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처럼 밟히며 사는 無名들에 재기의 발판 마련해준 프로처럼
실패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모두'를 위한 국가는 요원할까
실패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모두'를 위한 국가는 요원할까
네덜란드 사람 마르틴 허켄스는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을 세상에서 가장 잘 부르는 남자다. 파바로티를 닮은 미성(美聲)만큼이나 60년 그의 굴곡진 삶이 극적이어서다.
일곱 살에 소년합창단에 발탁돼 열세 살에 음악학교에 입학한 신동이었다. 그러나 가난이 꿈을 좌절시켰다. 장학금이 끊기자 그는 제빵사가 됐다. 잊었던 노래를 다시 부르기 시작한 건 30년 일한 회사에서 해고당했을 때다. 생계를 위해 거리로 나섰다. 눈비 맞으며 노래하는 반백의 가장(家長)을 행운의 여신은 지나치지 않았다. 딸에게 등 떠밀려 나간 TV 오디션 프로 '갓 탤런트'에서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불러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다. 돋보기 안경을 쓴 초로(初老)의 사내가 감격해 울 때 네덜란드 국민도 함께 울었다.
시청률 18%를 기록하며 종영한 '미스트롯'은 한국판 '갓 탤런트'였다. 허켄스처럼 가난해 꿈을 포기했거나 밑바닥 삶을 전전하던 무명 가수들이 꿈을 되찾고 이름을 다시 얻었다. 나이 마흔의 숙행은 한겨울이면 스키 바지에 헬멧을 쓴 채 퀵오토바이에 매달려 행사장을 뛰었다. 짠 내 나는 삶이었지만 남진 노래 '나야 나'를 부르며 설움을 달랬다. '먼지처럼 밟히며 하루를 살지만… 괜찮아, 한 번은 내 세상도 오겠지.' 만년 무명의 이름을 불러준 게 '미스트롯'이다. 최종 12인에 올라 생애 첫 전국 콘서트를 하게 된 숙행은 "나야 나, 내가 뭐 어때서"를 외치며 세상을 향해 처음, 활짝 웃었다.
모래알 같은 군중 속에서 숨은 진주를 찾아내는 경연 프로가 국내외를 막론하고 뜨거운 사랑을 받는 건, 패자(敗者)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반전의 드라마여서일 것이다. 뜻밖의 불운, 저항 불능의 환경 앞에 무릎 꿇어야 했던 '인생 루저'들이 이 악문 도전으로 재기의 발판을 얻을 때 사람들은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응원했다.
대중 매체를 연구하는 한 사회학자는, 경연 프로의 식을 줄 모르는 인기는 그가 속한 사회, 국가 공동체를 향한 대중의 기대심리와도 맞닿아 있다고 했다. 삶이 돌연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내 손을 잡아줄 안전망, 아버지처럼 든든한 국가가 내게도 있는가. 북유럽 나라들은 그래서 부러움의 대상이다. 국가는 단 한 명의 낙오자도 만들지 않기 위해 국민의 일상 곳곳에 재활 시스템을 구축한다. 교육과 복지에 특히 공을 들이는 건, 아이는 부모를 선택해 태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일탈자, 중도 포기자들도 언제든 학교로 돌아올 수 있고, 온전한 시민으로 자립할 때까지 국가는 인내를 갖고 지원한다. 패자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이들의 전략은 1%대로 내리닫던 저출산 문제도 거뜬히 극복하게 했다.
문재인 정부에 한 가지 기대를 걸었다면, 바로 그 '패자 부활'이었다. 균등한 기회와 분배, 사다리의 가치를 중시하는 그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라 믿었다. 그러나 집권 3년 차의 모습은 참담하다. 교육 현장은 여전히 불평등하고,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서민 경제는 날로 어렵고, 일자리는 참사 수준이다. "기대만 키웠지 달라진 게 뭐냐"고 묻는 청년들 절규에 "이만하면 성공한 경제"라고 자찬하는 정부에 나와 내 가족의 운명을 맡길 국민은 몇이나 될까.
세계를 누비는 성악가가 됐지만 마르틴 허켄스는 틈날 때마다 거리로 나선다. 그가 부르는 '유 레이즈 미 업'에서 가장 뭉클한 대목이 있다. '당신의 어깨에 기댈 때 나는 더욱 강해지고, 내가 가진 재능보다 더 잘할 수 있도록 그대 날 일으켜 세우네'.
우린 그런 나라에서 살고 싶다.
일곱 살에 소년합창단에 발탁돼 열세 살에 음악학교에 입학한 신동이었다. 그러나 가난이 꿈을 좌절시켰다. 장학금이 끊기자 그는 제빵사가 됐다. 잊었던 노래를 다시 부르기 시작한 건 30년 일한 회사에서 해고당했을 때다. 생계를 위해 거리로 나섰다. 눈비 맞으며 노래하는 반백의 가장(家長)을 행운의 여신은 지나치지 않았다. 딸에게 등 떠밀려 나간 TV 오디션 프로 '갓 탤런트'에서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불러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다. 돋보기 안경을 쓴 초로(初老)의 사내가 감격해 울 때 네덜란드 국민도 함께 울었다.
시청률 18%를 기록하며 종영한 '미스트롯'은 한국판 '갓 탤런트'였다. 허켄스처럼 가난해 꿈을 포기했거나 밑바닥 삶을 전전하던 무명 가수들이 꿈을 되찾고 이름을 다시 얻었다. 나이 마흔의 숙행은 한겨울이면 스키 바지에 헬멧을 쓴 채 퀵오토바이에 매달려 행사장을 뛰었다. 짠 내 나는 삶이었지만 남진 노래 '나야 나'를 부르며 설움을 달랬다. '먼지처럼 밟히며 하루를 살지만… 괜찮아, 한 번은 내 세상도 오겠지.' 만년 무명의 이름을 불러준 게 '미스트롯'이다. 최종 12인에 올라 생애 첫 전국 콘서트를 하게 된 숙행은 "나야 나, 내가 뭐 어때서"를 외치며 세상을 향해 처음, 활짝 웃었다.
모래알 같은 군중 속에서 숨은 진주를 찾아내는 경연 프로가 국내외를 막론하고 뜨거운 사랑을 받는 건, 패자(敗者)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반전의 드라마여서일 것이다. 뜻밖의 불운, 저항 불능의 환경 앞에 무릎 꿇어야 했던 '인생 루저'들이 이 악문 도전으로 재기의 발판을 얻을 때 사람들은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응원했다.
대중 매체를 연구하는 한 사회학자는, 경연 프로의 식을 줄 모르는 인기는 그가 속한 사회, 국가 공동체를 향한 대중의 기대심리와도 맞닿아 있다고 했다. 삶이 돌연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내 손을 잡아줄 안전망, 아버지처럼 든든한 국가가 내게도 있는가. 북유럽 나라들은 그래서 부러움의 대상이다. 국가는 단 한 명의 낙오자도 만들지 않기 위해 국민의 일상 곳곳에 재활 시스템을 구축한다. 교육과 복지에 특히 공을 들이는 건, 아이는 부모를 선택해 태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일탈자, 중도 포기자들도 언제든 학교로 돌아올 수 있고, 온전한 시민으로 자립할 때까지 국가는 인내를 갖고 지원한다. 패자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이들의 전략은 1%대로 내리닫던 저출산 문제도 거뜬히 극복하게 했다.
문재인 정부에 한 가지 기대를 걸었다면, 바로 그 '패자 부활'이었다. 균등한 기회와 분배, 사다리의 가치를 중시하는 그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라 믿었다. 그러나 집권 3년 차의 모습은 참담하다. 교육 현장은 여전히 불평등하고,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서민 경제는 날로 어렵고, 일자리는 참사 수준이다. "기대만 키웠지 달라진 게 뭐냐"고 묻는 청년들 절규에 "이만하면 성공한 경제"라고 자찬하는 정부에 나와 내 가족의 운명을 맡길 국민은 몇이나 될까.
세계를 누비는 성악가가 됐지만 마르틴 허켄스는 틈날 때마다 거리로 나선다. 그가 부르는 '유 레이즈 미 업'에서 가장 뭉클한 대목이 있다. '당신의 어깨에 기댈 때 나는 더욱 강해지고, 내가 가진 재능보다 더 잘할 수 있도록 그대 날 일으켜 세우네'.
우린 그런 나라에서 살고 싶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17/2019051703220.html
-조선일보, 2019/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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