 여성, 바깥양반이 꼭 남성이어야 할 이유도 없다."
―이번 주 초 방한하는 제인 구달과 함께하는 강연 주제는 '급속히 사라지는 꿀벌'에 관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꿀벌이 다 사라지면 인간은 4년 안에 멸종한다'고 했다. 그때는 꿀벌이 사라지는 징조가 전혀 없었을 텐데, 물리학자가 재미있는 예언을 했다. 꿀벌이 사라지면 농업이 흔들린다. 미국은 심각하고, 우리나라는 좀 덜한 편이다."
―휴대폰 전자파의 영향이라는 설이 있는데.
"전자파, 살충제, 벌통 안에 기생하는 진드기 등 별별 원인이 다 제기됐다. 어쩌면 모든 것이 다 원인일 수 있다. 나는 '생태 엇박자'라는 새로운 가설을 제기한다. 생물은 다른 생물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가령 봄이 돼서 돌아온 제비는 알을 낳고 부화한 새끼에게 고단백 곤충을 먹여야 한다. 제비가 돌아왔을 때 지구온난화로 곤충의 일생 주기와 어긋나면 먹이로 쓸 곤충을 찾기 어렵게 된다. 이 때문에 덴마크 등 북유럽에서 철새의 70%가 몰살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꿀벌도 새끼를 키울 즈음, 활짝 핀 꽃이 줄어든 게 아닌가."
생물학자로서 그의 꿈인 '침팬지 연구소' 때문에 만났는데 어쩌다가 다른 얘기로 많이 흘러갔다.
-조선일보, 201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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