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은메달보다 기쁜 동메달

하마사 2010. 2. 23. 10:22

銀 "좀 더 했더라면…" 銅 "메달 딴게 어디야"
2위 아쉽고 3위는 행복 美연구팀 실험 사실로

#장면 1

지난 18일 밴쿠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 메달 시상식장. 아시아 선수 최초로 우승한 이상화와 동메달을 딴 중국의 왕베이싱은 환한 표정으로 사진 기자들 앞에 포즈를 취했다. 반면 은메달리스트인 독일의 예니 볼프는 엷은 웃음을 띠긴 했지만 뭔가 아쉬움을 떨쳐내지 못한 얼굴이었다. 볼프는 '스프린트 여제(女帝)'라 불리는 선수였다.

#장면 2

모태범이 은메달을 딴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000m 시상식. 금(金)을 딴 미국의 샤니 데이비스와 동(銅)을 딴 미국의 채드 헤드릭이 환호하는 옆에서 모태범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남자 500m 금메달에 이어 한국 스피드스케이트 사상 처음으로 두 번째 메달을 따고도 모태범은 "금메달도 딸 수 있었는데 아쉽다"고 했었다.

다른 종목 시상식에서도 장면은 큰 차이가 없었다. 금메달리스트와 함께 행복한 동메달리스트, 그리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은메달리스트. 이처럼 '아쉬운 은메달과 행복한 동메달'에는 어떤 비밀이 담겨 있을까.

누가 은메달이고 누가 동메달일까요?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 시상식에서 이상화(가운데)가 금메달을 목에 건 날, 2위를 한 독일의 예니 볼프(오른쪽)는 그리 기쁜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동메달을 딴 중국 왕베이싱이 행복한 표정이었다./대한체육회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심리학 연구팀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시상식 사진을 일반인에게 보여 주고 표정으로 '행복도' 점수를 매기는 등 '메달의 심리학' 실험을 해왔다. 이 실험 결과는 밴쿠버의 시상식 풍경과도 거의 일치한다고 캐나다 일간지 '글로브 앤드 메일'이 최근 보도했다.

노스웨스턴대학의 빅토리아 메드백 박사는 "2위는 조금 더 잘했더라면 금을 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기 쉽지만, 3위는 최소한 메달은 건졌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경향이 많다"고 했다. 성적만 따지면 더 행복해야 할 넘버 2가 '만약(if)의 심리'에 빠져 넘버 3보다 우울해지기 쉽다는 설명이다.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000m 시상식에서도 금·은·동의 표정은 여자 500m와 비슷했다. 미국의 샤니 데이비스(금·가운데)와 채드 헤드릭(동·왼쪽)이 환한 표정인 데 비해 모태범의 얼굴엔 아쉬움이 묻어 있다./연합뉴스

캐나다의 심리학자인 솔 밀러도 "2위는 팬과 동료, 스폰서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실망감에 빠지기 쉽다"고 했다. 밀러는 "올림픽에서 메달보다는 참가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 1996년 애틀랜타 하계올림픽에서 스포츠용품업체 나이키는 '당신은 은메달을 딴 것이 아니라, 금메달을 놓친 것'이라는 도발적인 광고 문구를 내세웠다가 올림픽 정신을 훼손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챔피언이나 다름없는 은메달리스트를 '패배자(loser)'로 만드는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었으나, 이와 달리 "은메달에 대한 정곡을 찌른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2010/2/22,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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