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군의 역사
매년 12월이 되면 거리에는 캐롤이 울려 퍼진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등장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구세군의 모금함인 자선냄비이다. 핸드 벨을 딸랑이며 구세군의 사관과 병사들이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한 모금에 나서는 것이다.
그러면 이 구세군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구세군(Salvation Army)은 1865년 영국 런던의 감리교회 목사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안락한 교회 강단에서의 사역을 포기하고 가난한 이들, 홈-리스들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처음에 그가 목적했던 바는 당대의 기성 교회들에 거리에서 회심한 이들을 합류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점차 그는 당대 영국의 빅토리안 교회들 거의가 그들을 환대하지 않고 그들의 존재를 불편해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회들은 초라한 행색으로 목욕조차 제대로 못해 냄새가 진동하는 홈-리스들과 가난한 사람들과 자신들이 한 곳에 앉아 예배하는 것에 질겁했다.
결국 부스는 그들을 위한 특별한 교회를 세우기로 결심했고 '동부 런던 기독교 선교회'(East London Christian Mission)를 세웠다. 이 선교회의 활동은 너무나 느리게 성장해갔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부스의 믿음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1878년 3월에 부스는 그의 아들 브람웰(Bramwell)과 그의 친구 조지 레일톤(George Railton)으로 하여금 년차 모임에서 사역 강령을 읽게 했다. 강령의 초두는 "기독교 선교회는 자원군"이라고 되어있었다. VOLUNTEER ARMY"(자원군)가 구세군의 초기 이름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브람웰은 이 말을 마땅치 않게 여겼다. 그 이유는 자신은 자원자도 아니고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이 일에 끌려 들어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부스는 곧 "Volunteer" 라는 말을 삭제하고 대신에 "Salvation"이라고 고쳐 썼다. 이리하여 구세군이 란 말이 탄생하게 되었다.
1900년대에 구세군은 세계 전역으로 활동범위를 넓혔다. 구세군의 지도자들과 병사들은 36개 국가로 퍼져나갔다. 그들은 여성의 사회활동을 장려하고 실제로 구세군의 사역은 부부의 사역이 되었다. 최초의 푸드뱅크를 시작했고, 최초의 종일반 탁아시설을 시작했으며, 최초의 구세군 사역자들의 병원을 세웠다. 이후로 구세군은 전 세계를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사회복지와 선교를 이어가고 있다. 구세군은 현재 106개 국가에 설립되어 있고 그들의 활동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과 모든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발로에서 더욱 증진되고 있다.
그러면, 한국 구세군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한국구세군은 1907년 부스 대장의 일본 집회에 참석했던 조선 유학생의 요청에 따라 1908년 10월 영국 구세군의 허가드(Hoggard) 정령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해 11월 22일에 서대문에 최초의 구세군 영문이 세워졌고 그의 재임 중 사관 87명, 교인 2753명, 영문 78개소가 되는 놀라운 발전을 보여주었다. 한국구세군은 1909년부터 구세공보를 발간하고 절제운동에 앞장섰다. 1918년에는 아동구제시설 혜천원을 세웠고 1926년에는 윤락여성을 위한 시설과 학교를 세웠다. 1928년부터는 자선냄비운동을 시작하여 구제기금을 마련하여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에 대표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943년 일제에 의해 폐쇄되었던 구세군은 1947년에 새로운 사령관의 부임으로 재건되었다. 한국전쟁기간에 사령관 로오드 부장이 납북되었고 진주영문의 담임 사관인 노영수 참령이 순교를 당하기도 했다.
앞으로 3년 후면 한국 진주 100년을 맞는 한국 구세군은 20명의 사령관이 바뀌어 오는 동안 현재 220여개의 영문(교회)과 100,000여명의 교인, 지역사회복지 시설 220여개, 전문 사회사업시설 47개 등의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며 선교활동은 물론 사회사업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가지 더.
구세군의 자선 냄비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최초의 자선 냄비는 성탄이 다가오던 189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갑작스런 재난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 1000여명의 이재민들과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조셉 맥피라는 한 사관(정위)이 오클랜드 부두에서 큰 솥을 걸어 놓고 모금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는 솥에 "이 솥을 끓게 합시다"라는 말을 써 놓았다. 한국에서는 1928년 12월 15일 당시 사령관이었던 박준섭(죠셉 바아) 사관이 서울 도심에 자선냄비를 설치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기둥교회 목사 박찬희
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 봉서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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