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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원의 영적기도

하마사 2009. 5. 16. 10:00

4차원의 영적기도

 

 

제1장. 기도의 자세


기도는 하나님과 사귀는 것이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행위이며,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는 시간이며,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감사하는 시간이며, 우리의 삶에서 가장 깨어있는 시간, 하나님의 소리를 듣는 시간이며, 나를 치료하는 시간이다.


1. 소극적(수동적) 기도
1). 의무감에서 하는 기도
2). 형식적, 기계적 기도
3). 기도 시간에만 하는 기도
4). 바쁜 일이 있으면 소홀하는 기도
5). 생각나는 부분을 기도
6). 답답함 때문에 하는 기도
7). 문제가 생기면 하는 기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소극적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은 기도에 관한 훈련을 전혀 받지 않았기 때문이거나, 기도의 기본보다는 기도의 방법론에 대해서만 훈련받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과 같은 것들이다. 즉 진정 하나님앞에 의미있는 기도보다, 오직 나를 위한 응답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기도훈련만을 받았기 때문이다. 기도는 내가 원하는 응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기도 그 자체가 의미를 가지는 적극적 기도이어야 한다.


2. 적극적(능동적) 기도
1). 자발적으로 하는 기도: 자신도 모르게 하는 기도, 기도와 내가 일체화가 되는 기도.
2). 인격적인 교제를 위한 기도: 하나님과 나와의 인격적인 교제를 위한 기도.
3). 기도하는 시간이 즐겁다: 기도는 크리스챤에게 가장 즐거운 단어이다.
4). 기도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
5). 마음으로 깊이 하나님과 만난다.
6). 항상 기도한다: 이성과 영성의 분리, 머리와 마음의 분리된 상태에서 영으로, 마음으로 늘 하는 기도.

3. 기도는 신앙생활의 활력소이며 삶의 원동력이 된다
기도는 영의 호흡이다. 공기중의 산소를 호흡함으로 육체가 살아움직이는 것처럼, 영적인 기도는 영-혼-육을 늘 새롭게, 강건하게 유지하게 하는 활력소이며, 삶의 원동력이 된다.


1). 신앙의 생활화
요17: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신앙은 삶이다. 신앙과 삶은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크리스챤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거나, 영향을 받으면 안된다. 오히려 빛과 소금으로 세상에 영향을 미치며, 세상을 변화시키며 살아야 한다. 그렇지만 세상에서 살면서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세상의 좋지못한 영향력은 점점 더 강해진다. 세상은 점점 더 세속화되고, 더 추악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많은 크리스챤들이 현세적이며, 물질적이며 감각적인 세상에 살다가 자신도 모르게 세상에 끌려들어가서 비 신앙적 마음, 생각, 삶의 방식을 따르게 된다. 크리스챤이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으로 마음을 빼앗기게 됨으로 그들의 마음이 굳어지고 신앙과 삶이 서로 다른 2중적인 삶을 살게된다.
이처럼 크리스챤이 세상의 영향력을 받게 되는 이유는 이들이 기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는 세상의 영향력을 밀어내는 힘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통로이다. 기도로 하나님이 주시는 삶의 활력소를 끊임없이 받음으로 삶의 모든 부분에서 힘과 용기를 북돋고, 소망과 삶의 의욕과 의미와 가치가 풍요한 삶을 살아야 한다. 기도는 껍질뿐인 종교인을 풍성한 삶의 신앙인이 되게 한다. 현대 교회의 가장 절실한 문제는 기도의 문제이다. 기도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는 것은 마치 호흡이 잘못된 것처럼 그것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부분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2). 성직, 직분의 수행
직분자에게 기도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해져야 말씀도 전하고, 봉사도 하게 된다. 삶의 모든 구석구석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간섭과 인도함이 있어야 한다. 삶이 하나님과 일치되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마음이 하나님과 일치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알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모르는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해서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기보다 바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깊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르게 하고 깊이 하는 기도를 해야 내속에서 올라오는 인간적 생각과 수단을 다스릴 수 있고, 그래야 직분을 제대로 감당할 수가 있다. 이것은 오직 올바른 기도로써만 가능하다. 기도는 이땅에서 하나님과 연결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기도를 통하여, 오직 기도로 속에서 솟아오르는 이성과 육성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뜻을 쫓아갈 수 있다.


3). 마음의 평안과 기쁨
영의 기도를 통해서 내면의 세계에 존재하시는 성령님을 만남으로 평안, 위로, 기쁨의 마음을 소유하게 된다. 영적기도로 우리에게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이 바로 이 마음의 평안이다. 세상이 요동쳐도 내 마음은 세상과는 차원이 다른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평안하게 된다. 크리스챤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과는 다른 차원, 즉 천국이라는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 오는 영적인 힘을 가지고 세상의 파도를 제압하며 사는 사람이다. 몸은 세상에 있지만, 마음은 차원이 다른 곳, 즉 하늘에 두고 살아야 한다. 땅은 흔들리고 변하고 파도치지만 하늘은 그렇지 않다. 몸은 땅에 두고 살지만, 심령은 하나님과 연결되어있어야 한다. 제자들은 세상의 파도롤 보고 마음도 흔들렸다. 마음에 세상의 파도를 담았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의 파도에 빠져들어갔지만, 예수님은 마음의 평안함으로 이러한 현실의 파도를 제압하셨다. 세상을 이기는 큰 능력은 고요함, 평안함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영적인 힘이 우리에게 오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바로 마음의 평안과 기쁨이다. 이를 위해서 기도해야한다. 기도로 하늘에서 오는 것, 즉 하나님의 평안으로 마음을 채워야 한다. 이런 사람이 세상을 이기고 세상의 파도를 제압한다.


4). 하나님의 능력
능력과 은사는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주시는 신령한 선물인바, 우리는 이들을 기도로 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능력과 은사를 달라고 기도해서는 안된다. 은사와 능력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으로부터 흘러나온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씨앗이 되어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럴 때 이렇게 나타나는 은사가 아름답게 나타난다.


5). 영성의 발전
영성은 우리 내면에 있는 그리스도의 성품, 성령의 성품이다. 영성은 성령께서 우리안에 충만하시며 그의 지배에 따라 나의 본능, 본성, 육신, 자아가 다스림을 받아서 사는 것이며, 또한 영성이 충만한 삶은 이러한 다스림을 받는 삶이 억지가 아니라, 기쁨으로 자연스럽게 되는 삶이다. 세상은 점점 이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성이 강조될수록 영성이 사라지고 비인간화되어간다. 미래의 사회는 더욱 기계적, 비인간적, 조직적이 되고, 더욱 복잡해지고, 막중한 스트레스에 시달림으로 인간관계는 더욱 거칠어지게 된다. 이러한 현실에서 영성은 너무나 중요하다. 크리스챤에게 영성은 생명력이다. 영성이 없다면 죽은 크리스챤이다. 이제 세상이 비인간화될수록 더욱더 영적인 삶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영성을 공급해주고, 발전시키고 성장시키는 길이 바로 기도이다. 기도는 우리를 깊은 영적인 세계로 이끌어준다. 오직 기도로 영성이 개발되고 발전되며,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지배를 받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우리에게 들어오게 된다. 세상은 쉴새없이 파도가 치고 있다. 이 파도를 이기기 위해서는 주님 계신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것은 오직 기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오늘날 사람들은 육성은 음식으로, 이성은 교육을 받아서 발전시키고 있으나 영성은 무시하고 있다. 영성도 이성이나 육성과 마찬가지로 발전하고 성장시켜야 하는데, 그것은 오직 기도로만 가능하다.


제2장. 기도의 정의


1. 주님이 제자들에게 시키신 기도훈련
마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기도는 훈련이다. 믿음과 구원은 거저 주시는 것이지만, 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모두 훈련을 필요로 한다. 예배, 찬송, 봉사, 헌신, 기도 등등 이 모든 일들은 훈련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기도의 훈련은 모든 크리스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예배나 찬송은 늘 하는 것이 아니지만, 기도는 영혼의 호흡으로서 늘 하여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호흡이 잘못되면 몸의 어느 한 부분도 강건할 수 없는 것처럼 기도가 잘되지 못하면 믿음생활의 어느 부분도 제대로 될 수가 없다.
한국 기독교의 문제는 기도가 잘못된 것으로붙 비롯된 것이다. 무속신앙에 근거한 기도, 돌무더기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손비비며 기도하던 그대로 무릎을 꿇고 손비비며 그저 자꾸 무엇인가만 달라고 기도한다. 이런 기도가 바로 5절의 외식하는 자의 기도요, 7절의 이방인의 기도이다. 돌무더기가 사람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돌무더기와 사람 사이에 아무런 관계도 없고, 마음의 통함도 없고 감정도 없이 그저 형식적으로 허리만 굽히고 손만 비벼 무엇을 얻어내려는 것, 이것이 바로 외식하는 자의 기도요, 이방인의 기도이다. 이런 기도를 통하여 무엇을 얻어내려고 하는 자세로부터 교회의 모든 문제가 생긴다. 삶이야 어찌되었든 복만 받으면 된다는 기복신앙, 질질 끌려 다니는 수동적 믿음, 권위주의 교권, 신앙과 생활의 분리등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한국의 크리스챤들이 기도는 많이 하지만 세상을 변화시키거나 이기지 못하고 있다. 잘못된 기도를 하기 때문이다.
히5:13-14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제대로 된 기도의 훈련을 받으라. 주님의 기도훈련을 받으라.


1). 아버지에게 하라.
기도는 어린 자녀가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나아가는 것이다. 품에 안겨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주고 받는 것이다. 이러한 기도에 형식이나 틀에 박힌 언어나 표정이 있다면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마19:14에서 천국, 즉 하나님의 임재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여기에는 계급이나 높낮이가 없다. 함께 딩굴고 함께 사는 것이다. 주님의 기도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이었다. 아버지에게 나아갈 때 중요한 것은 마음이지 외모, 외형, 표정, 목소리가 아니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인정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편한 자세로 기도하라.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고 기도가 자꾸 막히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무겁고 두렵게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참 사랑의 아버지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다. 세상의 아버지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잘못된 개념, 나를 이용하고, 일시키고, 부려먹는 아버지의 개념을 버려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 상에 따라 기도가 틀려지고 삶이 틀려지고 설교가 틀려진다. 두려운 하나님의 개념으로부터는 정죄하는 메시지, 두려워하는 기도, 두려워하는 삶이 나온다. 바리새인들의 문제는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잘못된 하나님 상이었다. 하나님 상이 잘못되었으므로 기도가 막히고 믿음생활이 잘못되었던 것이다. 두려운 하나님 개념을 가지면 아무리 기도해도 성격이 거칠게 되는데, 그 이유는 평안하지 못한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하나님은 너희의 좋으신 아버지이다. 끝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분, 용서하시는 분, 보살피시는 분이다' 하고 우리에게 살아계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개념을 넣어주시는 것이다. 기도 속에서 이렇게 좋으신 아버지를 만남으로 편안함이 있어야 한다. 기도를 통하여 평안한 하나님을 만나라. 이를 위한 기도 훈련의 첫단계는 좋으신 아버지를 자꾸 부르는 것이다. 왜 좋은지, 그 이유를 자꾸 발견해서 그 이유를 입에 담아 고백하는 훈련을 하라. 목자가 되셔서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는 분, 병을 고쳐주시는 분, 머리털 까지도 헤아리시는 분, 산성처럼 보호하시는 분 등등. 그리고 그 품안에 안기는 훈련을 하라.


2). 하늘에 계신 분에게 하라.
여기서 말하는 하늘이란 대기중의 하늘이 아니라, 물건이 아닌 하늘, 문제와 어려운 현실이 아닌 곳을 말한다. 즉 지금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문제속에 갇히거나, 환경속에 갇히신 분이 아니라는 뜻이다. 문제와 어려움의 현실을 벗어난 곳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계신 그 하늘은 어디인가?
눅17:21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이 계신 하늘은 바로 나에게 접촉한 곳, 즉 나의 속이다. 다만 우리의 마음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마음으로부터 문제와 답답함을 분리시켜야 한다. 우리의 마음에서 어려운 현실이 주는 걱정, 근심, 두려움, 답답함을 씻어내야 하늘에 계신 하나님, 즉 우리의 마음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깨끗하고 평안한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계신 깊은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기도를 밖으로 하지 말고, 안으로 해야한다. 주님이 가르치시는 기도는 구약 선지자들의 기도처럼 하늘을 향하여 외치고 부르짖는 기도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을 향하여 안으로 하는 기도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골방으로 들어가라고 하시는 것이다. 즉 내 영혼안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라는 것이다. 내 영혼속에 하나님의 임재,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인식하라는 것이다. 내 영혼안에 계신 하나님과 만나고, 연합하고, 도움을 받으면, 그것이 즉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되는 것이며, 여기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손을 잡고 점점 밖으로 나가서 현실속에, 문제속에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멀리, 밖에서부터, 높은 하늘에서부터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기 때문에 기도가 어려운 것이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단지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 믿음만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귀신도 이를 믿고 떨기 때문이다.(약2:19) 그러면 어떤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인가?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심을 믿는 믿음이다. 왜냐하면 이런 믿음이 바로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포도나무와 가지와 같은 실제적인 관계, 만남의 관계로 만들어 가는 것이요, 이런 믿음이 주가 내안에, 내가 주안에 있는 관계로 이끌어 가는 것이요, 그럴 때,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우리 안에서 우러나오는 하나님의 은혜로 풍성한 열매를 맺게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나와 함께 내안에서 살아가시는 주님을 발견하게 될 때, 내가 주안에, 즉 보좌에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내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을 만나고 발견하지 못하게 되면 보좌에 계신 하나님도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내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를 하지 못하면, 그런 훈련을 받지 못하면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요, 삶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내안에 하나님을 모시는 사람이다. 내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 바로 살아있는 예배이다. 내안에 계신 하나님이 일하실 때, 내가 일하는 것이요, 내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나도 덩달아 영광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본질이다. 하나님이 그냥 막연하고 피상적이기만 하면, 나의 삶도 역시 막연하고 피상적이다. 왜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고 뜬구름 잡다가 끝나고 마는 것이다. 피상적인 하나님은 피상적인 나의 삶을, 구체적인 하나님은 구체적인 나의 삶을 만드는 것이다. 피상적인 하나님 체험은 피상적인 나의 삶의 체험이 된다. 그러므로 기도를 통하여 내안에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제하고, 만나고 느끼고, 사랑하고 사랑받으라. 그런 훈련을 하라.


3). 중언부언하지 말라.
말을 많이 하지 말라.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하지 말라. 과대광고하지 말라. 말만 많이 하다가 기도 끝내지 말라. 말로 하나님을 이해시키고, 하나님과 따지려고 하지 말라. 아버지는 구하기전에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아신다.
하나님은 비록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깊은 곳(4차원의 세계, 영의 세계)에 계시는 분임을 인식하라. 세상의 인식은 이성, 감각으로 하지만, 깊은 곳에 늘 함께 하시는 아버지는 이성이나 감각이 아닌 마음으로 만나야 한다. 아무리 이성이 바쁘게 회전하더라도, 세상이 바쁘더라도, 복잡하더라도 마음이 깨어있으면 우리는 마음으로 늘 아버지와 대면할 수 있다. 마음으로 하는 기도를 하도록 하라. 그런 훈련을 하라.
기도를 말로 하려고 하지 말고, 마음으로 하려고 하라. 영적기도를 하려고 하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마음으로 하는 기도에 귀를 기울이신다는 의미이다. 마음으로 하는 기도 훈련을 하라. 하나님은 마음의 소리를 들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듣고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말에 담긴 마음을 보시고 응답하신다. 유창하지 못해도, 길지 않아도 마음이 담긴 기도를 하라. 마음의 기도가 아닌 기도는 아무리 말이 유창해도, 성경을 많이 인용해도 허공을 치는 기도이다.
시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영혼으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모하고, 그 사모함을 고백하라. 마음으로 송축하고 찬양하라. 육체의 접촉과 생각이 분리될 수 있는 것처럼 생각과 마음도 분리될 수 있다. 마음은 생각, 느낌, 감정, 의지, 상상이 아니다. 이런 것 밑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언부언하는 말이나, 생각이나, 느낌이나, 감정이나, 상상과 같은 것들을 최대한으로 중지시키라. 분리시키고 가라앉히라. 아무것도 생각하거나, 느끼려고 하지말고 오직 마음 속 깊은 곳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라. 그 하나님을 느낄 것을 사모하고 기다리라. 감사함과 사랑의 고백을 하라. 아무것도 느낄 수 없더라도 계속 훈련하라.
빌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리하면 무엇인가 새로운 평강,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을 가득채우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그 어떤 응답보다 더 귀한 것임을 알라. 그리고 감사하라 기뻐하라. 계속 훈련하라.


4). 드리는 기도를 하라.
마6:8 구하기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구하는 것을 기도의 주제로 하지 말라. 구하다가 시작하고 구하다가 끝내는 기도를 하지 말라. 기도는 사랑하는 아버지를 만나는 것, 아버지와 관계를 맺는 것, 교제를 하는 것,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아버지에게 감사하고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주제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아버지가 원하시는 것을 아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내 마음을 드리고, 내 목숨을 드리고, 내 뜻을 드리고, 내 힘을 드리는 것이 주제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나라이 임하옵시고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고, 뜻이 하늘과 땅에서 이루어지옵소서' 하는 것이다.
무엇이 있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드리라. 무엇인가 있는 것, 강한 것을 드리기보다는 없는 것, 연약함을 드리라. 그래서 거기에 하나님의 것으로 채움받으려하라. 하나님의 것으로 채움받기 위한 드림, 이것이 드리는 기도이다.
단지 이러한 드림은 하나님의 것을 담을 수 있는 거룩한 드림이 되어야 한다. 가난하나 거룩한 심령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축복이 채워질 수 있는 것이다. 연약하나 거룩한 몸, 성별된 몸을 드릴 때, 강건함이 임하게 된다. 우리의 생명은 거룩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의 부요도 거룩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가난하지만 거룩한 심령을 드리라. 거룩하고 청결한 마음을 드리라. 그리함으로 거기에 하나님의 것으로 채우심 받으라.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주시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받을 그릇이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그릇이 바로 우리가 드리는 것이다. 마음을 드리는 곳에 하나님의 마음, 평강, 능력이 임하게 되는 것이다. 감사를 드리는 곳에 감사할 조건이 임하고, 찬양을 드리는 곳에 찬양할 조건 즉 승리가 임하는 것이다.


2. 기도란


기도는 보혈의 공로로 하나님의 자녀된 자가 성령의 교통하심 가운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면서 사랑의 고백, 찬양, 감사, 예배, 봉헌, 순종, 신뢰, 통회, 간청 등의 심정을 구체적으로 표명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께 마음을 올리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마음의 채널, 영적채널을 맞추는 것이다. 하나님을 나의 채널에 맞추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에 넘어가지 않으신다.
기도는 좋으신 하나님,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다. 위로의 하나님, 소망의 하나님, 용서의 하나님.. 등등 자꾸 이 좋으신 하나님의 성품을 부르는 것이다. 그러면서 점점 기도가 깊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자꾸 부르라. 하나님 좋으신 나의 아버지, 하나님.. 나의 아버지... 그러면서 심령의 변화가 무엇인가, 어떤 변화가 있는가를 느껴보라. 이러한 기도는 안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하나님을 깨닫고, 그분이 좋으신 나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분에게 향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분을 향하여 사랑의 고백, 찬양, 감사, 예배, 봉헌, 순종, 신뢰, 통회, 간청 등의 심정을 구체적으로 표명하는 것이 기도이다. 그분을 향한 찬양이 기도이고, 그분에게 드리는 예배가 기도이고, 봉헌도 기도의 한 표현이다.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를 나타내는 것, 나와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가 변해야 이 모든 것, 찬양도, 예배도 변하게 된다.


1). 마음으로 하고 영으로 하는 하나님과의 깊은 대화.
2). 하나님과의 친교,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 우리의 믿음생활은 누구와 친하게 지내는가가 중요하다. 부모와 친한 자녀는 결코 탈선하지 않는다. 신앙은 하나님과 깊은 관계, 생명의 관계를 가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삶의 목표, 기도의 목표, 신앙의 목표요, 신앙의 핵심이다.
3). 하나님을 향하여 애정으로 가득한 움직임이며, 자녀가 부모를 찾고, 안기는 사랑의 행동이다.
4). 하나님의 현존을 의식하며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행위이다. 자꾸 입술로 시인하고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려고 노력하면 하나님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기도이다. 초대교인들은 늘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느끼며 살았다. 그러므로 모든 위협을 이기고 신앙을 지키고 승리할 수 있었다.
5).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다. 하나님을 마음으로 느끼고 만나라.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 위로를 받으라.
6). 세상과 분리되어 현세적인 것은 잃어버리고 하나님께 마음을 집중하는 행위: 예수님의 광야에서의 기도의 모습을 기억하라.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앞에 오직 하나님만을 만나는 것이 제1계명이며, 이것이 바로 기도의 기본적인 자세이다. 이렇게 하나님과 만나는 것은 은혜요, 은사이다. 이러한 은사는 사모해야한다. 사모하지 않고 그것을 향하여 열려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는 임하지 않는다.
7). 하나님과 하나가 됨: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기도롤 통하여 무슨 일을 하려고 하지 말라. 그냥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8).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사랑의 고백: 기도시에 이러한 고백을 반복하라. 기도에서 감사와 사랑을 반복의 주제로 삼으라. 핵심으로 삼으라.
9). 기도는 의무로 하기보다 흥미, 기쁨으로 즐겨야 한다. 억지로 하는 노동은 피곤하게 하나, 즐거이 하는 운동은 힘이 나게 한다. 기도를 즐거운 운동을 하듯, 호흡하듯 몸에 익혀야 하며, 자연스럽게 해야한다. 마치 무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듯 그렇게 되어야 한다. 호흡이 힘들면 병자이다.
10).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를 아시고 이해하시며 염려하시고 응답하시는 사랑하는 아버지의 목전에 우리와 다른 사람의 무력함과 약함을 펼쳐놓는 것이다. 다른 것을 드리려하지 말고, 우리의 연약함을 드리려 하라. 기도는 우리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11).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듯 하나님을 찾는 영혼의 숨결이요, 헐떡임이다.
12).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을 억지로 빼앗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기 기뻐하시는 것을 구하고 받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주시게 만드는, 받아내는 기술이다. 하나님이 주고싶어서 어쩔 줄 모르게,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다. 그러면 자꾸 하나님께서 나온다. 자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기도를 통하여 무엇을 받으려고 하지 말고 내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려고 하라. 드리려고 하라.
13). 하늘의 영광가운데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훌륭하고 웅장한 하나님의 방송, 전능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의 방송에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가는 것이다. 내 뜻을 하나님에게 아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을 내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겟세마네의 예수님의 본을 받으라. 광야에서의 예수님의 기도는 귀신쫓는 능력을 간구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는 기도였으며, 육신을 입으심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욕망을 끊어내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담는 기도였고, 세상에서 삶으로 말미암아 더러워지는 심령의 때를 씻어내는 기도였다. 내 방송에 하나님을 맞추려고, 끌어들이려고 하지 말라. 내가 그분에게 말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게 하라. 내 뜻을 자꾸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자꾸 받아들이는 것이 기도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쉽기도 하고 또 어렵기도 하다. 내 주장을 하려면 어렵지만, 하나님의 뜻을 받으려면 아주 쉬운 것이다. 하나님의 주파수는 무엇인가? 오직 믿는 이만 하나님의 주파수를 알고 맞출 수가 있다. 하나님이 믿음을 가진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은 하늘에서 오는 것을 받아서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이다.
기도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는 것이며, 나의 무력함을 그분에게 내어놓고, 그분의 강건함을 받는 것이다. 나의 답답함을 내어놓고 은총을 받는 것이며, 짐을 가지고 가서 그분앞에 내려놓고 그분의 평안함을 가지고 오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오직 하나님을 믿는 자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다. 이처럼 기도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가고, 하나님이 내게로 오시게 하는 것이다.
이 시대는 참으로 바르게 기도하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쓰시려 하신다. 하나님께 쓰임받으려는 사랑은 기도로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 기도에 있어서 바른 방향을 잡으라. 깊은 차원의 기도, 하나님과 연합되는 기도를 하는 사람이 되라. 그러면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붙드시고 쓰신다. 기도로 마음이 하나님과 연합되는 사람을 하나님은 결코 버려두시지 않으신다. 반드시 들어 쓰시며, 이러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 그러므로 끝까지 기도의 맥을 놓치 말라. 하나님께 쓰임받으려면, 바른 기도로 시작해서 바른 기도로 끝내라. 기도로 살다가 기도로 끝마치는 사람은 세상을 다 가진 사람이다.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은 지혜, 능력, 평안, 담대함등 모든 좋은 것을 다 가진 사람이다. 처음에는 내가 기도하다가, 나중에는 기도가 기도를 하게 하라. 그렇게 되도록 기도의 훈련을 하라.


제3장. 기도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의 채널에 맞추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은혜로 하나님의 전파를 받을 수 있게 하셨지만, 그 채널에 맞추는 것은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이다. 우리가 이것을 모르는 것이 문제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냥 오지 않는다. 성령님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때, 그 채널이 열리고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이며,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에게 주파수를 맞추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기도는 독백이 아니며, 자기 신념을 강화하는 수단도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제하고 대화하고 그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1. 기도가 어려운 이유


1). 기도를 잘하려고 하는 것: 기도에 관한 고정관념에 잡혀서 외형적 모습, 언어의 구사에 너무 신경을 쓰고 있다. 기도는 언어의 구사가 아니다. 눈빛만 보아도 서로를 아는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른 기도이다.
2). 특정한 장소를 찾으려고 하는 것: 기도는 교회, 산, 기도원, 새벽기도에서 하는 것이라는 기도에 대한 고정관념이 기도를 어렵게 만든다. 자연스럽게 어디서든지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3). 기도의 본질은 무엇을 비는 것이라는 생각: '비나이다 비나이다' 식의 기도의 개념은 문제 없는 사람은 기도의 필요가 없다는 그릇된 생각을 가져왔다. 기계 문명이 발달할수록 더욱 영성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데, 이러한 잘못된 생각 때문에 실상은 그 반대가 되었다. 문제가 하나님을 필요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문제가 해결되게 하라.
4). 문제가 생기면 최후수단, 비상대책수단으로 하는 기도: 기도에 관한 이러한 개념이 진정한 기도의 길을 막는다. 산소는 죽을만 할 때만 취하는 것이 아니다. 늘 산소를 섭취하듯 아주 자연스럽게, 호흡하듯 기도하라. 문제가 생긴 다음에 문제 때문에 하는 기도보다 미리미리 하는 공격적인 기도를 하라. 평안함 속에서 미리미리 준비하고 쌓고 채우는 기도를 하라.
5). 의무감으로 하는 기도: 자연스럽고, 즐기는 기도를 하라.
6). 하나님에게 기도한다는 사고방식: 아버지에게 기도한다는 기본자세를 분명히 하라.
7). 감정으로 기도하는 것: 기도는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에서 감정을 빼라. 찬양에서도 감정을 빼라. 감정은 될 수 있는대로 낮추라. 감정으로 확 타오르고, 확 식어버리지 않게 하라. 신앙이 성품과 감정을 다스리게 하라. 감정과 성품이 신앙을 다스리게 하지 말라. 성령님이 역사하는 설교인가 감정이 역사하는 설교인가? 감정이 들끓어 오르는 기도나 찬양을 하지 말고, 믿음의 기도와 찬양을 하라.
8). 공동으로 모여서 하는 기도의 습관: 이러한 분위기가 아니면 기도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좋은 기도의 습관이 아니다. 혼자서 조용히 하나님과 교제하고 대화할 수 있게 하라.
9). 기도의 개념, 동기, 목적을 잘 모르고 무조건 기도하는 것. 기도의 시간이 중요하지 않다. 바르게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는 무조건 오래하면 좋다는 가르침이 기도를 더욱 못하게 하고 기도를 멀리 하게 한다.


2. 바르게 기도하는 마음의 자세


1). 자신이 지금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는 의식.
2). 그분은 나의 아버지시며, 나의 모든 은밀한 것을 다 알고 계시다는 의식: 은밀한 것을 다 풀어 놓으라. 상한 심령, 약한 부분을 드러내라. 사람에게 못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앞에 다 내놓으라. 그래야 치유가 된다.
3).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난다는 믿음.
신4: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
기도로 하나님의 가까이 함을 얻으라.
4). 하나님의 내게 향한 뜻을 알기 위한 자세: 내 뜻을 하나님에게 강요하지 말라.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내게 가져오는 것이다. 하나님을 부리려고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의 시계에 내 시계를 맞추려고 기도하라. 우리의 마음은 수시로 변화하나, 하나님의 마음은 불변하시다. 방송국 시계에 내 시계를 맞추듯 하나님의 마음에 내 마음을 맞추라.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 아버지 뜻에 자기 뜻을 맞추는 기도를 하셨다. 예수님의 기도는 사람들 중에서 생활함으로 마음에 묻은 때, 혼탁해 진 것을 씻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받기 위한 기도였다. 하나님을 내게 가져오려고 하지 말고, 나를 하나님께로 가져가려고 하라. 기도의 구조조정을 하라.
5). 깨어서 기도하라: 영, 즉 마음을 깨우라. 영을 깨우는 훈련을 하라. 잠자는 영을 깨우는 훈련을 하라. 영은 자지 않는다. 우리가 영을 재우고 있다. 영을 재워놓고 있다. 영을 가두어놓고 있다. 그대신 본능과 이성을 깨워놓고 그에 따른다. 영으로 기도하라. 영이 깨어난 상태에서 기도하라.
골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사랑의 고백이 기도의 흐름이 되어야 한다. 감사와 사랑의 고백이 기도의 양바퀴이다. 이것을 간단하게 반복하라. 이러한 기도로 영이 깨어난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과 감사의 고백을 듣기를 원하신다. 이러한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기뻐하시고, 활동하시고, 따라서 우리 영이 깨어나게 되고,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느끼게 된다.
엡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성령안에서' 라는 말은 '영으로' 라는 의미이다. 우리의 영은 깨어나기만 하면 나침반의 자석처럼 바로 하나님께로 향하게 된다. 우리의 영에는 씨앗처럼 하나님이 주신 무한한 생명력이 들어 있는데, 영이 깨어있지 않으면 이 생명력이 활동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대신 본능과 이성만을 따르게 된다. 내 영을 깨워야 한다. 크리스챤의 기본적 의무는 먼저 영을 깨우는 것이다. 영이 활동하게 하는 것이다. 영이 깨어있지 않으면 켜있지 않은 TV처럼 공중파는 엄청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영이 깨어서 하는 기도는 우리에게 생명과 같이 귀한 것이다. 이것이 기도의 맥이다. 기도의 맥을 뚫기만 하면 무한한 생수를 파낼 수 있다. 우리의 영은 마음속 깊은 곳에 들어 있다. 그러므로 영이 깨어나면서 올라오는 에너지는 무한하다. 영에 이르기까지, 영을 깨우기까지 파내려가는 것은 우리가 노력할 일이다. 은혜의 빗물은 거저 주시지만, 속에서 솟아나는 은혜의 맑은 샘물은 땀흘려 샘을 파야한다. 파내서 얻는 샘이야말로 진정 생명수가 된다.


제4장. 기도의 장소


1. 마음


1). 기도는 마음, 즉 심령에서 나와야 한다. 심령에서 나와서 말로 표현되는 것이 바른 기도이다. 심령에서 나오지 않는 것은 아무리 미사여구를 사용하여 장시간 기도해도 사실은 기도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2). 기도는 은총이다. 누구나 우상에게 기도할 수 있지만, 오직 하나님의 자녀만이 하나님 아버지에게 기도한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에게 하는 기도는 은총이다. 은총속에서 아버지에게 하는 기도가 바른 기도이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무한감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서 기도로 하나님과 만날 수 있게 됨은 진정 은총이다. 기도는 은총이나 기도자의 노력이 은총과 합해져야 한다. 구원은 거져 주시지만, 은혜와 은총을 거져가 아니라, 우리가 노력하고 찾아야 한다. 거져주신 은혜는 저절로 묻힌다. 이 은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깊이 파들어가야 한다. 그러므로 기도는 깊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가장 깊은 곳에 지성소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지성소인 영혼(마음)에 하나님이 계신다. 따라서 우리의 영혼은 무한한 크기와 능력을 가진다. 우주보다 더 크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이것은 모든 크리스챤에게 절대절명의 명제이다. 마음은 하나님이 계신 영혼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으며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장소이다. 마음에서 하나님을 찾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만난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만난 모세처럼 삶의 자세가 달라진다. 이처럼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는 사람만이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다.
3). 마음은 감정, 기분, 지성, 애정을 느끼는 기관이 아니라, 더 깊은 곳에 있는 인간의 긍극적 기반이며 근원이 되는 곳이다. 깊은 곳에 영을 담는 장소이다. 마음은 지정의를 느끼는 곳이나, 육신보다 더 깊이 있기에 이것을 실감하는 것은 쉽지 않다.
4). 보통 이 깊은 마음은 일상 생활에서 활동하지 않고 지-정-의의 행위 아래 마비되어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지-정-의라는 이성과 육신의 본능으로만 영위하고 마음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의 활동이 퇴화되었다. 감정과 육신, 생각은 무리할만큼 혹사시키지만, 마음은 잠재우고 있다. 그러므로 깊은 기도를 할 수 없다. 기도는 지정의와 본능의 활동아래에서 잠자는 마음, 즉 영을 깨워 그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오는 것이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마음으로 하나님에게 말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른 기도이다. 육체, 본능, 동물적인 기능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육체가 나와 또 다른 인격체라고 하는 것처럼, 마음은 우리안에 있는 또 다른 인격체이다. 마음이 굳어져 있으므로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과 교제하지 못하게 된다. 마음이 해야할 역할까지 이성이 해야하기 때문에 이성은 점점 더 복잡해진다. 마음, 영성은 단순한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단순해지는 것이 마음을 깨우는 것이다. 순수함을 찾는 것이다. 마음이 깨어나서, 마음으로 살고, 생각하고 느끼게 될 때, 진정 크리스챤의 삶이며, 이러한 사람의 느낌이나 생각이 세상사람과 다르게 된다. 더 깊고, 더 굳건하고, 더 멀리보고, 더 깊이 느끼게 된다.
마음으로 보고, 느끼고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사는 것이다. 마음은 우리의 삶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은 인생의 나침반이다. 그런데 이 마음이 잠들어 있음으로 삶이 방향과 목적과 의의를 잃고 헤매는 것이다. 영을 깨우라. 마음을 깨우라. 영이 살아나야 한다. 마음을 깨뜨려서 내속에 있는 하나님을 느끼라. 하나님의 은혜가 솟아오르게 하라. 마음속에 파묻혀 있는 깊은 보물을 찾아내라. 파내라.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머리도, 얼굴도 아니라, 마음이다. 마음을 보살피고 꽃밭을 가꾸듯 가꾸라. 그 속에 엄청난 보화와 능력이 감추어져 있다.
겔36:25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겔11:19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굳은 마음이란 성령님이 역사하지 못하는 마음이고, 부드러운 마음은 성령님이 역사하는 마음이다. 믿음은 우리가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는 마음을 주신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의 굳은 마음대신에 새 마음을 주신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은혜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는 자꾸 새 마음을 가져야 한다.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주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우리의 굳은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게 막는다. 부드러운 마음은 초청해야 생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는 성령님은 인격이시기 때문이다.
행16:14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마음을 열라.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라. 영을 열라. 기도가 피어 오르게 하라. 기도는 영을 여는 것이다. 영을 열어야 하나님을 만난다. 마음을 열고 하나님을 만나라.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지상최고의 축복이며, 목표이며 모든 것이다.
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삼으신 것은 우리속에 하나님이 오시기 위하여, 우리속에 거하시기 위하여서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이다. 우리 속에 하나님이 계시다. 그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인 마음속으로 들어가라. 그 부분을 귀중히 여기라. 예수의 보혈로 이미 휘장이 활짝 열렸다. 하나님을 만나리라는 믿음생활의 목표를 가지라. 이러한 끈질김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 하나 되라. 내 영혼 깊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과 만나라. 그리고 그분의 통치를 받아라. 그러기 위해서는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성전이 된 의의가 있다. 진정한 기도의 장소는 내 마음이라는 지성소이다
고전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영은 참으로 귀하게 오시고 역사하셨다. 아주 특별한 경우에, 특별한 사람에게 잠깐씩 오시고, 그것도 금방 떠나셨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영이 오셔서 결코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를 도우신다. 대접받고, 일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기 위하여! 얼마나 대단한 축복인가. 세상의 영은 이제 우리에게 없고 하나님의 영이 계실 뿐이다. 단지 전의 습관, 성품이 우리 속에 계신 하나님의 영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마귀의 성품인 조급함, 음란, 미움 등등이 안에 있으면 아무리 도덕을 강조해도 안된다. 그러나 이제 우리에게는 이제 이러한 세상의 영은 없고 하나님의 영이 계시다. 그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은혜와 은총이 자꾸 올라오게 하라. 그리할 때, 우리의 성품이 변하게 된다. 세상의 영은 우리 중심에 있으면서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나 밖에서 육신의 안목과 정욕, 습관과 성품으로 우리를 지배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중심에 계신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는 습관, 성품을 훈련하여야 한다. 성령님과 만나려고 하라. 노력하라. 그리할 때, 은총이 그 속에서 올라온다.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에게는 없다.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에게 있다. 성령님을 만나려고 노력하고 하나님께 자꾸 나감으로 하나님의 성품이 깊은 속에서 올라오게 하라.
고전14: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기도와 찬미를 영으로 하라. 얼마나 깊이에서 기도하고 찬미하고 있는가?
살전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영-혼-육은 각각 서로 다른 인격체이다. 그러면서 한 인격체이다. 하나님은 이 3부분이 다 잘되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그것은 오직 영이 주도권을 쥐어야만 가능하다. 영이 잘되어야 혼과 몸도 살게 된다. 그러므로 육성-이성-영성중에서 이성과 육성을 약화시키고 영성을 강화시키라. 육신이나 세상에 대해서 좀 덜 민감해지고 하나님에 대해서 더 민감해지라.
5). 사람들 대부분은 마음의 활동보다는 이성에 의한 육체의 활동만 하고 있으며, 마음과 이성 사이에는 두터운 벽이 있어서 분리시켜놓고 있다. 그러므로 마음의 기능이 약해져 있으며, 상대적으로 이성과 육신으로만 활동하고 있다. 이성과 육신이 인간의 활동을 지배한다. 대부분의 결정을 마음이 아니라, 이성으로 내린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무관한 결정이 되고 만다. 마음이 깨어서 마음으로 하는 결정이 하나님과 유관한 결정이다. 가나안 땅을 분배하는 아브라함과 롯의 경우, 롯은 이성의 결정이고, 아브라함은 마음의 결정, 영적인 결정을 하였다. 이성의 결정은 하나님과 무관하고, 사단과 유관한 결정이 된다.


2. 인간의 정서


인간의 정서는 영과는 다르지만, 외부의 자극에 대한 상대적인 반응을 하는 깊이를 말한다. 인간은 정서로 반응한다. 행동, 즉 반응의 근원이 되는 반응의 깊이가 정서이다. 정서가 반응을 만들어 낸다.
불안정한 정서: 불안정한 습관, 성품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정서를 가진 사람, 이정도 깊이에서 반응하는 사람은 늘 밖에서 안정을 찾으려 한다. 성령님을 의지하라. 안으로 들어가라.
안정한 정서: 안에서 안정을 찾으려 한다.
육신적정서: 육신적, 감정적, 이기적, 공격적 반응을 나타낸다. 이 시대는 동물적 정서시대이다.
이성적정서: 이성적 반응을 나타낸다. 논리, 전통, 법, 경험, 충고, 교육, 문화, 감정에 의한 반응을 나타낸다.
혼적 정서: 도덕, 윤리, 규범, 양심, 경우에 따르는 반응을 나타낸다.
영적 정서: 영적 반응을 나타낸다. 신앙, 성경, 성령의 지배, 하나님의 마음으로 반응한다. 깊은 곳에서 나오는 반응이다. 영적정서로 하나님의 말씀과 메시지를 받을 때, 우리에게 생명력이 생기고 환경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생긴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은 영적정서에서 나오는 것이다.


3. 마음과 이성, 영과 혼을 분리하는 벽


1). 우리의 삶의 모든 반응이 얕은 정서에서 이루어지게 만드는 것, 깊은 정서로 내려가지 못하게 막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벽이다.
2). 얕은 벽: 염려, 근심, 걱정, 산만함, 무질서등이다. 이러한 벽들이 우리의 삶의 모든 반응이 얕은 수준, 육신적 수준에서 이루어지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이것들, 이러한 벽들을 깨뜨리고 해결하고 잠을 자야한다. 이를 위해 잠들기 전에 시간을 가지고 성령님에게 치료를 의뢰하라.
3). 두꺼운 벽: 미움, 교만, 분노, 질투, 복수심, 중독등. 기도와 은사로 마음속에 있는 이러한 두꺼운 벽을 깨뜨리라. 성령님의 치유로 쳐내어 버리라. 그래야 하나님의 은총이 마음속에 채워진다. 벽이 두터울수록 우리의 삶이 마음이나 양심의 통제를 받지 못하며, 자신을 보거나 깨닫지도 못한다. 이러한 상태는 하나님과도 단절된 상태이며, 기도를 많이 해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절망적인 상태이다. 벽을 헐라. 그러면 간단히 간구해도 하나님의 공급이 풍성해진다. 본능과 마음사이에는 두터운 벽을 쌓으라. 그 사이를 막으라. 그러나 영과 마음사이에는 벽을 헐라. 용서함으로 풀라. 회개함으로 풀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풀라. 그러면 아주 간단한 것, 지나치는 소리 한마디, 자연속의 새소리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을 수가 있다.
사59: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막8: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들어도 깨닫지 못함은 예수님의 설교가 둔하고 어려워서가 아니라, 이들 마음속의 벽이 두텁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교를 잘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마음을 깨우려고 노력하라. 사람들의 마음의 벽이 더투우면 말로 감동받지 못한다. 심지어 예수님의 말씀도 마음이 굳어져 있으면 들어가지 못한다. 벽을 허는데 관심을 가지라. 마음이 깨어 있게 하라. 초대교회에서는 성도들이 바울의 편지 하나만으로도 깨어지고 은혜받았다. 사도요한의 '사랑하라'는 말 한마디로 은혜가 넘쳤다. 주일예배를 설교중심의 예배보다, 찬양과 말씀.. 찬양과 말씀.. 과 같이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는 예배가 되게 하라. 벽을 허는 예배가 되게 하라. 성도들이 영에 감동을 받게 하라. 성령님의 움직임에 우리의 영이 감동받게 하라.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예배에서 하나님을 반드시 만나게 해야 한다. 예배속에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육신의 눈은 볼 수 없고 육성이나 이성은 느낄 수 없다. 오직 우리의 영이 보고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마음의 벽을 깨고, 영을 깨워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죄를 씻고, 치료하고 위로하고 힘을 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예배는 참 예배를 드리지 못한 것이다.
막4:9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들을 귀란 영과 연결된 귀를 말한다. 영이 열린 사람의 귀이다.
욥12:1 입이 식물의 맛을 변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변하지 아니하느냐.
영의 말인지, 사람의 말인지, 분별하는 귀가 영이 열린 귀이다.
눅21: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마음이 둔해짐'이란 영이 둔해짐을 말한다. 세상의 방탕함과 생활의 염려, 죄악이 우리의 영을 잠재우는 것이다.
4). 자신의 마음의 활동을 활성화시켜서 영적인 정서가 자신의 삶, 정신, 신앙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해야 한다.
5).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차단시키고, 마음과 의식, 마음과 이성을 차단시킨다. 죄는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마음으로 하는 기도가 불가능하게 만든다. 세상과 가까이하면 할수록 더욱 더 그 벽은 두터워진다. 그러나 주님을 찬양하며, 섬기려 하며, 가까이 하려 할 때 그 벽은 무너진다. 이러한 노력은 단기간에 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끈기있게 노력하여야 한다. 우리가 벽을 깨뜨리려고 이러한 노력을 할 때마다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신다.

제5장. 기도의 발전


기도훈련은 단기간으로는 안된다. 지속적으로 자꾸 젖어져야 한다. 기도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쓰실 수 없다. 기도로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가 되어야 한다. 현대의 복잡한 사회는 우리에게서 점점 기도의 환경을 빼앗아 버리고 있다. 마음의 여유를 빼앗아 가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인은 기도를 점점 멀리하게 된다. 점점 시간을 빼앗기고 산다.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양상이다. 무조건 기도하라고 강요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인가?
4차원의 영적기도가 유일한 대안이다. 각자가 영적으로 깊어지고, 늘 성령님과 교통하게 만드는 것이다. 정한 시간과 장소에 모여서 기도하게 하는 것은 이제 점점 어려운 상황이다. 아무곳에서라도 깊은 기도를 하게 만들어야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성령님과 깊이 깊이 교통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누구의 간섭이나 강요, 인정과 감독없이도 스스로 하나님을 만나게 하여야한다. 이러한 신앙의 체질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현대는 기도의 결핍시대요, 기도의 질식시대이다. 오염된 공기, 물과 같이 물질문명이 기도를 오염시키고 있다. 현대문명은 우리에게 간편함, 빠름과 물질의 부요를 주나, 영적으로는 그만큼 많은 것을 빼앗아 버림으로 현대는 영적 빈곤의 시대이다. 무질서, 산만함, 기계화, 도덕적 불감증, 양심의 마비, 허공을 치는 부르짖는 기도, 감정 발산의 기도..등등, 이러한 곳에 사단의 무서운 흉계가 있다. 기독교인의 마음에서 하나님을 쫓아내고 물질과 세상을 집어넣고 있다. 크리스챤이 기도하지 않는 것은 생명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사단의 근본적인 작전은 하나님이 계셔야 할 곳에 세상의 것을 집어넣는 것이다. 마귀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우리가 성경 읽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기도하는 것이다. 영적으로 깨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기도가 실용주의, 상업주의적 사상에 의해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기도가 생명력을 상실하고 있다. 기도가 즐거움이나 신앙의 기본이 아니라, 부담이 되어버리고 있다.


1. 기도에 대한 무지


1). 기도의 의미를 상실함.
2). 필요는 아나 기도하지 않음.
3). 기도는 하는데 바르게 기도할 줄을 모름: 이것은 한국교회의 모습이다. 기도가 곁길로 가면 다른 모든 부분이 곁길로 간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바른 기도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정말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바른 기도만이 위로 올라간다. 새로운 기도를 해야한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보다 낡은 것, 잘못된 것을 빼어버리는 일이 급하다. 기도에 관한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그러면 시간이 지날수록 영성이 깊어지고 메시지가 깊은 곳에서 나오고,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은혜에 젖어지게 되고, 하나님의 보화를 찾게 된다.


2. 기도에 대한 잘못된 인식


1). 기도에 쓰는 시간이 아까움: 호흡시간이 아까운가? 기도는 생명줄이다. 기도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넘친다. 성령의 사람이 된다.
2). 기도가 별로 나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기도를 밖으로 하지 말고, 기도로 나를 채우라.
3). 꼭 기도를 해야 하는가?
3. 기도의 초보자
1). 기도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
2). 기도에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
3). 기도의 내용이 기도문을 외우듯이 늘 내용이 같은 사람
4). 기도를 의무로 생각하는 사람
5). 기도를 하나님과 협상테이블로 착각하는 사람
6). 기도를 물질의 축복, 건강, 행복을 가져오게 하는 도구로 생각하는 사람


4. 기도의 단계


1). 빈말의 단계: 대상에 관심없이 감정없이 일방적으로 주문 외우듯, 염불외우듯 하는 기도.
2). 독백의 단계: 상대는 상관없이 혼자서 독백하듯, 감정은 있으나 하소연하듯 하는 기도.
3). 대화의 단계: 상대를 의식하고 하는 기도. 기도속에 감정을 느긴다. 대부분 기도한다고 하는 사람의 수준이 이 수준이다.
4). 들음의 단계: 마음을 그분에게 쏟는 단계, 체험의 단계이다.
5). 교제의 단계: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의 평강을 느끼는 단계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사랑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체험하면서 하는 기도로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는 진정 좋은 것은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고 교제하는 영적인 것인데 이것을 기도로 얻는 단계이다. 마귀가 보여주는 세상영광은 영적인 눈으로 볼 때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수준이다.


5. 바른 기도와 바르지 못한 기도


바른 기도란 삶의 변화, 성품의 변화로 이어지는 기도이다. 순수하고 올바르며 건전한 삶, 예수 사랑, 이웃 사랑이 나타나는 기도이다. 기도에서의 깨달음이 삶에 반영되는 기도이다. 하나님에게 연결되는 기도는 삶의 변화가 나타나는 기도이다.
바르지 못한 기도란 기도는 많이 하지만, 삶에 변화가 보이는 않는 기도이다. 바리새인, 제사장, 서기관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기도의 모범생들이었으나 삶은 독선, 교만, 아집, 정죄로 가득하였다. 하나님이 이들 앞에 왔으나 하나님을 몰라보았으며, 하나님을 오히려 괴롭히고 핍박하였다. 기도가 삶으로 연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바른 기도의 줄을 잡으라. 목소리부터 다른 기도, 눈발부터 다른 기도를 하지 말라. 기도에서 단순해지고, 부드러워지라. 기도를 통하여 세상일에 대해서 한템포 늦추라. 형식적인 기도, 이기적인 기도는 우리를 교만하고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존재로 만든다.


제6장. 성령의 도우심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님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내가 기도하려고 하기보다 먼저 기도에서 나를 도우시는 성령을 찾으라. 이것이 바른 기도의 핵심이다. 그래서 성령이 내 입술을 사용하여 나를 위하여 기도하게 하라. 기도는 성령의 도우심, 교통하심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기도할 수 있다. 기도는 영적차원의 일이다. 영적인 일을 하려고 할 때는 반드시 성령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성령님의 도우심이야말로 기도의 생명력이다. 매일밤 '성령님 도와주세요. 기도를 도와주세요' 하고 100회 반복하라. 바르게 기도하는 훈련을 하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뜻을 주시고, 그 뜻에 따라 기도하게 하심으로 그 뜻을 이루신다.(빌2:13) 바로 이일을 위해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시고, 그 뜻대로 기도하게 하시고, 우리 대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
고후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은혜를 성령께서 우리에게 교통해주신다. 우리에게 전달해주신다. 그러므로 성령의 교통하심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은혜도, 하나님의 사랑도 우리는 알 수가 없고,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로 무엇보다도 먼저 성령님을 구하고 찾으라. 우리의 기도는 무엇보다도 먼저 성령의 도우심, 교통하심을 받아야 한다. 이것부터 기도하라.


1. 성령님의 사역


1). 우리안에서 우리와 함께 있음.(요14:16)
2). 우리 안에서 예수를 증거하심.(요15:26)
설교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것은 감정적, 지식적으로 받는 것이므로 여기에 성령님의 역사가 없이는 그 은혜가 우리의 영, 마음, 생명에 흐르지 못한다. 즉 예수의 십자가의 은혜를 받는 것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성령은 예수를 증거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늘 찾으라. 제자들이 늘 예수님 곁에 있어야만 하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는 늘 성령님을 찾아야 한다. 성령님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특히 기도할 때, 성령님의 도우심, 임하심은 절대적이다.
3). 성령 하나님을 내안에 모신 크리스챤에게 성령충만은 위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나의 깊은 곳에서 부드럽게 올라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내안에 불순물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성령의 역사가 아름답게 나타난다. 내안에 불순물이 있으면, 나에게서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가 아름답지 못하게 된다.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려면, 내 안이 성령이 역사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야 한다. 내 마음을 성령이 역사할 수 있는 상태로 준비해 드려야한다.
성령님은 자율신경계통으로 활동하는 내부기관과 같이 내 의지로 움직일 수 없다. 40일 기도로 성령님을 어떻게 해보려는 것은 마치 심장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려고 애를 쓰는 것과 같다. 심장의 건강을 위해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것처럼 나는 오직 그분이 역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드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이 역사하신다. 미움을 자제하고, 성령님을 의지하고, 성령님의 도움을 찾고 요청하고 간구하는 것이 바로 성령이 역사하실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다. 이것이 기도이다. 기도의 주제이다. 이것은 오직 지속적인 훈련으로 이루어진다. 성령충만을 위하여, 성령의 활발한 활동을 위하여 내 심령을 준비하는 것, 영적정서 상태가 되게 하는 것이 바른 기도이다.
4). 기도를 통하여 성령의 인도함을 받게 되면, 삶에서도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된다. 그래서 기도가 삶의 변화를 위한 것이 되는 것이다. 기도에서 성령을 의지하는 습관, 훈련을 받아야 삶에서 성령의 인도와 도움을 받게 된다.


2. 기도하기 전에 해야할 준비


1). 성령님께 성령님의 감동, 감화, 인도함을 받도록 간구, 요청하라.
유1: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성령님과 함께 기도할 수있게 해 주세요' 하고 성령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간구하라. 기도는 성령으로, 성령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라. 기도와 성령을 일체화시켜라.
2). 기도에서 가장 먼저 간구해야 하는 것은 성령의 임재와, 충만, 교통함이다. 성령의 임재가 기도의 생명이고, 믿음생활의 생명이다. 내 이성이 기도하고, 내 감정이 기도하고, 분위기가 기도하면 기도를 돕기 위해서 오신 성령님이 외면당하시고 슬퍼하시며 외로워하신다. 성령님의 임재는 너무나 중요하다. 이것을 인정하라. 성령께서 일하시도록 환경을 만들라. 장소를 만들어 드리라. 성령님의 역사는 우리가 성령님에게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장소를 만들어 드릴 때 나타난다. 우리의 마음을 성령님이 역사하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드리면 성령님이 역사하신다.
3). 기도의 초기단계에서는 내 영혼이 성령님의 임재를 대부분 느끼지 못한다. 부정적 인식, 믿음의 부족, 인식부족, 필요성에 대한 무지, 하나님과의 거리감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못느껴도 성령님은 지속적으로 역사하심을 알라. 인정하라. 그러므로 성령을 느끼려고 노력하라. 성령님이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지속적으로 노력하라. 이 방식대로만 하면 하나님이 활동하고 역사하신다. 단지 내가 둔해서 느끼지 못하지만, 지속적으로 하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느끼고 체험하게 된다. 이것을 더 사모하고 더 사모하라. 내안에 계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더 높고, 넓게 깊은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보화를 캐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4). 기도자는 자신의 심령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실제로 체험해야한다. 이것이 진정 참된 기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드디어 그런 사람, 즉 성령님과 교통하는 사람을 쓰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역의 기본원칙이다. 이를 위해서 간구하고 목말라하라.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나를 드리고, 기적을 체험하는 차원을 향하여 나아가라. 밖에 있는 것에 관심갖지 말고 오직 안에 있는 분에 대하여 목말라 하라. 성령님은 끊이지 않는 생수가 되시는 분이다 성령님은 끊이지 않는 샘물을 주신다.


제7장. 자기 성찰의 기도


인간은 높아지고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악세사리에 관심을 가지면서, 진정 내 자신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가꾸지 않는다. 외적으로 아무리 계급장을 붙여도 내면을 살피고 가꾸지 않으면 나중에 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내 자신을 살피고 가꾸는 것이 기도 중에 일어난다. 성령의 임재 중에 일어난다. 사람들은 진정 자신은 가난한데, 부요한 줄로 알고, 보잘 것 없는데 위대한 줄로 착각한다. 남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판단하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남에게 속지않고 자신에게 속는다. 남은 잘 다스리나 자신은 못 다스린다. 남은 잘 가꾸려고 하지만, 자신은 가꾸려고 하지 않는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자동차를 늘 정비하고, 점검하고 깨끗이 세척해야 하듯 자신을 성찰해댜 한다. 얼굴을 가꾸듯 마음을 가꾸어야 한다. 꽃밭을 가꾸듯 마음을 가꾸어야 한다. 나자신도 모르게 더러운 것이 자꾸 우리 안으로 들어온다. 우리의 안을 더럽힌다. 내면을 가꾸라. '성령님, 나의 부족한 부분, 잘못된 부분을 깨닫게 해주세요' 하고 늘 요청해야한다. 이것이 바로 성령님이 일하실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성찰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투자이다. 시간과 정력을 여기에 투자하라. 이러한 자기성찰은 성령님이 기뻐하시면서 함께 일하러 나서시는 사역이다.
우리 내면은 말할 수 없이 더럽고, 이그러져 있다. 이것을 꼭 치유해야 한다. 내면의 이그러진 부분, 상처, 감정, 죄악, 허물을 바로잡아 주러 나서시기를 기뻐하시는 분, 이를 위해서 오신 분이 바로 성령님이다. 성령과 함께 높은 부분을 낮추고, 낮은 부분을 높이라. 세례요한처럼 왕이 오실 길을 준비하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길을 준비하라.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는 기도생활로 마음-언어-성품-실생활의 순서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자신의 내면을 지속적으로성찰하고 치유함을 받으라.
교육은 환경과 다른 사람을 비판, 판단, 관찰, 분석하는 능력을 주지만, 기도는 영적으로 자기자신을 보게 한다. 교육은 눈을 밖으로 돌리게 하지만, 기도는 안으로 눈을 돌리게 한다. 교육받은 이성은 다른 사람을 비교분석할 수 있게 함으로 정작 중요한 자신을 볼 수 없게 한다.
자기 성찰의 기도는 자신의 영적 현주소(하나님과 자신, 세상, 물질을 대하는 태도, 양심상태), 위치, 상태, 궁핍, 불안정, 무질서, 독선, 양심상태를 인식하게 하고, 이 때문에 통회, 자복, 회개하게 한다. 이러한 통회가 진정한 통회이다. 자신의 양심, 신앙심, 감정, 의지로 통회하려고 하면 깊이 들어가지 못한다. 오직 성령의 도움을 받고, 성령님의 조명을 받아야 제대로 통회할 수 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은 남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죄, 부족을 보게 하시는 분이다. 다른 사람의 죄가 보이고, 부족한 부분이 보이는 것은 영적으로 매우 위험한 것이다. 성령님은 먼저 자신을 보게 하신 후에 남을 보게 하신다. 영적현상이라고 해서 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남을 보기보다는 먼저 나를 보라. 남을 고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을 고치라. 자식을 고치려면 부모가 먼저 자신을 고치라. 자신을 보고 진솔하게 고쳐달라는 마음의 부르짖음이 바른 기도이다. 이런 기도를 계속하면, 당연히 우리는 변한다. 우리는 환경의 변화가 급하지만, 하나님의 급선무는 우리의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다. 마음이 변화되면 하나님은 환경을 당연히 고쳐주신다. 이러한 것이 바로 내적치유이고, 이러한 내적치유는 지속적으로 계속되어야 한다.
자기성찰은 희미해진 양심의 등불을 밝혀서 옳고 그름을 더 예리하게 분별하게 해주며, 마음을 질서를 찾게 해주고, 자신의 나약하고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여진 본질적인 모습을 보게하며, 점차적으로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한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때 나를 알게 되며 하나님 안으로 이끌려 들어갈 때 나의 허물과 죄를 깨닫게 되며 하나님을 내 안으로 이끌어 들일 때 하나님의 성품을 지니게 된다. 이것이 자기성찰의 역할이다.
회개는 자기성찰을 통해야만 가능하다. 목욕으로 더러워진 몸을 씻고 청결케하여 하루의 피로를 풀고 잠을 자는 것과 같이 회개는 지나간 삶과의 관계에만 있지 않고 건강한 내일을 위한 교량의 역할을 한다. 긴시간 내가 회개하는 것보다, 성령이 도우심으로 짧게 하는 것이 진정한 회개이다. 이러한 회개에는 위력이 있다.
성령님을 요청해도 성령님의 역사가 없는 것은 내안에 성령님을 막고 있는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죄이다. 이러한 것들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빼내어야 한다. 이 때 두리뭉실해서는 성령께서 역사하지 못하신다. '내 속에 ...를 미워하고 있습니다. ..가 불행하게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을 고쳐주세요.' 이런 기도가 되어야 하는데, 이런 기도는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무릎꿇고는 하지 못한다. 영혼의 의사앞이라 생각하고 편안한 자세로 기도해야 한다. 영혼의 의사앞에 다 들어내놓으라. 그리고 치유함을 받으라. 기도시간속에서 실제적으로 나를 치료하고 정돈하고 세우라. 기도속에서 내가 세워져야 성령님이 역사하신다.


1). 미움
미움은 내가 받은 상처에 대한 반응이다. 우리는 감정이 약함으로 상처를 쉽게 받는다. 이러한 상처를 치유함으로 내 속에 있는 미움을 뽑아내어야한다. 현대인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자꾸 먹는 것이 아니라, 몸안의 좋지 않은 것을 빼내고 태워버려야 하는 것처럼, 현대인의 기도도 무엇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내 속에 있는 불순물을 배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남을 짓밟고, 남의 불행을 기뻐하고, 불안해하고, 화내고, 무안주고, 의심하고, 복수심을 품는 것과 같은 마음을 빼내어야 한다.
기쁨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그런데 미움, 아픔, 슬픔이 기쁨을 억누름으로 나에게 기쁨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빼내라. 미움, 슬픔, 고통은 마귀가 우리 마음에 뿌려준 나쁜 씨앗이다. 이것은 나 혼자서는 빼어내지 못한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꾸 빼내어 주라. '성령님, 내 안에 아픔들, 고통, 미움이 있어요 이것들을 빼내어주세요. 치유해주세요. 나를 자유롭게 해주세요.' 이렇게 늘 간구해야 한다. 이것이 내적치유이다. 이런 시간을 짧게라도 많이 가지라.


2). 두려움
힘든 일을 만나면 물러서려는 마음, 일을 하다가 쉽게 피하려는 마음, 귄위자나 높은 사람 앞에서 주눅이 드는 것, 다른 사람과 있기 보다 혼자 있기를 더 좋아하는 것,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하는 것 등의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은 마귀가 주는 것이다. 누구나 이러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다만 상황에 따라 이러한 두려움이 나타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는 것이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러한 두려움을 우리 속에서 미리미리 빼내어 두어야 한다.


3). 죄의식
죄는 회개해도 죄의식은 남아있다.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다는 생각, 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자포자기적인 생각은 오직 기도로 치료받을 수 있다. 이성은 기억하고 있지 않아도 감정은 기억하고 있다. 감정은 엄청난 기억으로 우리를 붙잡고 영향을 준다.
하나님은 좋은 감정을 주시기를 원하시는데, 마귀는 불안과 미움과 두려움과 시기, 질투, 좌절감, 우울의 감정을 넣어주어, 여기에 빠지게 한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늘 감정을 정돈해두라. 기도로, 내적치유로 좋지않은 감정을 청소해버리라. 좋은 감정으로 우리 안에 채워놓으라. 좋은 감정이야말로 성공하는 삶의 자본이다.


4). 열등감
사람들 앞에서 너무 긴장하거나 자신의 의사표시를 못하는 것, 심하게 내성적인 성격, 다른 사람의 비평, 충고에 쉽게 열등감을 느끼는 것, 쉽게 실망하는 것,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무시하는 것은 열등감 때문이다. 경쟁사회에서 누구에게나 있는 감정이다.


5). 자기연민
자신이 인정받지 못할 것 같아 불안해하는 것, 자신보다 우수한 사람과 자주 비교하는 것, 환경조건에 관하여 심하게 불평하는 것은 자기연민 때문이다.


6). 불순종


7). 교만
이러한 좋지못한 감정을 자꾸 빼내어주라. 내면을 정돈해주라. 관리해주라. 우리들은 감정적 표현을 너무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으로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 감정에 찬 설교는 전혀 은혜가 없다.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다. 설교에서 감정을 빼라. 감정적 표현은 관계를 깬다. 감정을 빼고 의사소통을 해야 상처를 입지 않는다. '감정으로 일하지않고, 말하지 않고, 살지 않고 하나님 지혜로 살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해야한다.


제8장. 기도와 마음


1. 기도는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기도는 부족한 무엇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좋지않은 것을 비우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능력을 담는 내면이라는 그릇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세상의 근심, 욕심, 불안함, 시기, 질투, 염려, 야망,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스러운 것들을 비워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 쓰레기통으로 만들지 말라. 배설물 통으로 만들지 말라. 비움후에 하나님으로 채우는 것이 기도이다. 이를 위해 자꾸 자기성찰을 해야한다. 그리고 주님의 마음, 주님의 평강을 중심에 가져다 놓는 것이다. 묵상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여 마음에 가득한 것, 손에 꼭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고 빈 손, 빈 마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으로 채워진다.
기도에 기합이나 감정을 넣지 말라. 풀어놓으라. 내려놓으라. 편안하게 풀어놓으라. 무릎꿇으려고 애쓰지 말라. 기도는 사랑하는 아버지를 만나고 그분이 주시는 것으로 채우는 것이다. 이를 사모하고, 속을 비우라.
기도는 겸손한자가 할 수 있으며 기도하는 자는 더욱 겸손해져야 한다. 겸손한 자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겸손과 기도는 분리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사랑하고 들어 쓰신다. 영적으로 깨어난 사람,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기능적인 능력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기능적인 것은 언제라도 바뀔 수 있다. 성품으로 말하라. 겸손한 성품을 추구하라.
기도는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종의 자리에서 하는 것이며, 나의 중심에서 내려오고 주님을 자신의 중심에 모시고 그 발 앞에서 겸손히 그를 쳐다보는 것이다. 그분과 내가 일체가 되고, 더 깊이 그분을 섬기고 따르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의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떻게 그분을 모시고 있는가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기도는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신비한 체험, 접점이다. 신비와 현실, 이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 거리를 좁혀주는 것이 체험이다. 체험은 믿음의 기도로부터 온다. 체험은 하나님에게 접근하려는 사람에게 온다. 체험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며 신비이다. 이론이 실제의 경험이 되며, 상상이 현실화가 되며, 신앙의 활력을 주며 전환점이 된다. 기도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기도속에서 하나님을 체험해야 한다. 가장 보편적인 체험은 평안이다. 기도속에서 많건 적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체험해야 한다.
기도에서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적상태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만남이 체험이고 신비이다. 이러한 만남을 위하여 속을 비워야 하고, 하나님을 만나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아픔과 고통과 부족함을 가리려고 하지 말고, 그것을 드러내고, 내려놓고, 맡길 때, 주님은 우리를 만나고, 그것들을 빼내시고, 좋은 것을 채워주신다. 이것이 주님과의 교제를 통한 은혜, 만남의 은혜, 교제의 은혜, 기도의 은혜이다. 이것이 기도이다.


2. 기도는 비운 마음에 그리스도로 채우는 것이다.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기도는 우리속에 채워진 좋지 않은 것을 비워버리고 주님이 주시는 좋은 마음을 품는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채우는 것이다. 성령님의 마음으로 채우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채우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은 즉 성령님을 품는 것이다. 성령님을 사랑하고 사모하고 품는 것이다. 그리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이다. 겁나게 성령님을 많이 찾으라. 입술로 찾지 말고, 마음으로 찾으라. 안으로 찾으라. 그러면 차츰차츰 성품과 행동과 생각과 삶이 변화하게 된다. 이것이 바른 기도를 한 것이다. 기도의 열매이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이 점점 내 마음을 채우는 것을 느끼게 된다.
기도는 마음에 심겨진 잘못된 감정, 상처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비우고 지우는 것이며, 거기에 하나님의 성품으로 채우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안정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러한 부분이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다. 외부의 안정, 환경의 안정이 아니라, 마음의 안정감을 찾으라.
이러한 기도는 영적인 기도이다. 영적인 기도는 영적상태에서 해야 한다. 성령님을 자꾸 찾으면 성령님이 나타나시며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의식에서 영적상태로 바뀌게 된다. 이때 생각하는 것은 의식(두뇌)이 아니라, 무의식(영, 마음)이다. 마치 눈을 감고 고향을 떠올리는 것처럼 의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상태가 마음의 상태, 영적상태이다. 이런 상태에서 성령님에게 묻고, 간구하고, 도움을 요청하라. 치유를 받으라. 간단하게, 그러나 반복해서, 지속적으로 하라. 이처럼 영적상태에서 마음으로 하는 한마디가 그냥 입으로 하는 수천마디보다 더 강하게 역사한다. 인간의 주체는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다. 영적상태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세상을 이기는 에너지이다.
기도와 찬양, 기도와 성품은 서로 깊은 관계가 있다. 찬양이 마음의 상태를 이끌고 나간다. 찬양에 강한 힘이 있다. 시대를 알려면 노래를 알아보라. 어떤 가사, 어떤 감정인가? 초신자는 보혈, 죄사함을 찬양하라. 성숙한 성도는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는 찬양을 하라. 찬양도 발전해야 한다. 찬양도 변해야 한다.
예배와 섬김이란 그 대상의 성품을 닮고, 그 대상의 운명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기도는 그 대상에게 나아가는 것이며, 만나는 것이고, 그 대상의 것이 내게 들어오는 것이다. 그 대상과 내가 일체가 되는 것이다.


제9장. 청원기도


청원기도도 해야한다. 그러나 이러한 청원이 기도의 주체가 되어서는 안된다. 청원기도는 많으나 응답을 받지 못한다.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가? 예수의 이름으로 하면 응답해 주신다는 의미는 우리 마음대로 청원하고 마지막에 예수의 이름을 뒤에 붙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기도하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기도하는 것처럼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청원기도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도 청원기도를 하셨고, 하나님은 그 청원기도를 다 들어주셨다. 이것이 우리의 청원기도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왕에 기도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받아야만 하겠다는 자세가 되었을 때에 청원기도를 하라.


1. 청원기도의 모형: 눅11:5-7


1). 정당한 것, 필수적인 것을 간구해야 한다. 기도는 자기주장의 발표나, 욕심을 부리는 것이 아니다.
2). 상대방과 나의 관계가 분명해야 한다. 그래야 끈질기게, 믿음으로 청원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먼저 상대방과의 관계부터 정상화시키라. 떡보다 관계가 훨씬 중요하다. 그분에 대한 신뢰심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이 무시되고 그냥 빌면 된다는 개념은 버려야한다. 관계만 잘되어 있으면 구하지 않아도 주신다. 떡을 강조하기보다, 친구를 깨우는 일, 즉 관계성에 집중하라.
3). 먼저 성령님을 간구하라. 성령님을 요청하라. 문을 두드리라.
4). 청원하는 물질에 집중하지 말고 청원대상에게 집중하라. '당신이 원하시면'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라.
5). 항구적으로 간구하라. 이 말은 기대를 가지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붙잡고 있으라는 것이다. 장시간 똑같은 기도를 계속하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지 않고, 짧지만 지속적으로 기도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되어 있기만 하면 나의 청원을 들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두드리면 일어난다는 신뢰를 가지고 있으면 계속 두드릴 수 있다. 그러므로 항구적이라는 말은 짧지만, 자주, 끈질기게, 지속적으로,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간구하라는 것이다. 이런 믿음이 있으면 기도하는대로 응답을 받아낼 수 있다.


2. 계속 기도하라


1). 구한 기도가 응답될 때까지 기도하는 항구적인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2). 기도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며, 그 대가로 말미암아 가치 있는 것을 그로부터 받는 것이다.
3. 먼저 구해야 할 것
무엇을 달라고 하는 청원기도에서도 가장 먼저 간구해야 하는 것은 역시 성령의 임재, 충만, 교통함이다.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이것은 생명이다. 성령의 교통하심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수 있는 길이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에게 전달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안에 계신 성령의 충만을 구하는 것이 응답받는 기도, 바른 기도의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내안에, 내말이 너희안에 거하는 것', 이것이 모든 기도의 기본이다. 우리가 주의 마음을 가지는 이것이 기도의 핵심이다. 이렇게 되면 이기적인 기도가 나오지 않는다.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 이것만 되면 아무리 짧은 기도라도 응답된다. '주님의 마음을 가지는 것, 나를 주님에게 드리는 것, 예수님이 나의 모든 것, 내가 무엇을 구하겠나이까, 나를 드리겠나이다.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를 원하나이다' 라는 간구야말로 응답받는 기도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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