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이민 송출국'이던 한국… 순혈주의 무너진 건 불과 20년
낯선 땅 동포들 눈물 잊은 채 피부색 다르다고 경원시해서야
이자스민씨가 비례대표 된 건 이주민이 차별받는 현실 때문
-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미국 골프선수 타이거 우즈와 관련된 일화이다. 그가 '골프 황제'로 상한가를 치던 때 과연 우즈는 백인일까 흑인일까, 그의 인종적 정체성을 둘러싸고 미국 내에서 논란이 일었다. 그러자 당시 '토크쇼의 여왕'이라 불리던 오프라 윈프리가 자신의 쇼에 그를 초대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냐?"는 윈프리의 우문(愚問)에 우즈가 내놓은 현답(賢答)은 'Caublinasian(코블리네시안)'이란 신조어(新造語)였다. 그 의미는 자신의 몸속엔 백인(Caucasian), 흑인(Black), 인디언 원주민(Native Indian), 아시아인(Asian)의 피가 섞여 흐르고 있기에 굳이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을 묻는다면 그렇게 답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적극적 이민정책을 통해 아시아 및 남미로부터 다양한 인종의 유입을 시도했던 1960년대에 미국이 표방했던 슬로건은 '용광로(melting pot)의 나라'였다. 누구든 미국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미국 시민권을 손에 쥐고 '아메리칸 드림'에 도전할 수 있으리란 청사진을 내세웠다. 하지만 용광로처럼 끓어올라 하나의 미국, 하나의 미국인이 된다는 이미지는 곧 허구로 드러났고, 대신 그 자리에 '샐러드 바'란 은유가 등장했다. 다문화·다인종·다국적 사회인 미국은 마치 과일과 채소가 제각각의 고유한 맛을 내는 샐러드처럼 다양한 인종과 언어, 다채로운 문화와 전통이 뒤섞인 채 살아 움직이며 공존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비유컨대 미국 시민권은 채소와 과일 위에 살짝 뿌려진 드레싱 정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코자 용광로의 나라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인들에겐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한국계 미국인'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다문화 간 공존의 필요성이 절실해질수록 '정체성의 정치학(Identity Politics)'이 중요성을 더해가기 시작했음은 진정 역설(逆說)로 다가온다. 그 덕분인가. 미국 사회에서 이중 혹은 다중(多重)의 정체성을 내면화하는 데 실패할 경우 아시아에서 온 이민자들에겐 '바나나'란 오명이 붙여졌다. 겉은 노란데 속은 하얗다는 경멸적 뜻이 담겨 있음은 물론이다. 마찬가지로 아프리카나 남미계 이민자들에겐 겉은 까만데 속은 하얗다는 뜻의 '오레오 쿠키'란 낙인이 부여되었다. '버락 오바마, 당신은 오레오 쿠키인가?'란 제목의 글이 등장한 적도 있었다.
한국 사회는 최근까지도 이민을 보내는 송출국의 지위에 있었다. 순혈주의(純血主義)를 고집하던 한국이 이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지는 20여년에 불과하다. 낯선 땅에서 우리 동포들이 흘린 땀과 눈물의 기억을 깨끗이 잊은 채 이 땅에 중국계, 필리핀계, 베트남계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아픔과 고통을 배가(倍加)시킴은 진정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겉으로는 한국에 시집왔으니 한국인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면서 속으로는 피부색이 다르다고 멀리하고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고 경원시하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필리핀계 한국인 여성이 비례대표로 발탁되었음은 비록 구색 맞추기라 해도 다문화사회의 통합과 관련하여 상징적 의미가 적지 않다고 할 것이다.
그런 이자스민씨를 향해 노골적인 인종 차별이 자행되고 있으니 자괴감에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만일 한국계 미국인이 연방이나 주의원으로 선출되었는데 그를 향해 근거 없는 악의적 루머와 인종 비하적 발언이 인터넷을 뒤덮는다면 한국인 모두의 자존심이 얼마나 큰 상처를 받을 것인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볼 일이다.
이자스민씨가 필리핀계 한국인으로서 혜택을 받은 건 틀림없다. 하지만 누군가 혜택을 받는다는 건 그들이 속한 집단이 차별받고 있기 때문이다. 성 차별이 존재하기에 여성을 우대하고, 지역 차별이 뿌리 깊기에 소외지역을 배려하는 것과 동일한 논리이다.
우리와 다른 문화를 인정해주고 우리와 다른 피부색을 포용해주며, 우리와 다른 전통을 존중하는 것은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를 전제로 한다. 이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정치 영역과 경제 영역의 민주화를 토대로 문화·의식·가치관의 영역을 향해서도 민주주의의 지평을 확대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향해 고귀한 피를 흘린 4·19혁명의 자취도 벌써 반세기를 훌쩍 넘겼음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조선일보 아침논단, 201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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