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관련자료/신앙칼럼

다시 꿈을 꾸며

하마사 2007. 1. 27. 13:55

 

다시 꿈을 꾸며


       조혜경


   몇 년 전 시누이가 암으로 세상을 떴다. 서울에 올라와 병원에서 투병을 했던 시누이는 본 교회에서의 마지막 예배를 자신의 발인 예배로 드렸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남달라 찬송 가사를 거의 다 외워 예배 시간에 찬송가를 보지 않고 찬송했다는데 병원에서 설교와 찬송을 들었던 카세트 리코더 겸용 소형 라디오가 유품으로 나에게 남겨졌다. 나는 그것을 주방에 갖다놓고 한 기독 방송에 주파수를 고정시켜놓은 다음 부엌일을 할 때마다 듣고 있다. 

  함께 글공부를 하는 동인 중에 A가 있다. 그녀가 내가 즐겨듣는 기독방송 중 한 프로그램의 구성 작가라는 사실을 알고 나는 놀랐다. 유명 탤런트가 수굿한 목소리로 읽어내는 짧은 신앙 단상이 잔잔한 감동을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십 년도 넘게 그 일을 감당하고 있다고 했다. 방송에서의 이름과 동인회에 글을 낼 때의 이름이 조금 달라 모르기도 했지만, 그녀와 기독 방송의 원고가 잘 연결되지 않아 더 놀랐다. 평소 나는 그 방송을 들으면서 나라면 저 곳에 성경의 그 이야기를 접목시켜 볼 텐데, 마지막엔 이 성경 구절로 끝맺음을 하면 더 감동적일 텐데, 하면서 조금씩 아쉬워했던 터였다. 한 마디로 내가 더 잘 쓸 수 있을 것이라고 혼자 잘난 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글을 동인 A가 쓰고 있다니! 평소 술도 잘 마시고 세상과 화통한 듯 자유롭게 행동하던 그녀가 다시 보였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마음이 착잡해졌다.

  한때 나는 ‘하나님 나라’라는 거대한 비행기의 날개가 되기를 꿈꾸었다. 비행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몸체가 되어 “하나님의 귀한 일꾼”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멋진 비행에 동참하고 싶었다. 신학을 공부할 때까지만 해도 그 꿈은 가까이 있는 듯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 셋을 낳고 기르면서 나는 나의 꿈이 탈색되어 가는지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그날, 나는 새삼 나를 돌아보았다. 마음 저 밑바닥에 처박혀 뿌연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정체를 드러내지도 않던 나의 꿈도 기억이 났다. 그렇게 방치했으니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 또한 있을 리 없었다. 나는 그렇다 해도, 하나님도 나를 잊으신 것일까. 당신이 주셨으면서 나에게 조금 더 많은 달란트를 주셨다는 것도 깜빡하신 것일까. 찬송 가사를 다 외었지만 예배 시간에나 부르며 혼자 자랑스러워하다가 세상을 뜬 시누이처럼, 나도 내게 주어진 달란트를 제대로 유통시켜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녹슨 것을 가지고 하늘나라까지 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점점 더 참담해져 가던 걸음을 멈추고 공원 벤치에 주저앉았다. 

  많이 공부했다고, 간절히 소망한다고 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은 아니다. 모세가 애굽의 모든 학문을 다 마치고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불붙어 히브리 동족을 위해 일하고자 간절히 소원했을 때 정작 그가 한 일은 애굽 병사 한 명을 살해하고 미디안 광야로 도주한 일이었다. 유대 학문의 권위자였던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하고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 특심이어서 예수를 전파하는 무리를 붙잡으러 돌아다녔던 사울은 결국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자리에 증인이 되었다. 이들이 하나님께 쓰임받기 까지는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바울은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여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런가 하면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다가 졸지에 주님의 제자가 되어 예루살렘 교회의 대지도자가 된 베드로도 있고,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치다가 영문도 모르고 끌려와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도 있다. 그러니 학문이 짧아도 준비 기간이 넉넉지 않아도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쓰임 받는 “택한 그릇”도 있는 것이다. 구원도 하나님의 절대주권 하에 있듯 사람을 택하여 쓰시는 것 또한 우리가 시시비비를 따질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인 것이다. 누가 쓰임 받는가? 성경을 통하여 힌트를 얻을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시며(삼상16:7) 그 마음이 하나님께 합한 자(삼상13:14, 행13:22)를 구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날 이후 나는 용기를 내어 다시 꿈꾼다. 내 모습 이대로 받으시기를. 비행기의 몸체가 아니어도, 몸체를 조이는 작은 볼트나 너트여도 좋으니 하나님 나라에 일꾼으로 동참되기를. 나는 간절히 소망한다. 행여 주님이 부르시는 세미한 음성을 듣지 못할까 저어하여 늘 깨어있기를. 주님이 부르실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 주저하지 않고 응답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나도 시편 기자처럼 한 날을 살아도 악인의 장막에 거하는 것보다 주의 궁정에서 문지기로 살고 싶은 것이다(시84:10).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뵈었으니 그 꿈 이루어주옵소서!   


조혜경

소설가

1959년 전북 전주 출생

전북대학교 영문과,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중앙대학교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졸업

2004년 한국소설 신인상 수상 

2004년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대상 수상

2006년 기독신춘문예 당선                

2006년 문예진흥기금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