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떠나는 힐만 "우리가 만든 가을의 기적, 평생 잊지 못할 것"

하마사 2018. 11. 16. 10:45

"시련이 와도 더 강해지는 시간으로 만들고, 자주 웃으세요
신임 염경엽 감독은 디테일에 강해… SK의 역사 이어갈 것"

"아마도 50점요(웃음)."

15일 만난 트레이 힐만(55) SK 와이번스 감독은 지난 2년을 돌아본 후 스스로 이런 점수를 줬다. 올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사령탑치곤 박한 점수였다. 이유를 되물었다. "감독직을 하면서 현명한 판단을, 또 어떨 땐 나쁜 선택을 했죠. 전 평범한 남자입니다. 많은 사람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런 성과는 없었을 거예요." 그 겸손함에 고개가 절로 끄덕였다.

힐만 감독은 2016년 말 취임 후, 줄곧 야구 유니폼을 입었지만 이날은 달랐다. 검은 정장을 말쑥이 차려입고 항상 모자에 눌렸던 머리카락은 깔끔히 빗어 넘겼다. SK 와이번스 감독 이·취임식 행사(인천 문학경기장)에 참석한 힐만 감독은 '아름다운 작별'을 위해 몸과 마음을 정돈한 모습이었다. 그를 보내는 자리엔 최창원 구단주를 비롯해 구단 직원과 코칭 스태프, 전체 선수단이 모였다. 문학경기장 외벽엔 'We will miss you!(당신이 그리울 거예요)'를 쓴 대형 플래카드가 걸렸다.

모자 벗고 정장 차려입은 힐만, 최항·정의윤과 “의리, 의리!” - SK 와이번스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트레이 힐만(가운데) 감독이 15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감독 이·취임식 행사에서 최항(왼쪽)과 정의윤(오른쪽)을 무대로 불러 ‘의리, 의리!’를 외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모자 벗고 정장 차려입은 힐만, 최항·정의윤과 “의리, 의리!” - SK 와이번스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트레이 힐만(가운데) 감독이 15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감독 이·취임식 행사에서 최항(왼쪽)과 정의윤(오른쪽)을 무대로 불러 ‘의리, 의리!’를 외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재근 기자

힐만 감독은 "처음 인천에 왔던 날이 마치 어제처럼 생생하다"고 했다. 그는 지난 두 시즌간 경기마다 수없는 메모를 쓰며 한국, SK 야구를 기억했다. 그중 최고는 지난 3주 동안 팀이 보여준 가을 야구의 '기적'이다. "이렇게 멋진 스토리를 우리가 만들었다는 게 놀라워요. 지난 3주의 추억은 평생 잊지 못할 시간입니다."

떠나는 힐만 감독이 가장 많이 쓴 단어는 '감사'였다. 그는 이임식에서 "감사한 사람이 너무도 많지만 한 분도 빼먹지 않고 마음을 전하겠다"며 양복 상의에서 미리 준비한 종이를 꺼내 읽었다. 구단주부터 구단 실무를 하는 매니저, 아내 마리씨까지 감사한 이들의 이름을 힘줘 읽었다. 힐만 감독은 "힘들고 미안했던 일들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고마웠던 기억을 간직하고 떠나겠다"고 말했다.

팬들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힐만 감독은 이날 행사 중 최항과 정의윤을 무대로 불러 '의리, 의리!'를 외쳤다. 지난해 '의리맨' 배우 김보성 복장을 하고 나타나는 팬서비스를 선보였는데 이를 재현한 것. 소아암 투병 중인 SK 팬 김진욱(11)군이 "SK 와이번스 선수와 저를 포함한 SK 팬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며 꽃다발을 건네자, 힐만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김군을 끌어안았다. 이날 행사 전후로 자신에게 몰려든 팬의 사인·셀카 요청을 웃으며 모두 받아줬다.

자신의 뒤를 이어 SK 사령탑에 오른 염경엽 신임 감독(전 단장)에 대해선 "영리하고 디테일에 강한 지도자다. 역사를 이어갈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힐만 감독은 고령의 부모를 모시기 위해 고향인 미국 텍사스로 떠난다. 한·일 프로야구 정상을 모두 밟은 그에게 '월드시리즈 우승'의 꿈은 없을까. "아마도 메이저리그 감독 보단 코치를 맡을 가능성이 더 클 것 같아요. 매 시즌 제 스프링캠프 목표는 우승이니까 또 트로피를 들지도 모르죠. 삶의 다음 단계는 하늘의 뜻에 달렸습니다." 언젠가 한국에 돌아올 수도 있다는 힐만 감독은 이렇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시련이 찾아오면 두려워 말고 스스로 더 강해지는 시간으로 만드세요. 일분일초를 소중히 여기세요. 그리고 자주 웃으세요."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16/2018111600203.html


-조선일보, 2018/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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