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10.11 17:57 / 수정 : 2007.10.11 23:19
- 강천석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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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 사람들에게 한번 풀어보라고 하고 싶은 문제다. 대통령이나 총리·부총리께서도 함께 나선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래야 고개 뻣뻣한 청와대·정치권 386들도 진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첫 문제는 공통점 찾기다. 한국 현대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아래 인물들의 공통점 2개를 말해달라는 것이다. ‘이상재(李商在) 이승만(李承晩) 김좌진(金佐鎭) 이시영(李始榮) 신채호(申采浩)?’ “모두 독립 투사라고요? 그래요 맞았습니다.” 그러나 그건 한국 위인전(偉人傳)을 훑어본 초등학생들도 맞힐 수 있다. 사실 문제 자체를 독립 유공자 인물사전에서 고른 것이다. “그런데 이 인물들의 다른 공통점은 모르겠다고요? 정의가 패배하고 불의가 승리한 대한민국 역사를 다시 쓰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사람들이 이걸 모르다니?. 역사 공부 다시 하세요” 정답은 모두가 학교를 세우거나 학교에서 젊은이들을 가르치면서 조국과 민족의 재생(再生)을 기약했던 분들이라는 것이다. 이상재는 1894년 외국어 학교를 설립해 교장을 맡았고, 이승만은 1895년 배재학당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김좌진은 1907년 고향에 호명학교를 세웠고, 이시영은 1912년 북간도(北間島)에 신흥무관학교를 개교(開敎)했으며, 신채호는 1905년 충북 청원의 문동학원에서 가르치다 산동학원을 직접 설립했다.
그럼 다음 문제부터는 공통점을 1개만 대기로 하자. “김구(金九) 안중근(安重根) 이동휘(李東輝) 박은식(朴殷植) 안창호(安昌浩) 이승훈(李昇薰)?” “항일(抗日) 무장 투쟁을 한 분들이 눈에 띄는데, 헷갈린다고요.” 이번 문제의 정답 역시 학교를 세우거나 가르쳤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김구는 1900년 황해도 장연에 봉양(鳳陽)학교를, 1904년엔 광진학교를, 1906년엔 양산(陽山)학교를 각각 세워 가르쳤고, 안중근은 1906년 진남포에 삼흥(三興)학교를, 그리고 다시 돈의(敦義)의숙을 설립했으며, 박은식은 1908년 서북(西北) 협성학교 설립을 주도하고 훗날 교장을 맡았고, 이동휘는 1905년 강화도에 합일(合一)학교를 설립한 뒤 개성·평양·원산에도 잇따라 학교를 세웠으며, 안창호는 1899년 강서지방 최초의 근대 학교인 점진(漸進)학교, 1907년엔 대성학교를 만들었고, 이승훈은 1907년 평북 정주에 오산(五山)학교를 설립했다.
대통령과 총리·부총리의 시험 점수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청와대 386들은 분명 빵점을 맞았을 것이다. 이런 역사를 알았더라면 이 나라 교육을 이렇게 망가지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이 외교권을 일본에 빼앗긴 1905년의 을사(乙巳)조약에서 일본에 나라를 완전히 강탈당한 1910년의 한일합방 사이 전국 방방곡곡에 수백 수천 개의 학교가 세워졌다. 기우는 나라를 다시 세우려면,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으려면 세계의 움직임에 눈 밝고 귀 밝은 인재(人才)를 길러 내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다. 한스러운 것은 그보다 50년 전, 30년 전에 눈을 떴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는 사실이다. 일본과의 그 50년, 그 30년의 격차가 결국 망국(亡國)을 불러오고 말았다. 좋은 교육의 약효(藥)나 나쁜 교육의 해독(害毒)이 현실로 나타나는 걸 보려면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나쁜 교육이 나라를 망쳐버린 불행을 당하고서 그때야 아뿔싸 해봐야 만사휴의(萬事休矣)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때 그런 역사의 한(恨)을 씹어야 했던 100년 후의 지금 우리는 어떤가.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이 정권은 세계와 겨룰 수 있는 단 1개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도 만들지 못했다. 오히려 그 싹을 찾아 뭉개는 데만 열심이었다. 그사이 6만 명의 공무원을 늘리고, 허허벌판에 수십 채의 정부청사를 짓느라고 국고를 탕진한 정권의 5년 세월이 이랬다. 큰 키는 자르고 작은 키는 뽑아 늘리는 것이 평등이고, 그것이 교육의 목표라는 허깨비에 홀려 있었던 것이다.
큰 키는 자르고 작은 키는 뽑아 늘려 모두 병신을 만들고 마는 이 정권의 ‘가짜 평등 교육’의 말로(末路)는 온 국민이 ‘평등하게’ 중국 주인, 미국 회장, 일본 사장 아래서 눈물 밥을 먹는 것밖에 없다. 100년 전 교육으로 민족을 되살리고 나라를 되찾으려 했던 무수한 독립지사들이 “바보들아, 교육이 나라의 운명이다”고 외쳐대던 목소리조차 귀먹은 정권에 지쳐 잦아들고 말았던 5년 세월도 이제 서산(西山)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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