銀 "좀 더 했더라면…" 銅 "메달 딴게 어디야"
2위 아쉽고 3위는 행복 美연구팀 실험 사실로
#장면 1
지난 18일 밴쿠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 메달 시상식장. 아시아 선수 최초로 우승한 이상화와 동메달을 딴 중국의 왕베이싱은 환한 표정으로 사진 기자들 앞에 포즈를 취했다. 반면 은메달리스트인 독일의 예니 볼프는 엷은 웃음을 띠긴 했지만 뭔가 아쉬움을 떨쳐내지 못한 얼굴이었다. 볼프는 '스프린트 여제(女帝)'라 불리는 선수였다.
#장면 2
모태범이 은메달을 딴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000m 시상식. 금(金)을 딴 미국의 샤니 데이비스와 동(銅)을 딴 미국의 채드 헤드릭이 환호하는 옆에서 모태범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남자 500m 금메달에 이어 한국 스피드스케이트 사상 처음으로 두 번째 메달을 따고도 모태범은 "금메달도 딸 수 있었는데 아쉽다"고 했었다.
다른 종목 시상식에서도 장면은 큰 차이가 없었다. 금메달리스트와 함께 행복한 동메달리스트, 그리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은메달리스트. 이처럼 '아쉬운 은메달과 행복한 동메달'에는 어떤 비밀이 담겨 있을까.
- ▲ 누가 은메달이고 누가 동메달일까요?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 시상식에서 이상화(가운데)가 금메달을 목에 건 날, 2위를 한 독일의 예니 볼프(오른쪽)는 그리 기쁜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동메달을 딴 중국 왕베이싱이 행복한 표정이었다./대한체육회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심리학 연구팀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시상식 사진을 일반인에게 보여 주고 표정으로 '행복도' 점수를 매기는 등 '메달의 심리학' 실험을 해왔다. 이 실험 결과는 밴쿠버의 시상식 풍경과도 거의 일치한다고 캐나다 일간지 '글로브 앤드 메일'이 최근 보도했다.
노스웨스턴대학의 빅토리아 메드백 박사는 "2위는 조금 더 잘했더라면 금을 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기 쉽지만, 3위는 최소한 메달은 건졌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경향이 많다"고 했다. 성적만 따지면 더 행복해야 할 넘버 2가 '만약(if)의 심리'에 빠져 넘버 3보다 우울해지기 쉽다는 설명이다.
- ▲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000m 시상식에서도 금·은·동의 표정은 여자 500m와 비슷했다. 미국의 샤니 데이비스(금·가운데)와 채드 헤드릭(동·왼쪽)이 환한 표정인 데 비해 모태범의 얼굴엔 아쉬움이 묻어 있다./연합뉴스
캐나다의 심리학자인 솔 밀러도 "2위는 팬과 동료, 스폰서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실망감에 빠지기 쉽다"고 했다. 밀러는 "올림픽에서 메달보다는 참가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 1996년 애틀랜타 하계올림픽에서 스포츠용품업체 나이키는 '당신은 은메달을 딴 것이 아니라, 금메달을 놓친 것'이라는 도발적인 광고 문구를 내세웠다가 올림픽 정신을 훼손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챔피언이나 다름없는 은메달리스트를 '패배자(loser)'로 만드는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었으나, 이와 달리 "은메달에 대한 정곡을 찌른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2010/2/22,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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