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나는 조용기 목사
1958년 5월 서울 대조동에서 교회를 시작한 최자실 전도사와 조용기 전도사가 중풍으로 고생하는 이웃 여인의 집을 찾아갔다. 조용기는 병자의 머리에 손을 얹고 방언(方言·성령에 의해 말해진다는, 내용을 알 수 없는 말)으로 기도한 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중풍병은 나을지어다"라고 소리쳤다. 7년 동안 자기 발로 일어선 적이 없던 여인이 벽을 잡고 일어나 걸었다고 한다. 신유(神癒·신의 힘으로 병이 낫는 것)의 기적이 일어났다며 사람들이 교회로 모여들었다.
▶최자실의 집 거실에서 출발한 순복음교회는 신자들이 늘면서 마당에 천막을 치고 예배를 올렸다. 조용기는 훗날 장모가 된 최자실을 돕다 1962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천막교회는 그해 서대문 로터리로, 1973년엔 여의도로 새 건물을 지어 옮겼다. 다섯 명으로 시작한 교회는 엄청난 속도로 불어 등록신자 75만 명의 세계 최대 규모가 됐다. 조용기는 세계를 누비며 70여 개국에서 290차례 집회를 인도했다. 미국·일본·유럽엔 교회와 신학교를 세웠다.
▶조용기 목사의 성공은 '20세기 교회 성장의 세계적 대표사례'로 꼽힌다. 비결은 '삼중(三重)축복'에 있다. 성령의 힘으로 영혼이 축복받을 뿐 아니라 일상생활이 두루 잘되고 신체도 튼튼해진다는 메시지는 서민들에게 폭발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교회가 커지면서 신자들을 구역으로 세밀하게 조직하고 여성 평신도가 이를 이끌게 한 것도 큰 성공을 거뒀다. 고교 시절 이웃 미군부대를 드나들며 익히기 시작한 빼어난 영어실력은 활발한 해외활동의 자산이 됐다.
▶조용기 목사가 여의도 순복음교회 창립 50년을 맞아 오는 14일 원로목사로 추대돼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난다. 후임 담임목사엔 2006년 말 장로들 투표로 선출된 이영훈 목사가 21일 취임한다. 조 목사는 앞으로 해외선교와 국내외 불우이웃 돕기에 전념할 것이라고 한다.
▶조용기 목사는 목회에서 놀랄 만한 성공을 이루고도 오랫동안 한국 개신교의 주변 자리에 있었다. 장로교·감리교 같은 주요 교파가 아닌 데다 기적과 성령체험을 강조해 개신교 주류는 그를 이단으로 보기까지 했다. 그러나 50년 동안 안식년도 없이, 사흘 이상 휴가를 간 적도 없이 달려온 조용기 목사는 개신교 연합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기독교 일간지를 만들면서 교계의 중심인물이 됐다. 이제 그의 은퇴로 순복음교회도 새 페이지를 넘기게 됐다.
조선일보, 만물상, 20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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