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연혁 스웨덴 쇠데르턴대 교수·정치학
적막할 정도로 평화로웠던 오슬로 외곽 우토야섬에서 한창 꿈에 들떠 있어야 할 청소년들이 사냥당하듯 하나씩 쓰러져갔다. 교회마다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고 정부청사 앞에는 애도의 물결이 줄을 잇는다. 장미를 손에 들고 오열하는 젊은이들, 제 자식을 잃은 듯 넋 나간 채 눈물만 흘리는 시민들…. 어떻게 평화로운 우리 땅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믿기지 않는다는 소녀의 인터뷰가 뉴스에서 흘러나온다.
북유럽은 1930년대 이후 사민당의 장기집권을 통해 복지제도를 잘 갖춘 나라들이다.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는 행복지수, 청렴지수, 삶의 질 측정에서 항상 세계 최상위그룹에 속한다. 정당들은 국민의 행복을 가장 중요한 정치목표로 설정하고, 선거 때마다 삶의 질 향상을 놓고 치열한 정책경쟁을 벌인다. 이런 사람 중심의 나라, 복지천국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북유럽은 최근 세계 분쟁지역에서 양산된 정치망명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이민자의 수가 급속도로 늘었다. 국민 가운데 이민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덴마크 8%, 노르웨이 11%, 스웨덴 18%로 빠른 속도로 다문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이들 중 다수는 국가가 제공하는 사회통합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언어·재취업 교육을 통해 새로운 사회로 진입하는 데 성공하지만, 이질적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업 상태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상당수이다. 오슬로 동부지역, 코펜하겐 북부지역, 스톡홀름 서북지역은 이민자가 더 많고 일부 지역은 90% 이상이 이민자로 차 있다.
더 큰 문제는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이민자들이 양산되어 사회적 격리현상이 급속히 진행된다는 점이다. 이들은 전문직 능력이 있어도 언어가 되지 않아 본국인이 꺼리는 낮은 임금의 직종에 종사하거나, 다자녀 가정으로 복지혜택을 누리면서 하층민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종교적·문화적 충돌 현상은 또 다른 화약고로 인식된다. 날로 늘어나는 이슬람교도의 수는 기독교인을 능가하거나 버금가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슬람 성전 건립으로 조용한 마을이 갈등을 빚기도 한다. 실업자 양산, 범죄 증가, 복지비용 증가 등 사회 문제의 원인이 늘어난 이민자에 있다고 보는 극우정당들이 점차 세력을 확대하고 있는 점도 북유럽 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북유럽 사회의 또 다른 문제는 서구의 어느 나라보다 빈번한 동거(同居)문화이다. 결혼이 아니라 동거를 통한 가족구성이 50%를 넘고, 부모가 다른 자녀들의 구성비가 전체 가정의 30%에 이를 정도로 의붓아버지, 의붓어머니 밑에서 자라는 자녀가 많다. 이번 사건의 범인인 브레이빅처럼 이혼한 엄마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전체 아동의 15%에 이를 정도로 가족 해체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사회심리학자들은 가족 해체의 증가가 아동에 대한 애정과 관심의 결핍, 소외아동들의 정서불안을 낳아 '제2의 브레이빅'을 양산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이번 노르웨이 학살은 이처럼 이민정책과 이민자 사회통합 정책의 실패, 기형적 극우정당의 준동, 소외아동의 정서적 방황을 만들어낸 가족 해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빚어진 결과다. 다문화 가정과 이혼가정이 늘어나는 한국에서도 내실 있는 다문화 정책을 펴나가면서 소외아동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조선일보, 201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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