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에게서 한없는 축복을 받은 내가 이제 누군가에게 뭔가를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선뜻 무엇을 해야할지 망설이는 저에게, 카자흐스탄이라는 낮선 땅에 선교활동을 가게 되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선교활동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급하시면 나같이 부족한 사람을 일꾼으로 부르실까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갔습니다. 하나님은 준비가 많이 부족했던 우리에게 성령 충만하고 선교경험도 많은 순장님을 예비해 주셔서 든든한 마음으로 선교활동 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선교활동기간 하루하루 지내면서 겪었던 일들은 지금도 영화 필름처럼 생생하게 떠올라 얼마나 가슴을 벅차게 하는지 이루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저희팀은 작년과 재작년에 복음을 받고 예수님을 영접한 교인들을 돌보는 양육팀으로 배정된 그룹이었습니다. 우리가 머물렀던 악콜교회는 법원과 경찰서, 구청, 재래시장도 가깝고 드물게나마 마트도 있어 일상적인 생할을 하는데에 크게 불편하지 않은, 우리나라 면단위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마을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문 앞에 이슬람교 사원이 자리잡고 있었고 공식적인 선교활동은 법으로 금지되어있어 매우 조심스럽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우선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에 앞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봉사를 통해 몸소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교회의 안과 밖을 깨끗이 청소하고 예배당을 예쁘게 꾸미면서 선교활동의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직접 복음을 들고 사람들을 찾아갔을 때에는 서먹서먹한 표정과 서투른 언어로 전하는 복음인데도 순진한 맘으로 주님을 영접하는 그곳 사람들을 볼때마다 너무 기뻤고 가난하지만 찾아오는 손님에게 정성껏 대접하는 모습에 감동하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데도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을 전할수 있는것을 보며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만드신 같은 피조물, 한 형제라는 것에 더욱 마음이 뜨거워지기도 했고 그 가운데 역사하시는 보혈의 능력을 체험할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환경속에서 주님의 사랑을 모르고 사는 그곳 사람들을 가슴아파 하시며 우리를 보내셔서 나를 사랑하는 주님께서 ‘이들도 피로 값주고 산 사랑하는 나의 자녀들이란다’ 하는 음성을 들려주실 때 하염없는 눈물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병상에 누워 주님께 고침받기를 간절히 원하며 매달리는 환자의 눈빛을 볼때 목이 메인적이도 여러번 있었습니다. 한 남자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남편이 다섯이라며 아픔과 죄악에 눌려 평안을 몰랐던 셩경속의 불쌍한 여인처럼 남편에게 버림받고 가족과 형제가 헤어져서 고통을 겪는 여인도 많이 있었습니다. 성적으로 문란한 사회풍토와 게으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랑하는 자녀들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나도 타락한 인간들의 생활을 물로 심판할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수도 있어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한편으로는 수년을 병석에 누워있는 가장을 위해 온가족이 어떤 신이든 고쳐주기만 하면 믿겠다며 마리아, 베드로, 알라신, 예수님을 전혀 구분하지도 못하며 무조건 모든 신에게 빌고 있는 어리석은 모습은 분노를 느끼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한번은 기차를 타고 가축을 많이 키우는 시골에 가게 되었는데, 그전에 우리가 만났던 가난하고 순진한 사람들과는 달리 그곳에서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는 가정을 심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가정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불행하게 사는데 자신들은 주님을 영접하지 않아도 걱정할것 하나없이 잘살고 있다며 복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어떤말을 하여도 그들은 들으려하지 않았고 우리에게 물한잔도 주지 않고 끝까지 복음을 거부하였습니다.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보다 부유하고 행복해보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곳 상황이 공개적으로 전도를 할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척 조심하며 활동을 하였으나 이웃의 신고로 경찰서에서 출석해야 한다는 명령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순장님과 전도사님이 경찰서에 가보니, 신고는 주일날 스파이를 보내어 우리의 간증설교를 녹음해 간 것을 증거로 이웃에 있는 이슬람교도가 하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선교지의 교회를 문닫게 하지 않으려면 큰 액수의 벌금을 물거나 선교사가 강제 추방되어 입국이 금지된다는 엄포에 우리는 차리던 점심상을 뒤에 두고 금식기도를 하며 법원의 판결만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얼마가 지난 뒤 기도하던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왜 의심하느냐 바다야 잔잔하라’는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이때 우리는 고국에 있는 광성의 가족들이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고 계신지 느낄수 있었답니다. 창세기에 모세를 탄생시킬때 산파였던 십보라에게 지혜를 주셨던 하나님께서 바로 그 순간 역사하심을 체험하였습니다. 가라간다 교회 개척자이신 여집사님이 통역을 하셨는데 우리가 순수함 마음으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 왔다는 뜻을 지혜롭게 잘 전달해 주셔서 결국엔 법원측에서도 뜻을 알겠으니 다시 이런일이 없도록 조심해 주길 부탁하면서 아무 벌칙도 없이 밤 10시쯤 돌려보내 주었습니다. 시커먼 보리밥 한공기 먹고 하루종일 금식해서 밤 10시가 되니까 모두 허기가 져서 이튿날 아침에 닭다리 5개를 넣고 닭죽을 끓였는데 식기도를 하면서 눈물이 나서 목이 메였습니다.
‘우리는 지금이 천국인것 같에요.’ 보리와 빵, 수제비, 사탕, 초코렛으로 주식을 삼는 그들을 생각하면 입는것도, 먹는것도, 자는것도, 우리는 지금 천국에서 사는것 같아 감사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처음 카자흐스탄에 선교활동을 하러 가기로 결심하였을땐 주님이 날 일꾼으로 쓰시려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선교활동을 가서 느낀것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일꾼이 없어서 나를 부르신것이 아니라 섬김과 사랑, 순종과 희생을 통해 화목을 이루는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며 가슴으로 느끼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뜻을 내가 이루어 드리려고 혼자 발버둥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닫게 해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선교활동이 끝나고 돌아오면서 “놀라운 계획과 새로운 비젼을 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날 용서해주세요, 나 혼자만을 위해 살아온 생활들이 너무 죄송합니다.” 하며 하염없는 흐느낌과 눈물을 닦으면서 회개를 하였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통하여 뿌리신 작은 복음의 씨앗들이 크게 자라서 하루 빨리 카자흐스탄에도 성령의 불길이 타오르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리며 이 간증을 끝맺습니다.
여러분들도 작은 마음을 가진 자라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참여하신다면 제가 느낄수 있었던 큰 은혜를 같이 체험하실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영순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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