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가정

안고 있던 아들을 바닥에 떨어뜨린 父, 31년 뒤…

하마사 2012. 5. 8. 14:12

[오늘 어버이날] 장애 아들 향한 '어떤 父情'
31년전 실수로 아들 떨어뜨려 충격받은 아이 장애1급 판정
좋은 약, 용한 의사 찾아 직장까지 버리고 전국을 전전
"죽을 때까지 아들 돌보는게 꿈"

 

지난 1981년 여름, 공무원이었던 아버지 진정호(당시 27세)씨는 두 살배기 아들 영수를 안고 집 안 마루에 서 있었다. 잠시 딴생각을 하는 순간 품에 안고 있던 아들을 떨어뜨렸다. 마룻바닥에 뒤통수를 찧은 아들은 울음소리도 내지 못한 채 경기를 일으켰다. 이후 아들은 또래 아이들이 재잘재잘 떠들 때 말을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아들은 지적 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의사들은 "뇌세포 발육이 더디다"고 했다.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2012년 5월 4일. 아버지 진정호(58)씨와 지적 장애 1급인 아들 영수(33)씨는 경상남도 창원시 무학소주 본사 내의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기업 '무학위드' 입사 동기로 함께 일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아들의 '무학위드' 입사가 결정되자 공무원 출신인 진씨는 "아들과 함께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해 '장애인 회사'에 들어왔다. 진씨는 "내가 아들을 다치게 했고,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말했다. 군청 공무원 출신인 아버지는 지난 30여년 동안 아들만 위해 살았다. 공무원을 그만두고, 자동차 부품 공장 직원, 폐기물 수집상, 관광버스 기사 등을 거치며 이제 장애인 기업의 직원으로 아들의 동반자가 돼 있다.

"아들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여한이 없죠."

지난 4일 오후 경남 창원시 봉암동의 한 빈병 재활용업체에서 진정호씨(왼쪽)가 장애인 아들과 함께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진씨는 지난해 9월, 아들과 함께 일하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이 회사에 입사했다. /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지난 4일 무학위드 공장에서 아들 진씨가 50여m의 컨베이어 벨트에 놓인 빈 소주병 중 깨지거나 이물질이 들어있어 재사용하지 못하는 병들을 골라내면 아버지 진씨가 분류한 빈 병들을 지게차에 실어 하치장으로 나른다. 아들이 컨베이어 벨트 위의 빈 병만 뚫어져라 살필 때 아버지 진씨는 수시로 곁에 다가와 흘깃흘깃 아들을 살피고 있었다. 집과 30여분 거리인 출퇴근 길에도, 회사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아들 진씨의 옆자리엔 항상 아버지 진씨가 있었다.

지난 1988년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또래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자 군 소재지에서 근무하던 진씨는 특수학교가 있는 경남 마산시로 전근을 가겠다며 도지사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이후 진씨는 아들을 위해 전국 병원을 돌아다녔지만 모두들 '자신이 없다'며 치료를 포기했다. 마지막 희망을 걸고 서울의 대학병원을 찾았으나 "치료는 불가능하다. 자연과 함께 살면 좀 나아질 것"이란 말을 들었다. 17년 동안 해 온 공무원 생활을 접었다. 퇴직금으로 강원도와 충청도를 다니며 가축을 기르고, 나무를 심으며 1년을 지냈지만 아들은 호전되지 않았다. 이번엔 "사회생활을 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 진씨는 장애인들을 고용하는 회사를 찾아 아들을 입사시켰다. 하지만 아들은 남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길어야 4개월, 짧으면 몇 주 만에 회사에서 쫓겨나곤 했다. 진씨는 "2000년부터 옮겨 다닌 회사만 10군데가 넘는다"고 했다.

이런 아들이 장애인 사회적 기업인 무학위드에 입사하자 이번엔 1년여간 해오던 관광버스 운전을 그만두고 함께 '무학위드'에 입사해 출근했다. 오전 9시인 출근시간보다 훨씬 이른 오전 5시부터 아들은 옷을 갈아입고 기다린다. 진씨는 "무학위드의 출근 1등은 언제나 우리"라며 웃었다.

"아버지와 함께 일해서 좋으냐"는 질문에 두 손을 꼰 채 시선을 피해버리는 아들. 아버지 진씨가 "아들도 아버지의 정(情)을 아는지 예전 회사에서처럼 동료들과 싸우거나 불안해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는 "아들이 결혼해 가정도 꾸리면 좋겠지만 그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며 "이제는 '오늘 회사 식당에서 주는 계란이 맛있었어요' 하고 말할 만큼 밝아진 아들을 죽을 때까지 돌보는 게 꿈"이라며 웃었다.

 

-조선일보, 20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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