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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증

하마사 2007. 11. 7. 14:52
[만물상] 편집증
강인선 논설위원 insun@chosun.com
입력 : 2007.11.06 22:45
 

    닉슨이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사임한 지 3년 만인 1977년 TV 인터뷰를 했다. 그는 이날 ‘편집증(paranoia)’이라는 말을 여섯 번이나 썼다. 그는 “내가 편집증적으로 사람들을 싫어한다고요?”라고 반문하더니 “때때로 그랬다”고 실토했다. 베트남전을 얘기할 땐 “평화를 위한 편집증”이라는 표현을 썼다. 대통령 시절 정적들에게 느꼈던 분노와 두려움이 편집증적이었음을 솔직하게 인정한 셈이었다.

    ▶닉슨과 최측근 참모들은 정부 브리핑룸을 선전도구로 여겼다. 닉슨은 “저 너머에서 자기 중심적 기자들이 대통령을 피로 물들일 궁리만 하는데 어떻게 자유로운 의견교환이 가능하냐”고 했다. 참모회의에선 “기자들에게 브리핑할 때 그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리고 싶은 것을 얘기하라”고 지시했다. “언론은 적이니까 기사를 통제하고 모든 문제를 장밋빛으로 치장하라”고도 했다.

    ▶역사학자 호프스태터는 편집증적 정치인들의 특징은 “갈등이 절대 선과 절대 악 사이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중재나 타협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라고 했다. 이런 정치인들은 협상을 고려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싸워서 끝장을 보겠다는 의지로 무장한다. 그러나 이런 비현실적 목표가 달성될 리 없다. 실패가 반복되면서 쌓인 좌절감은 편집증을 더욱 악화시킨다고 한다.

    ▶편집증의 주요 증상은 의혹과 불신이다. 대표적 편집증인 의처증이나 의부증은 사실을 정확하게 설명해도 ‘그 뒤에 뭔가 있다’고 의심하기 때문에 바로잡기 힘들다. ‘나는 옳고,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은 모두 적’이라는 극단적 이분법 사고방식도 편집증의 한 증세다. 최근 한 정치학자는 “편집증은 비난에 대한 과민반응과 복수심, 과도한 독립성으로 표출되는데,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가 소송을 빈번하게 제기하는 것도 그런 징후”라고 했다.

    ▶국정홍보처가 지난달 외교부의 기존 기사송고실을 폐쇄한 지 한 달 가까이 기자들은 로비 바닥에서 노트북으로 기사를 써 왔다. 어제 그나마 끌어다 쓰던 전기마저 끊겼다. 기자들을 정부 청사에서 쫓아내 공무원 접촉을 통제하는 취재봉쇄의 출발점은 대통령의 개인적 증오와 원한이다. 급기야 지금 정부청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거의 편집증 수준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닉슨은 퇴임 3년 뒤 “인간이 증오심에 좌우돼서는 안 된다”고 후회했다. 조금 더 일찍 편집증에서 깨어났더라면 역사에 오점을 남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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