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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3등칸에 탄 슈바이처

하마사 2007. 10. 30. 11:59
   3등칸에 탄 슈바이처       
  

알자스 태생인 그는 의사이며, 목사이며, 음악가이며 또한 철학자이기도 했다.
그가 쓴「문화철학」은 생의 외경을 주제로 한 명저로 잘 알려져 있다.
바하 연구가이기도 한 그는 오르간의 명연주자로서도 유명하다.
평생 동안 아프리카 콩고에서 토인들을 위한 
의료봉사와 전도활동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1953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함으로써 밀림의 성자라 불리며 
전 인류의추앙을 받다가
1957년 슈바이처의 부인 헬레나가 세상을 떠나자 
한동안 슬픔에 잠겨있던 슈바이처는 병원 뒤뜰에 헬레나를 묻었다
1965년 슈바이처는 한참 떠돌고 있던 열병에 
자신도 감염이 되어 90세의 일기를 끝으로 숨을 거두었다
슈바이처 박사는 많은 일화를 남겼는데, 그 중의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그는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아프리카를 떠나 파리까지 가서,
거기서 다시 기차를 타고 덴마크로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가 파리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신문 기자들이 
취재를 하려고 그가 탄 기차로 몰려들었다.
슈바이처는 영국 황실로부터 백작 칭호를 받은 귀족이다. 
그래서 취재경쟁에 열중한 기자들이 한꺼번에 특등실로 우르르 몰려 들어가 
슈바이처 박사를 찾아보았으나,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다시 일등칸으로 몰려가서 찾아보았으나, 거기에도 없었다. 
또 다시 이등칸으로 가 봤으나, 거기서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기자들은 모두들 허탈한 나머지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그런데 영국 기자 한 사람만이 혹시나 하고 3등 칸을 기웃거리다가 
의외로 거기서 슈바이처 박사를 찾아냈다.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딱딱한 나무 의자에 꽉 끼어 앉아 있는 
퀴퀴한 악취로 가득한 3등 칸 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슈바이처 박사는 열심히 그들을 진찰하고 있었다.
놀란 기자가 그에게 「특등실」로 자리를 옮기기를 권했으나
 슈바이처 박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어쩌자고 
이렇게 냄새나고 불편한 곳에서 고생하며 가십니까?” 
슈바이처 박사는 잠시 후 이마의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저는 편안한 곳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다닙니다.
특등실의 사람들은 저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정말 존경스럽지 아니한가? 
그가 살아 있을 때, 저 아프리카 오지 그의 집무실 벽에 걸어 놓고 
늘 즐겨 읽던 그의 친필 명구는 이렇다.
인내가 필요할 때는, 조용히 야곱의 인내를 상고하라.
기도가 부족하다고 여겨질 때면, 엘리야를 보라.
마음에 찬양이 없으면, 다윗에 귀를 기울이라.
믿음이 적다고 생각되면, 바울의 서신을 읽어라.
자신이 나태해진다고 여겨지면, 야고보서를 묵상하라.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보고,
소망은 그리스도로부터 모든 것을 기대하고,
사랑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니라.
 
출처 : Joyful의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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