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좋은 친구와의 만남

하마사 2006. 11. 7. 06:54
본문: 잠18: 24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옛날 그리스에 절친한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중 한 친구가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잡혀가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사형수의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이 전해졌습니다. 곧 사형을 당하게 된 청년은 어머니의 얼굴을 한 번만이라도 보고 죽게 해달라고 간청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사형수의 친구가 나서더니 자기가 대신 감옥에 들어가 있을 터이니 친구를 집으로 갔다 오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왕은 사형수의 친구에게 "만약 네 친구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느냐"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기꺼이 자기가 대신 죽겠노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왕은 그 친구를 대신 감옥에 가두고 사형수에게 나흘간의 말미를 주고 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사흘이면 갔다 올 수 있는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나흘째 되는 날이 저물어 가도 그 사형수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감옥에 갇힌 친구는 자기의 친구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사형 집행시간이 되자 왕은 "자 보아라, 네 친구는 너를 배신하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너는 네 친구를 믿고 있느냐"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나는 아직도 내 친구를 굳게 믿고 있으며, 그는 아마 피치 못할 사정으로 못오게 되었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드디어 사형을 집행하기 위해 교수대에 그를 매달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사형수가 숨을 헐떡이며 뛰어들어오면서 "이제 내가 돌아왔으니 내 친구를 풀어주십시오"하고 외치면서 쓰러졌습니다. 왕이 늦은 이유를 물으니 돌아올 때 큰비로 강물이 불어나서 도저히 강을 건널 수 없어 늦었다고 그 까닭을 설명하였습니다. 얘기를 듣고 있던 왕은 두 사람의 참된 우정의 모습에 감탄하여 두 사람 모두 풀어주었다고 합니다.
사람은 일평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만남을 경험하게 되는데 어떤 만남은 일생동안 큰 유익을 주기도 하고 어떤 만남은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이 되기도 합니다. 요즘 청소년들의 탈선의 주요원인은 근본적으로는 자신의 잘못된 가치관에 있지만 그것에 못지 않게 잘못된 친구와의 만남에 있다고 합니다. 만남이 너무나도 중요하기에 우리들은 좋은 만남을 가지도록 늘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며 내 자신이 남에게 좋은 만남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요15:13-14, 잠17:17, 잠27:17)
독일이 낳은 유명한 화가 가운데 알베르트 뒤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그림중에 "기도하는 손"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양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이 그림에는 아주 귀중한 친구의 사랑이 깔려 있습니다. 뒤러와 그의 친구는 한마을에서 같이 자라며 화가의 꿈을 키웠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 다 너무 가난했기에 더 이상 그림 공부를 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뒤러의 친구가 제안을 했습니다. "뒤러야! 내가 먼저 돈을 벌어서 너의 그림공부 학비를 댈께. 나는 네가 그림공부를 마치고 나면 너의 후원으로 그림공부를 하면 되니까" 그래서, 뒤러가 먼저 도시에 가서 그림공부를 하게 되었고, 뒤러의 친구는 식당에서 손이 부르트도록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부쳤습니다. 드디어 뒤러는 그림공부를 마치고 훌륭한 화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친구가 일하는 식당으로 가서 문을 열었습니다. 문을 여는 순간 뒤러는 엄청난 충격과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의 친구가 식당 테이블에 앉아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그 기도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친구 뒤러의 학비를 위해 일하다가 그만 손이 굳어져 버려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뒤러가 훌륭한 화가가 되었기에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바로 이 놀라운 우정을 소유한 사람의 기도하고 있는 손을 그린 작품이 "기도하는 손"이라는 그림입니다.
성경에도 두 사람의 좋은 만남과 우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바로 다윗과 요나단의 만남입니다. 삼상 18:1에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마음이 통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두 사람은 어떤 이유 때문에 서로의 마음이 통해서 좋은 친구의 만남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다윗과 요나단이 처음 만난 것은 전쟁터에서였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에게 엄청난 조롱을 당하고 있었는데 이에 맞서서 싸워 승리한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갈때에 어떠한 고백을 하면서 달려나갔습니까? 삼상 17:45을 보십시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용감하게 달려 나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요나단도 대단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삼상 14:6에 보면 그때에도 블레셋과 전쟁을 하고 있었는데 요나단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이 할레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다윗이나 요나단이나 놀라운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서로의 고귀한 믿음에 마음이 끌려 일평생 친구가 된 것입니다. 삼상 18:3에 "서로 사랑하기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일평생을 지속하며,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한 것입니다. 당신에게 목숨을 바꿀만한 친구가 있습니까? 환경의 변화에도 함께 할 반석같은 친구가 있습니까? 기쁨과 슬픔, 환희와 눈물의 배에 함께 승선할 영원한 친구가 있습니까? 당신이 높은 위치, 나누어주는 자리, 부러워할 만한 위치에 있을 때는 주위에 친구가 많아지지만 고통의 터널에서 허덕일 때는 떠나가는 친구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여기! 영원히 변치 않을, 당신의 친구가 있습니다. 그 이름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보이지 않는 눈길로 당신의 심장 깊은 곳에서 당신의 숨결과 함께 하십니다. 당신이 심장의 고동소리를 느끼실 수 있다면 반석 같은 친구, 예수 그리스도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그 분을 친구로 초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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