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한 팀이 돼 단어 맞추기를 하는 TV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시골의 어느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출연했습니다. 출제 단어는 ‘천생연분’. 할아버지가 열심히 설명을 합니다. 그래도 할머니가 알아차리지 못하자 답답한 할아버지는 “당신과 나 사이”하고 말합니다. 할머니는 끄떡이며 대답합니다. “웬수.” 황당한 할아버지는 소리칩니다. “네 글자로….” 그러자 할머니 왈, “평생 웬수!”
‘원수와 웬수의 차이점’이라는 유머가 있습니다. 원수는 같이 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고, 웬수는 같이 살아야 되는 사람이랍니다. 원수는 어느 기간 동안 버티면 되니까 견딜 만합니다. 하지만 웬수는 같이 살아야 하는 사람인지라 더 힘들다는 겁니다.
사람은 원수와 웬수로 인해 겸손해지고 성숙하게 됩니다. 가시 같은 원수 때문에 기도하게 됩니다. 가시가 많을수록 많이 기도하고 가시가 깊을수록 깊게 기도합니다. 웬수 때문에 겸손해집니다. 흔히들 자식을 웬수라고 합니다. 자식은 피할 수도 바꿀 수도 없는 막다른 골목입니다. 이 골목에서 우리는 진짜를 배우게 됩니다. 자식을 보며 자신을 보고 자식을 키우며 자아를 죽이며 성숙해 집니다. 이것이 원수와 웬수까지도 사용하셔서 우리를 선하게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글=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삽화=이영은 기자
-국민일보 겨자씨, 2017/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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