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념적 양극화 해소에 시민들 기부와 나눔이 큰 역할, 젊은층 왜곡된 시각 바로잡아
그러나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왜 나누려는 마음이 부족한가… 사회 번영 모두 함께 누려야
-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선거가 끝나고 나면 항상 '절묘한 민심(民心)'에 대한 평이 따르고 그런 천편일률적인 평에 식상하게 되는데 이번만큼은 그 말이 참으로 실감났다. 이명박 정부와 여당인 새누리당의 실정(失政)을 질책하면서도 야당의 반대를 위한 반대와 막말 선동에 대한 견제가 교묘하게 균형을 이룬 것이다. 이번 선거를 보면서 우리 국민의 정치의식이 많이 선진화했음을 느꼈다. 그러나 국론(國論)의 과도한 분열이 조금도 간격을 좁히지 못한 것은 여전히 근심거리로 남는다.
현재 우리 사회를 진단하는 목소리에서 양극화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크다. 우선 경제적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것은 매우 우려할 일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이념적 양극화 현상과 세대 간 갈등이 순화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다. 이런 중층적인 양극화 현상이 서로 맞물리면서 우리 사회의 갈등은 고조되고 있다.
그런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정치의 몫이다. 정치란 희소한 자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회 내 갈등과 충돌을 조절하여 최적의 타협을 이끌어내는 조정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그런 조정 작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러니 시민들이라도 나서서 양극화 현상을 완화시키려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기부와 나눔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인기 절정인 TV 개그 프로그램에 '감사합니다'라는 코너가 있다. 개인적으로 특별히 선호하지는 않지만 그 코너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그들의 연기에 상관없이 그걸 보면서 나 자신이 잊고 살던 많은 감사한 일들을 기억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선 풍족하지 못한 집안에 태어나 장학금으로 공부하여 박사학위까지 받을 수 있었던 사실에 감사한다. 또한 살면서 만난 사람들에게 때론 상처받기도 했지만 대개의 경우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한다. 그리고 보답할 길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부유하고 유능한 부모 밑에서 탄탄하게 뻗어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동료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대단히 심각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부자들은 모두 불공정한 거래로 돈을 벌고 그렇게 번 돈을 움켜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에서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으며, 힘들게 일군 재산을 남을 위해 아낌없이 희사하는 고귀한 분들도 많다. 학술진흥이나 장학사업에 거금(巨金)을 내놓은 경암교육문화재단 송금조 이사장이나 관정교육재단 이종환 이사장이 그런 분들이다. 그 밖에도 얼굴 없는 천사들의 선행이 많다. 그런 분들의 미담을 적극 알려 젊은이들의 왜곡된 시각을 바로잡아줄 필요가 있다.
서울대학교 도서관이 부족한 공간을 보완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기부운동에 동참한 동문들 가운데 이른바 성공한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자신의 능력이 출중하기도 했겠지만 분명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한 덕에 시험에도 붙고 출세도 했을 터인데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것 같다. 기부에 기꺼이 참여하는 졸업생들은 오히려 사회적으로는 무명이라 할 수 있는 분들이다.
우리나라의 기부문화가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은 여러 차례 지적된 바다. 미국이나 영국 국민이 내는 기부금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서양의 기부문화에는 보편성을 주장하는 기독교 전통이 크게 기여한 데 반해 우리가 가진 인색함의 배경에는 가문을 중시하고 그 테두리를 넘지 못한 유교문화가 있는 것 같다. 내 자식만 소중하고 내 가족만 중요하다는 협소함이 우리를 각박한 사회로 몰아가고 있다.
요즘 사치와 허영으로 범벅된 결혼문화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헛된 겉치레에 돈을 낭비할 게 아니라 결혼을 기념하는 보람된 일을 하나씩 하는 문화를 조성해 보는 것은 어떨까. 결혼하는 커플들이 제대로 피어나지도 못한 채 시드는 불운한 환경의 어린이들을 돕는 선행(善行)을 하나씩만 해준다면 얼마나 훈훈한 휴먼 스토리가 될까. 재산이면 재산, 재능이면 재능, 각자의 자리에서 나눌 수 있는 걸 나누는 범국민 운동이 시작되면 좋겠다. 특히 대한민국의 발전 덕분에 이만큼 번영하는 사회에 살면서 대한민국에 대해 전혀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일부 사람들이 제발 각성했으면 바랄 게 없겠다. 우리 모두 조금씩 나누고 조금씩 양보하면서 오늘을 있게 한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삶이 되었으면 한다.
-조선일보 아침논단, 2012/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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