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관련자료/목회자료

구닥다리의 미덕

하마사 2012. 5. 12. 09:43

 

한 남성의 페이스북에는 '몸짱'이 되기 위해 단련하는 사진이 올라있다. 운동을 꽤 열심히 한 것 같다. 상반신을 벗은 사진이라 다 보인다. 심리 전문가들은 고생스러운 운동을 하다보면 일종의 '보상(補償)' 심리가 생기고, 그 때문에 이런 사진을 찍어서 자랑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설명한다. 정상 범주를 넘어선 노출증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데 그는 여학교 교사다. "얘들아, 선생님…" 이렇게 시작하는 글도 올라있다. 자기 학생들이 보고 있다는 걸 스스로도 아는 것이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 여학생들의 상상력은 기발한 법이다. 아이들은 몸을 단련하는 사진을 올린 교사가 자신의 신체적 매력을 과시하고, 이성적으로 어필하려 애쓴다고 해석하고 있다. 상의를 벗은 교사의 사진은 미성년 대상 성범죄 뉴스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무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아이들은 자기네끼리 SNS를 하면서 남자 교사가 무언가 노리고 있다고 수군거린다.

문제는 교사의 '욕망' 혹은 '욕망을 어디까지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가'이다. 이미 세상인심은 변해서 체면이나 품위, 절제는 '개에게나 줘버릴' 구닥다리 미덕으로 취급받게 된 지 오래다. 누구나 욕망을 말하고, 발현하는 세상이다. "교사니까 수도사처럼 지내라"고 명령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학생들이 '제2의 부모'인 교사의 마음에 늑대가 숨어있다고 의심하는 건 매우 슬픈 코미디다. '김 교사' 대신 '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럴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긴 성직자도 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세상이니 교사들에게만 '절제'를 요구하기도 어렵다. 요즘 성직자들은 마치 "이런데도 종교를 믿고 싶으냐"며 일반인들에게 견뎌내기 어려운 숙제를 내는 것 같다. 지켜보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해탈(解脫), 즉 욕망을 뛰어넘는 것이 지선(至善)인 불교에 투신한 승려 중에는 술, 담배, 도박, 여자를 버리지 못해 망신당하는 경우도 적잖다. 각목 사건, 룸살롱 사건 등을 스님들이 서로 까발린다. 물론 불교의 품은 넓어 스님의 세상 경험을 나무라지 않고, 그런 스님들이 후일 '큰스님'이 되는 경우도 적잖다. 그러나 그 경지에 가기 전, 자기 종교에 더러운 물만 끼얹고 고꾸라지는 경우가 더 많은 게 문제다.

그렇다고 다른 종교에 헌신하는 이들의 처지가 더 나은 것도 아니다. 어떤 목사들은 교회 재산은 물론 사유재산을 불리고, 그렇게 불린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 편법과 탈법을 하다가 망신을 사고 있다. 종교를 막론하고, 권력자들이 오면 더 따뜻한 차를 내고 더 많은 대화를 하는 성직자도 적잖다. 그것을 비난하는 쪽은 반대로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신도 마음에 기름을 부어 '성난 군중'으로 만든다. 종교 집단 내 주도권 싸움에서 패퇴한 쪽은 군중을 시위대로 만드는 걸 전도라고 생각한다. 대단한 대의명분을 내세우는 종교인들이 실은 구현되지 못한 세속 욕망에 몸서리치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안다.

어느 국정원 직원은 구닥다리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스마트폰 세상인데 왜 그런가 물었더니 자기네들도 갖고 싶지만, 보안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했다. 불편하지 않은가 물었더니 담담히 답했다. "그거 못 참으면 다른 일 해야죠." 종교인이, 교사가 어찌 국정원 직원보다도 더 절제를 못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절제를 미덕으로 아는 구닥다리 선생님, 구닥다리 종교인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세상이다.

 

-조선일보, 2012/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