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엔 左도 右도 없습니다… 우리들의 우환과 시름 덜어줄 뿐"
도시 삶에 지친 우리들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돌아볼수 있는 곳이 올레
官보다 먼저 길을 내야 길의 파괴 막을 수 있어 그래서 미친듯이 길을 내
제주의 자연은 '여성성' 누구나 두루 감싸안아 다른 곳선 찾기 힘는 강점
3년 전 한 전직(前職) 여성언론인이 시작한 제주도의 '올레'혁명이 이제 제주를 넘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제 육지의 지방자치단체들까지 무슨 길 무슨 길하며 경쟁적으로 유사품을 쏟아내고 있다.
2009년 한 해 동안만 올레길을 걷기 위해 제주를 찾은 '육지사람'이 25만명, 올해는 6월 말 이미 25만명을 넘어섰다. '올레 간다'는 말이 이제는 '제주도 간다'를 대신할 정도다. 제주 사람들도 바뀌고 있다.
"몇십억원씩 들여 관광지를 조성해도 사람들이 안 찾아오는데 애들 장난 같은 길을 내놓고 뭐하는 짓이냐"고 꾸짖던 마을 어르신들이 스스로 동네에 작은 길을 내 찾아온다. "다른 올레 가봤더니 아스팔트를 통과하지 않던데 우리 동네는 아스팔트를 지나는 바람에 사람들이 덜 찾아오는 것 같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운치 있는 3km 길을 냈다. 새 길을 올레로 해주게." 사단법인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의 O.K.가 있어야 한다. "우리야 파란색 말(馬) 표지판만 바꾸면 되고 길도 더 운치 있게 바뀌는데 주민들의 청을 안 들어줄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서 이사장을 3일 올레7길 도중에 있는 서귀포와 중문 사이 법환포구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옅은 해무(海霧)가 퍼져 더욱 아름다운 제주 바다를 보며 이뤄졌다.
―6년 만이다. 그때는 언론사 그만두고 '여성흡연잔혹사'라는 책을 써서 기자와 인터뷰를 했었는데.
"그때 많이 힘들었다. 이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으로 잠시 있다가 그것도 그만두고 2006년 9월 스페인 산티아고의 800km 순례길을 36일간 걸었다."
―기자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 앞에서 졸았던 일화는 지금도 가끔 회자되던데.
"정확히 말하면 대통령 때는 아니고 1992년 대선 패배 후 정계 은퇴를 하셨을 때다. 두어달에 한 번씩 정치부 여기자들을 불러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그랬다. 잘 알겠지만 그분은 혼자 이야기하는 스타일이다. 대부분 그전에 들어서 다 아는 내용이었다. 난 지루한 것을 못 참는 성격이다. 억지로 앉아 있자니 졸음이 왔다. 졸다가 깨보니 다 나를 보고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 기자, 많이 피곤하군?' 하기에 '오늘 새벽까지 마감하느라 잠을 못 잤습니다'고 얼버무렸다. 그래서 곧 끝낼 줄 알았더니 저녁 6시에 시작한 자리가 밤 10시가 넘도록 계속됐고 DJ의 말씀은 끝날 줄을 몰랐다. 결국 난 깊이 잠들었고 옆 기자가 꼬집는 바람에 큰 소리로 '아야!' 하고 잠이 깼다. 그 자리는 어색하게 끝났다."
―운동권 출신에다 감옥도 갔다 온 것으로 안다. 현재 본인의 정치성향은 어떤 편인가?
"그런 것도 말해야 하나?"
―요즘은 그걸 아는 게 그 사람의 정치·사회적 견해를 아는 데 도움이 된다.
"글쎄, 분명 민정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정치노선을 좋아하지는 않고. 그렇다고 민주당이나 민노당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고. 막연하게 한나라당 반대진영이 잘해줬으면 하는 기대 정도. 정치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좌파?
"그런 건 아니고. 내가 길을 냈다니까 처음에 올레가 '좌파의 길'이라고 소문이 났다. 잠깐이지만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한 것도 작용했겠지. 그러나 길에는 좌우가 없다. 우파건 좌파건 우환과 시름은 결국 다 똑같다. 그런 우환과 시름을 덜어보고자 길을 만들었는데 더 큰 우환을 만들어내는 좌우를 이 길에 연결하고 싶지 않다. 올레가 좌파의 길이라면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그렇게 열광하겠는가?"
- ▲ 올레길이 생기면서 비로소 일반인들도 가까이 가게 된 올레7길 공물해안을 배경으로 선 서명숙 이사장은“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으로 생각했던 꿈이 3년도 되지 않아 다 이뤄졌다”며“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속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해 마음이 짠하다”고 말했다./이종현 객원기자 grapher@chosun.com
―지금은 소설가이자 자전거 마니아로 유명한 김훈씨와 함께 직장생활을 한 적이 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과거 김훈씨가 '경쟁지' 한겨레21과 인터뷰를 해 여성들로부터 '마초'라는 비난을 받았고 시사저널 내 후배 여기자로부터도 비판이 제기되자 사표를 냈다. 그때 김훈씨 바로 아래에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그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였을지 궁금하다.
"나도 그 여기자와 생각은 비슷했다. 그러나 선배한테 그럴 수는 없는 거다. 그리고 '김국'(지금도 서씨는 당시 김훈 국장을 줄여 이렇게 불렀다)은 상사로서 멋졌다. 일을 믿고 맡겼고 문제가 생기면 본인이 앞장서 책임졌다. 그가 보수이건 마초이건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얼마 전 올레에 와서 김국이 딱 한 마디했다. '서명숙, 정말 좋은 일 했다.' 뛸 듯이 기뻤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확히 뭔가? 원래 길 내는 일은 관(官)의 업무인데?
"기존에 있던 길에 이름을 붙이고 내버려진 길을 재발견하고 막힌 곳은 연결해 새로운 길을 만들고 뭐 그런 거다. 그동안 외진 길이라 해서 발길이 끊어졌던 그런 길들의 가치를 되찾아주는 것이라고나 할까. 그렇지 않아도 우리 어머니가 기자 그만두고 제주도에 가서 길 내는 일을 하겠다고 했더니 '미친년'이라 했다. '그동안은 누가 딸 뭐하느냐고 물으면 언론사 국장이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했었는데 이제 "고향 가서 길 내고 다닌다"고 말해야 하느냐'고. 그런데 한 달 전에 정말 보람 있는 일이 있었다. 어머니는 36년 동안 서귀포의 상설시장에서 '서명숙상회'라는 식료품 가게를 하셨었다. 한 달 전 그 시장 이름이 '올레시장'으로 바뀌었다. 테이프커팅할 때 초청을 받아 서울 사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갔었는데 표현은 안 하셨지만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서 이사장은 잠깐 울먹였다)."
―가히 올레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우리끼리 올레용어집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한다. 올레 한다는 올레를 걷다, 올레꾼은 올레 걷는 사람, 올레폐인, 올레뽕은 올레에 중독된 사람, 올레이민(移民)도 있다. 올레를 걷다 제주에 매혹돼 아예 제주도로 이사를 오는 사람이다. 그보다 조금 못한 올레 '장기수'는 제주도에 숙소를 얻어놓고 몇주 몇 달씩 올레를 걷는 사람이다. 올레증후군은 올레를 하고 집으로 돌아간 뒤 겪는 '질병'이다. 파란색(안내표지판 색깔)만 보면 따라간다, 수돗물 소리만 들어도 파도소리로 듣는다, 일기예보 나오면 제주도 것부터 본다 등등. 토막올레는 관광차 왔다가 잠깐 올레를 걸어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21개의 올레를 만들었다. 불과 3년 만에 몇 명의 사람만 데리고서 정말 놀라운 성과다. 하지만 느리게 걷자면서 올레는 '속도전'으로 몰아붙이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조금 전에 함께 걸었던 올레7길의 해안 구간도 조금만 늦었으면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로 황량한 도로를 만들었을 거다. 이미 제주도 전역에 도로조성계획이 되어 있다. 그보다 먼저 올레를 내야만 '길 파괴'를 막을 수 있다. 제주도 둘레 4분의 3까지 길을 냈다. 나머지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4분의 1만 내고 나면 지금처럼 '미친 듯이' 하지는 않을 거다. 얼마 전에는 제주 북쪽의 섬 추자도에도 올레길을 냈다. 환상적이다. 꼭 가보라."
―왜 이렇게 사람들이 올레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하나.
"사람들이 그만큼 도시의 삶에 상처받고 지쳐 있는 것이 아닐까? 나도 욕망의 노예였지만, 돌이켜보면 도시는 욕망이다. 나는 그것을 무조건 버리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잠시라도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돌아보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런 특별한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그동안 우리에게는 그런 곳이 없었다. 올레가 그것을 제공한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고 행동방식을 바꾼다는 점에서 올레는 분명 혁명이다.
"그건 너무 거창하고. 나는 올레가 역사나 생태, 문화가 아닌 치유의 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뭘 가르쳐주는 길이 아니다. 그저 내가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지, 지금의 시련을 어떻게 넘어서야 하는지를 성찰토록 하면 된다. 제주도에 역사유적이 많고 빼어난 경치도 많지만 올레는 평범한 제주 주민들의 삶을 보고 그동안 숨어 있던 은은한 아름다움의 숲과 해변들을 지날 뿐이다. 이야기는 올레를 찾는 사람들이 만들어가고 있다."
―올레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지는가?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고통을 이기기 위해 올레를 찾아 걷다가 문득 뭔가를 연상시키는 장소에 이르면 대성통곡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러면 함께 걷던 올레꾼들 모두 슬픔을 같이한다. 흔히 보게 되는 장면이다. 얼마 전에는 고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온 아버지가 있었다. 아들과 갈등이 하도 심해 1주일 동안 올레를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평소 바쁘다는 이유로 아들과 이야기를 못했던 아버지는 이곳에 와서 아들과 한 이야기의 양이 지난 1년보다도 많다며 좋아했다. 아들도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꽃이며 나무며 이름을 가르쳐주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 아들이 나에게 말했다. 함께 걸으면서 뒤처지는 아버지를 보며 늙으셨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가 끝나고 다시 길을 나설 때 그 아들이 아버지의 배낭까지 메는 것을 봤다. 올레에 있다 보면 눈물 마를 날이 없다."
―육지에도 지금 여기저기 비슷한 길들이 생기고 있다.
"요즘 다른 지방에도 이런저런 길이 생긴다니까 처음에 올레 만들 때 소극적이던 제주 공무원들이 더 걱정을 한다. 제주로 오던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가면 어떡하느냐고. 난 걱정하지 않는다. 제주의 강점은 제주 자연이 가진 여성성이다. 제주는 화산섬이면서도 위압적이거나 거칠지 않고 두루 감싸 안는다. 올레를 걸으면 누구나 그 점을 느끼면서 마음속에 맺혔던 응어리가 스르르 풀려버리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이런 풀림을 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인생2모작은 대성공이다. 이제 목표를 이룬 건가?
"아직 남았다. 올레 사업이 안정되면 1~2년 무작정 해외여행을 다녀올 것이다. 돌아오면 올레 한 모퉁이에 제주에서 나는 식재료만으로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한 테이블만 놓고 파는 음식점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이미 레시피를 개발 중이다."
서명숙 이사장은…
‘길을 내는 여자’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1957년 제주생(生)으로 고려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잡지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2001년 주간지 시사저널 편집국장을 지냈다. 2005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끝으로 언론인 생활을 정리하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던 중 “지금 한국은 미친 나라다. 산티아고와 같은 길이 한국에 특히 필요하다”는 영국인 친구의 권유를 받아들여 2007년 9월부터 제주에 올레길을 열기 시작했다. 올레란 집에서 큰 길로 나가는 골목길을 뜻하는 제주말이다. 저서로 ‘여성흡연잔혹사’, ‘놀멍쉬멍걸으멍-제주걷기여행’등이 있다.
-조선일보, 201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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