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조동 천막교회는 출석교인 800명에 교회를 건축할 땅까지 매입할 정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미국 하나님의성회 동양선교부 선교사 존 허스톤 목사는 자신과 함께 사역할 것을 제안, 이를 교회가 받아들이면서 '서대문 시대'가 개막됐다.
구역 조직 탄생
서대문의 새 교회당은 1962년 2월 18일 헌당예배를 드렸다. 새 교회 건물은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1가에 완공됐고 순복음중앙부흥회관으로 명명됐다. 대조동에서 서대문으로 교회를 옮긴 지 4개월 만이었다. 출석 교인은 1200명으로 늘어났다.
그해 4월 당시 조용기 전도사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 다음 달엔 순복음중앙교회로 교회 명칭을 변경했다. 광야의 천막교회에서 출발해 탄탄한 반석 위에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성도들은 매주 20∼30명씩 증가했고 1964년엔 3000명을 바라보게 됐다.
성도수 증가는 담임목사 1인 목회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조 목사의 건강도 극도로 쇠약해지면서 목회적 돌파구를 고민하게 된다. 그때 성경을 묵상한 내용이 출애굽기(18:18)와 사도행전(2:46∼47)이었다. 초대교회 시절 성도들이 가정에서 예배를 드린 것을 목회에 적용한 것이다.
교회는 ‘가정 안에 있는 교회’를 시작했다. 여 집사를 중심으로 서울을 20개 교구로 나누는 구역조직을 탄생시켰다. 교회는 각 구역장에게 성도들을 양육하고 함께 기도하는 일을 가르쳤고 이웃에게 복음을 전할 것을 당부했다. 구역예배는 묵도와 사도신경, 찬양, 합심기도 후 말씀을 나누는 시간으로 구성됐다. 또 구역원이 15명 정도가 되면 새로운 구역으로 분리시켰다. 그 결과 67년엔 수백 개의 구역으로 확대됐고 68년엔 구역조직에 힘입어 성도 수 8000명을 바라보게 됐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구역조직의 활동으로 79년 11월 10만 성도를 돌파하게 된다. 단일교회로서는 사상 최고 기록으로 평가된다. 2년 뒤인 81년엔 20만 성도로 배가 부흥했다. 이렇게 교회의 경이적인 성장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구역’이라는 말은 ‘셀(Cell)’로 번역돼 통용된다. 구역조직은 여의도순복음교회가 단기간 세계 최대 교회로 성장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됐다.
세계선교의 씨앗을 심다
한편 교회는 60년대 중반부터 세계선교에 참여한다. 그 계기는 1964년 미국 하나님의성회 본부가 교단 창립 50주년 기념식에 조 목사를 초청하면서부터다. 조 목사는 유창한 영어로 한국교회 상황과 비전을 제시했고 희망이 넘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조 목사는 기념식 이후 2개월간 미국 전역을 순회하면서 한국과 한국교회를 알렸다. 한국전쟁으로 잿더미만 남은 나라로만 알았던 미국인들은 그의 설교에 감명을 받았다.
교회는 1969년 하나님의성회 동북아시아대회를 개최했다. 대회엔 한국을 비롯해 일본 대만 홍콩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 등 13개국 대표 130여명과 200명의 옵서버가 참석했다. 대회는 매일 3차례 성회를 열면서 참가국들의 나라와 교회들을 소개했다. 이는 한국교회 안에 세계선교의의 불씨를 제공하는 단초가 됐다.
교회는 1968년 성도 8000명을 넘어서자 교회 이전을 계획했다. 그러면서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의 여의도 개발 프로젝트에 포함된 허허벌판 모래섬 여의도에 부지를확보했다. 마침내 1969년 4월, 새 예배당 착공을 시작해 1973년 8월 15일 1만 명이 한꺼번에 앉아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동양 최대 돔(dome)식 교회당을 완공했다.
새로운 예배당에서는 세계오순절대회가 곧바로 개최됐다. 아시아 최초로 열린 이 대회에는 39개국에서 2000여명의 외국인 목회자들이 참석했다. 김포공항 개항 이래 가장 많은 외국인 입국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5만여명이 참석해 화제가 됐다.
세계선교를 위한 노력은 1976년 11월 CGI(Church Growth International, 국제교회성장연구원)를 설립, 세계 교회 목회자들과 교류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확장됐다. 교회의 선교 행보도 갈수록 불타올라 1976년 4월 베를린에 순복음세계선교회 유럽지구연합회가 조직됐고 78년 4월 당시 서독 칼스루헤에서 조 목사를 강사로 한 개신교 최대 집회가 열렸다. 집회에서는 강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고 유럽에서 오순절 신앙과 순복음교회를 향한 관심이 높아졌다. 일본에서도 ‘일천만 구령운동’이 전개돼 큰 호응을 얻었다. 1979년 중남미 코스타리카에서는 최대 집회와 교역자 세미나가 개최되며 오순절 성령의 불씨를 심었다.
신상목 기자
그래픽=이영은 기자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45734&code=23111113&sid1=chr
-국민일보, 2018/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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