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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열증의 환각과 귀신들림을 구분하라

하마사 2007. 11. 16. 06:20

인간의 감각은 오감을 통하여 인지되는 뇌 작용의 하나다. 감각을 통한 뇌 작용에서 화학작용은 중요하게 역할한다. 화학작용이란 일정한 성질을 가진 화학적 물질이 서로 성질을 달리하는 다른 물질로 변화하는 작용이다. 여기에 우리의 인체는 상당 부분 화학적 자극에 의하여 반응하는 감각이 발생하게 된다. 예를 들어 미각은 설유두(舌乳頭)에 용액이 작용해서 생기는데 보통 달다, 짜다, 시다, 쓰다의 네 가지로 구별된다. 이런 미각에는 구강 내의 지각 말단을 자극할 때 생기는 매움, 씁쓸함도 포함된다. 자극물질과 미각 사이에는 일정한 관계가 있어서 신 것은 자극물질의 수소 이온(ion) 농도에 의해, 그리고 짠 것은 중성염에 의해 자극된다. 서로 혼합하여 융합하는 맛과 융합하지 않는 맛이 있고 서로 다른 것을 소멸시키는 맛도 있다. 바로 이런 미각 등의 감각이 뇌에 전달되면 정신에는 변화가 일어난다. 이런 감각들에는 시각·청각·후각·미각·압각·온도감각·통각·운동감각·평형감각·냉감각 등이 있다. 이들 감각은 크게 외부적인 적인 것과 내부적인 것으로 구분하고 그 성질에 따라 전파수용기와 화학수용기, 기계적 수용기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감각들이 심리적 상태를 변화시키거나 좌우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모두 자신의 생각으로만 정신이 변화되는 것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감각은 임상의 영역에서는 정신의 문제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정신분열증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환각도 그런 관점에서 이해된다. 환각(幻覺, hallucination)은 자극받을 대상이 없는 데도 지각되는 현상이다. 소리자극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들리는 것이 환청(幻廳)이며, 빛이 없는데도 보이면 환시(環視)다. 이런 환각은 그 나타나는 특성에 따라 환시(環視)·환청(幻廳)·환후(幻嗅)·환미(幻味)·환촉(幻觸) 등으로 구분된다. 환각은 성령, 귀신 역사 아니다 정신분열증에서 환각(幻覺)의 파악은 중요하다. 이 환각의 상태와 정도는 정신분열증을 진단하는 중요한 요건이기 때문이다. 환각의 파악에서는 환각자가 무엇을 경험했는지의 내용과 환자의 태도를 파악해야 한다. 이런 환각이 바로 신앙생활에서도 중요한데, 이는 가장 많이 혼동하는 이른바 초월적인 체험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특정한 환자들뿐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이라도 신체적 허약함에서는 유난히 환각을 경험한다. 그런데도 신앙인은 이런 환각을 '귀신의 역사(役事)'로 파악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신체적 허약함으로 인하여 발생되는 환각적 작용이라 해도 덮어 놓고 신앙적으로 파악하려는 욕구 때문이다. 그리고 자꾸만 무엇이 보인다고 말하는 신앙인도 있다. 이런 환시(環視)의 현상을 자신에게만 특별히 보여주는 계시나 환상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다. 그런 사람들의 감추어진 의도에는 자신이 특별하게 보는 영적 능력이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가장(假裝)한다. 이런 현상은 영적 능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단순히 자신의 신체적 허약함에서 발생하는 환시(環視)로서 시각적 환각인데도 말이다. 이는 환각을 단순히 정신분열증으로 보아서도 안 되는 이유다. 어떤 사람이 죽은 어머니가 침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든가,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고 하자. 이런 현상을 두고 ‘그것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정확히 안다’고 인식한다면 이것은 정신분열증과는 다른 것이다. 이것은 정신분열증의 특징이 아닌 대부분의 환상에 가득한 사람들의 생각이나 두려움, 그리움을 나타내는 데서 일어난 정신적 작용이다. 귀신이 아니어도 어느 누구를 무척이나 사모하고 그리워하면 일시적으로 환각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환각은 마치 각성시의 환각을 말하는 것으로서 주로 각성시의 꿈이나 반수면 상태에서도 경험될 수 있는 것이다. 환각은 임상에서 상당히 흥미롭고 특이한 형태도 발견된다. 이런 환각 중에는 그것이 환각이라고 의식되는 경우에 수족(手足)이 절단된 사람이 그 후에도 수족이 있는 것으로 느끼는 환영지(幻影肢)의 경우와 대상의 실체를 확신하는 경우에는 환각이라고 느끼지 않고 실제의 지각으로 의식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는 달리 외부로부터의 자극이 없는데도 머리속에서 어떤 소리가 들린다면 이를 유사환각(pseudo-hallucination)이라 한다. 이런 유사환각은 외부의 자극이 있어서 지각되는 참된 환각과는 구분되는 것이다. 이때 참된 환각과 유사환각 사이에는 정신환각이나 언어성 의사환각 등이 있다. 참 환각과 유사환각 사이에는 여러 단계가 있는데, 이들은 외부로부터의 자극으로 인한 현상이 아니라 자아(自我) 밖으로부터의 투사에 의한 것이다. 이 투사적 성질이 중요시됨에 따라 이제 환각은 ‘대상 없는 지각’으로만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일반적인 정신병의 경우에 의식이 혼탁할 때 환시(幻視)가 있을 수 있고, 정신분열증의 경우에도 어떤 소리가 아니라 말이 들린다는 언어성 환청이 많은 편이다. 조울증에서는 드물기는 하지만 기분에 알맞은 환각이 일어나기도 한다. 또 정상적인 사람에 있어서 잠들 때 환각을 경험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입면환각(入眠幻覺)이라 한다. 환각이 일어나는 이유 환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이는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정신의 원리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한마디로 환각은 의식의 기능이 약화되면 작용하게 된 결과다. 의식의 기능이 약화되면 무의식의 기능이 의식을 압도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의식의 통제기능이 상실되어 무의식의 특성이 의식에 뚫고 나오는 현상이다. 그러면 의식(意識)이란 무엇인가? 의식이란 한마디로 지금 생각되고, 느끼는 그 자체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판단하는 것이 바로 의식의 작용이다. 이런 의식 역시 자아와 관련되어 설명된다. ‘자아’는 의식의 주체로서 생각하고 느끼고 지각하는 일 등에 중심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 의식은 무의식과 더불어 우리의 정신계를 이루고 있는 두 특성이자 두 축이다. 내가 아는 것이 의식이라면 내가 모르는 모든 심리적 경향을 무의식이라 부르는 것이다. 무의식은 지금은 의식되지 않으나 나의 생각, 과거의 경험, 감추어진 욕구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의식은 논리성에 기초하고 있는데 반해 무의식은 욕구적이고 비논리적인 특성으로 나타난다. 무의식이 언젠가 의식을 뚫고 나와서 작용하고 개인은 누구나 현실과 전혀 다른 체험을 하게 된다. 실로 정신분열증 환자는 이런 무의식의 상태에 살고 있는 사람인 셈이다. 지금쯤이면 의식과 무의식의 크기에 대하여 궁금해질 것이다. 무의식이 바다와 같이 드넓은 것이라면 의식은 그 반대로 극히 작은 섬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식과 무의식을 비교한 고전적인 표현이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다. 의식은 보이는 부분의 얼음덩이라면 무의식은 바다 속에 감추어진 어마어마한 얼음 덩어리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환각은 논리적 설명이 불가능하고 비현실적인 무의식의 특성과 관련되고 있다. 그러기에 단순한 무의식적인 특성을 초월적 현상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 이는 일시적인 환각을 모두 귀신적 현상이라거나 초월적인 영적 체험으로만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위험한 이유이다. 설령 환각의 경험이 몇 번 있다 해도 그것이 정신의 이상인지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진단이 요구된다. 인격의 변화 없는 환각은 정신분열증인 것과는 무관하므로 정신분열증적인 것으로는 거의 평가되지 않는다. 때로 중독질환에서는 그런 환각적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어떤 사람이 실제와는 다르게 어떤 것을 감각적으로 지각했다면, 이것을 그릇된 사고과정(思考過程), 그릇된 판단이나 의견처럼 수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숙고나 다른 사람이 그에게 사실이 아님을 믿을 수 있도록 말한 것을 근거로 다르게 인식할 뿐이다. 즉 그가 지각한 것이 진정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각이란 엄밀하게 말하면 인식의 오류일 수 있는 것이다. 환각은 때로 신앙인에게 영적 체험으로 오해될 수 있다. 인격 변화의 정도가 없는 환각을 영적 체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위험성이다. 각성시의 환각에서는 물론 인격의 전체 변화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런 환각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므로 반드시 귀신과 관련되지 않는다. 전술한 대로 환각이란 의식이 약화되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런 환각을 우리는 귀신의 역사라고 하여 그것을 “소리 질러 쫓아버리라!”고 말하며 애써 영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이는 신체적 허약함이나 영양결핍으로 인해 의식이 약화되어 일어난 현상을 덮어놓고 귀신의 작용이라고 인정한 결과다. 모든 일에 영적인 현상으로 인정하는 건 잘못 이는 일상과는 조금 다른 현상을 무조건 영적인 현상으로 인정하려는 우리의 잘못된 신앙적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경우에 영양섭취는 잘 되고 있는지, 수면을 잘 취하고 있는지 등의 몸의 컨디션의 정도를 살피는 일이 더 시급한 일인데도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필자도 처음 목회 시에 그런 식의 생각을 가지고 여러 번 축귀를 시도했었다. 그 당시에는 가급적이면 신앙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교인들 앞에서! 스스로 영적인 권위를 세우려던 때였다. 개척하면서 신학대학원을 다니던 필자로서는 특별히 주의 종으로 자처하고 싶은데 비해 그다지 일반 교인들과 차별화시킬 만한 것이 없어서 그런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마땅히 주의 종으로서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작용한 것이요, 다른 하나는 그런 영적인 권위로 우위를 점유하려는 지배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교인에 대하여 마음이 열리지 않고 심지어 기분 나쁘게 생각되기까지 한다. 물론 그런 목회적 자세는 그 어떤 경우에도 비난 받아 마땅하다. 그런 자세는 무지의 차원을 넘어 그 중심에는 교인을 위한 마음이 아니라 목회자 자신의 가치를 우선하는 태도가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의 18년 목회생활을 되돌아보면 두고두고 후회스러운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교인을 위한 목회보다는 나 자신을 위한 목회를 더 많이 하지 않았나!'는 생각이 드는 점이다. 그런데 어쩔 것인가. 실력이 없으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을 말이다. 귀신을 유달리 강조하는 교회들이 있다. 그런 교회들의 경우 이런 환각을 두고 반드시 귀신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서울에서 귀신을 강조하기로 소문난 교회에서 지구장의 위치에 있던 여자 성도가 필자가 목회하는 교회로 이동하여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여 집사는 툭하면 귀신의 역사라고 인정하여 귀신을 쫓는 행위를 수도 없이 행하였다. 손이 아파도 손의 아픈 부분을 때리면서 “이 더러운 귀신아 나가라!”고 행하였다. 몸의 아픈 곳마다 모두 그렇게 하라고 다른 교인들에게 일러주기도 한다. 마치 귀신에 대하여 대단한 전문적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자처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신체적 아픈 곳만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일에도 귀신을 부르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여 집사는 그야말로 ‘귀신에 충만한 사람’이었다. 필자는 그 여 집사에게 귀신을 자꾸만 의식하고 자주 귀신을 부르면 귀신을 ‘인정하는 꼴’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랬더니 그 여 집사는 그런 나에게 성경에 나오는 귀신의 이야기를 믿지 않느냐고 오히려 반문하였다. 그때 나는 귀신을 인정하고 믿지만 우리는 귀신보다는 성령을 더 인정하고 믿으며 성령과 더 가까이 사귀는 편이 훨씬 낫다고 일러주었다. 일상의 삶에서 귀신보다는 항상 성령을 인정하고 살아야 올바른 신앙생활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면서 ‘성령의 충만’을 권유했다. 그래도 그 여 집사는 여전히 귀신의 정체를 알수록 더 영적으로 밝아진다고 힘주어 역설한다. 정신의 원리에서 생각하면 자주 의식하는 것은 뇌에 자극을 주어 인지적 작용이 일어나고, 그런 인지의 작용이 심해지면 행동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뇌의 인지작용은 자연히 행동으로 반응되기 때문이다. 그런 원리에서 자주 귀신을 인정하고 의식할수록 귀신에 사로잡히는 것은 당연하다. 목회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 여 집사는 분명히 그녀에게 존재하지도 않은 귀신의 존재를 자신의 의식 속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스스로 귀신이라는 존재에 사로잡히고 있는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성령을 인정하고 성령에 사로잡히면 훨씬 더 좋을 텐데 말이다. 목회자가 효율적인 목회를 위해서 정신의학적 지식을 갖추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상담치료연구소, 김충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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