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편견의 잔인함

하마사 2012. 3. 6. 09:55

독설가 버나드 쇼가 로댕의 작품이라면 무턱대고 싫어하는 사람들을 초대했다. 쇼는 데생 한 장을 보여주며 "얼마 전 구한 로댕의 작품"이라고 했다. 손님들은 데생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다투어 떠들어댔다. 한참을 지켜보던 쇼가 말했다. "실은 로댕이 아니라 미켈란젤로의 작품인데…." 사람들은 저마다 편견에 물든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본다.

영국 수필가 앨프리드 G 가디너가 모자를 손질하러 가게에 갔다. 모자집 주인은 단골 중에 변호사와 선장들을 예로 들며 머리 둘레 7인치 넘는 사람이 지위도 높다고 말한다. 머리 크기가 7인치 안 되는 가디너는 졸지에 별볼일없는 인간이 돼버린다. 그는 수필 '모자철학'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이웃을 우리 자신의 잣대로 재고 자기 파벌의 셈법으로 계산한다. 볼 수 있는 것을 볼 뿐, 실제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작년 11월 거리를 청소하는 사진이 한 포털의 그날 사회분야 '네티즌 관심뉴스' 1위에 올랐다. 댓글도 "당선된 뒤에도 이러는 사람은 처음 본다"는 칭찬이 많았다. 오세훈 시장도 재임 때 한강 쓰레기를 치우거나(2009년 4월) 거리 청소를 했다(2011년 3월). 그러나 '관심뉴스' 10위에도 못 들었다. 그나마 달린 댓글도 "웃긴다"는 것이었다. "네티즌이 선동당하지 않게 돕고 싶다"는 어느 블로거의 분석이다.

▶자기네 집단은 좋게 보고 다른 집단은 나쁘게 보는 것을 사회심리학에서 '내(內)집단 편향적 지각(知覺)'이라고 부른다. 박선영 의원이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자 강제 북송에 반대해 단식 농성을 해온 지 열흘 만인 2일 실신했다. 박 의원이 병원으로 실려가는 사진이 보도되자 인터넷엔 좌파 쪽 네티즌들의 조롱과 야유가 쏟아졌다. "쇼하고 있네" "공천 따기 작전" "안면 근육을 보니 기절한 게 아니다" "코는 어느 병원에서 수술했나"….

▶좌파들은 인권을 따지다가도 북한 인권문제만 나오면 입을 닫아버린다. 탈북 여성 박사 1호 이애란씨도 단식을 해오다 좌파들의 침묵에 분노를 터뜨렸다. "동족의 고통에 이토록 무관심한 것이 신기하고, 북한 주민의 생명이 천성산 도롱뇽만도 못해 눈물이 난다"고 했다. 삿대질을 하다가도 상대가 불행을 당하면 언행을 삼가는 게 사람의 도리다. 위로는 못할망정 갖은 욕설이라니. 눈먼 편견만큼 잔인한 것도 없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2/3/5

'설교 > 예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길만이 생명이다  (0) 2012.03.09
세상의 희망   (0) 2012.03.09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0) 2012.03.02
천사와 악마  (0) 2012.03.02
[84회 아카데미 시상식] 흑인 가정부의 딸, 흑인 가정부 역할로 수상  (0) 2012.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