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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추모 다큐 만든 대성그룹 세자매

하마사 2010. 6. 29. 22:40

어머니 추모 다큐 만든 대성그룹 세자매
"기업 발전할 수 있었던 건 어머니 헌신과 희생 덕분… 세상에 알리고 싶었어요"

1994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여성단체장들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한 대기업 회장 부인의 차림새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김 전 대통령은 "흔하지 않으면서 아름다운데, 수입한 옷이냐"고 물었다. 그 부인은 "아니다"면서 웃었다. 동대문시장의 자투리 천으로 직접 만든 옷이었다.

대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김수근 회장의 부인이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던 여귀옥 여사(1923~2006)를 기리는 다큐멘터리 '사랑은 오래 참고(감독 권순도)'를 여사의 세 딸이 제작했다. 29일 시사회를 앞두고 모인 김영주(대성그룹 부회장·화가)·정주(연세대 신학과 교수)·성주(MCM그룹 회장) 세 자매는 "남성 위주로만 기록되기 쉬운 기업 역사를 제대로 쓰고, 어머니가 하신 일을 알리기 위해 만들게 됐다"고 했다.

대성그룹 고 여귀옥 여사를 기리는 다큐멘터리를 만든 장녀 김영주 대성그룹 부회장(오른쪽), 차녀 김정주 연세대 교수(왼쪽), 막내 김성주 MCM 회장(가운데). 이들이 펴든 책은 2007년 대성그룹 창립 60주년을 맞아 발간된 여귀옥 여사의 회고록이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다큐멘터리는 1993년 3남인 김영훈 현 대성그룹 회장이 결혼할 당시 여 여사가 기뻐하며 찬송가를 부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어 가난한 집안에서 신앙의 힘과 인내로 가문을 일궈낸 여사의 삶을 보여준다.

연탄공장으로 시작해 굴지의 에너지 기업으로 성장한 대성그룹은 1947년 대구 칠성동 165㎡(50평) 땅에서 시작됐다. 창업주 김수근 회장(1916~2001)이 서기 한 명과 일꾼 한 사람만 데리고 문을 열었다. 크게 성공하라고 '대성(大成)'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은 여사였다. 한참 뒤 회사가 국내 10대 그룹으로 도약했을 때도 여사는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어다녔다고 한다. 장녀 김영주 부회장은 "내가 유학 때 어머니로부터 받은 편지도 신문 전단지 뒷장에 쓴 것이었다"고 했다.

여사의 절약과 나눔 정신은 이전 세대의 희생과 헌신을 그대로 보여준다. 막내 김성주 회장은 여사가 입던 '흥부 수영복'을 예로 들었다. "낡은 수영복을 기워 입어 우리 자매가 부르던 이름이에요. 새 수영복을 사드려도 '멀쩡하다'면서 계속 입으셨죠. 저도 자랄 때 오빠·언니가 물려준 헌 옷과 헌 물건만 입고 썼어요. 불만이 있기도 했죠. 하지만 기운 옷을 입고 계신 어머니를 보면서 마음을 바로잡았어요."

차녀 김정주 교수는 "어머니는 항상 '당연히 내 것인 것은 없다, 못 가진 사람들의 눈물을 씻어주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고 회고했다. 여사의 가르침은 '공익(公益)을 구할 때 수익(收益)을 얻는다'는 대성그룹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사는 아껴 모은 돈을 수시로 기독교 여성운동인 '절제회' 운동에 바쳤으며, 특히 금주·금연 운동에 앞장섰다. 다큐 시사회는 29일 오전 10시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 회관에서 열린다. (02)754-1707

 

-조선일보, 201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