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혈당약 먹어봤더니 정말 효과가 좋더라고요
직원들이 영업할 때 "사장님이 먹는다" 말해
쓰레기통 뒤져 처방전 찾고… 병원 경비원에게 "형님"
뼛속까지 영업사원
거래처 뺏기면 잠도 안와 그럴 때일수록 더 바쁘게
아침 4시반에 일어나 지금도 영업전략 구상
가족 같은 제약회사
회사서 셔츠 다려주고 구두까지 닦아줘
젊은 직원 얘기 들으려 매일 찜질방 가기도
노사 분규 '제로'
매년 연봉협상 대신 5%씩 올려주니 만족
같이 위기 겪은 직원들 자사주 83억원어치 줘
창업자도 오너도 아닌데 17년째 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나라 토종 제약회사 삼진제약 이성우(72) 사장이다. 지난해 6번째 사장 연임을 시작한 그는 2001년부터 줄곧 이 회사 '월급 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또 있다. 말단 영업사원으로 시작해 영업과장, 영업부장, 영업본부장을 거친 정통 영업맨이다. 영업사원 출신임을 증명하듯 그는 처음 사장이 됐을 당시 400억원대였던 매출을 지난해 2394억원으로 끌어올렸다.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사옥에서 이 '약장수'의 비기(秘技)를 물었다.
―영업사원으로는 몇 년이나 일한 겁니까.
"1971년 제약회사(일동제약)에 처음 들어갔으니까 올해로 46년 됐네요."
―지금은 영업사원이 아니라 사장이지 않습니까?
"사장도 영업해야죠. 고객이 줄어들면 영업사원은 끝이에요. 영업사원이 회사의 절반이나 되는데 사장이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그 회사가 잘되겠어요?(웃음)"
빽빽한 반백(半白)에 엄한 표정이었던 그가 웃음을 지으니 다른 사람 같았다. 웃을 때마다 눈가에 굵은 주름이 생겼다.
영업은 내 인생, 나의 모든 것
해방둥이 이성우 사장은 고등학교 때 고향인 경기 가평군 설악면에서 서울로 유학 왔다. 더 나은 곳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고향에 고등학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기도 안 들어오던 고향에서 벗어났지만 가난은 그를 줄곧 따라다녔다. 고교 시절 내내 어머니가 매달 보내주시는 쌀 한 바가지와 된장, 간장, 장아찌로 버텼다고 했다. 가끔 친구들이 꽁치 한 마리를 사 들고 오면 몇 끼에 나눠 먹었다.
―가난하게 산 만큼 돈 욕심이 많았습니까.
"그땐 우리 집뿐 아니라 다들 없이 살았어요. 대학 입학금 9000원이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운 좋게 어느 집 입주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됐어요. 고등학교 친구 어머니가 소개해주셨죠. 그 덕분에 온전히 졸업할 수 있었어요. 그때도 내가 친구 어머니들께 영업을 꽤 잘했나 봐요(웃음)."
중앙대 약대를 졸업한 이성우 사장의 첫 직장은 삼진제약이 아닌 일동제약이었다. 당시 약대를 졸업한 약사는 제약회사에서 2~3년간 영업사원으로 일하다가 독립해 약국을 여는 게 일반적이었다. 제약회사 월급은 30만~50만원이었지만 약사 한 달 수입은 200만원을 웃돌던 시절이었다. 일동제약에서 만 3년을 근무한 그는 개업(開業)은커녕 생긴 지 5년이 채 안 된, 요즘 말로 스타트업 회사인 삼진제약으로 자리를 옮겼다.
―약국 열기를 마다한 이유가 있나요?
"약국을 했다면 돈을 많이 벌었겠죠. 그때는 5층짜리 건물 1층에 약국 열면 몇 년 안 돼서 그 건물을 살 수 있을 정도로 약사가 돈을 벌던 시대니까요. 그런데 그 두어 평짜리 약국 안에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하잖아요. 앉아 있는 게 좋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인생이 참 갑갑하겠더라고요. 약사가 되면 꼭 그렇게 재미없게 살아야 하나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제약회사에 남았겠지만 대기업에서 신생기업으로 이직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에겐 각자 맡은 병원이나 약국이 있는데 영업하러 갔다가 삼진제약 최승주 회장님을 만났어요. 그때 삼진제약 직원이 10명도 안 됐어요. 창업자인 최 회장님도 영업하러 다닐 때였죠. 그때는 나도 젊었으니까 열혈사원으로 안 다닌 데가 없었는데 갈 때마다 꼭 그분을 마주쳤다니까요. 그러다가 어느 날 삼진제약에서 같이 일하자고 하더군요. 그때 삼진제약 전 직원이 다 약사였어요. 이런 회사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영업하다가 회사를 제대로 만난 거였어요."
―부인도 영업하다가 만나셨다던데요.
"집사람이 적십자병원 약국 약사였어요. 병원에서 무슨 약 처방이 많이 나가는지 몇 마디 물은 적이 있는데, 자꾸 말을 걸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내가 (아내에게) 빠져서 쫓아다니다 결혼했어요. 거기 영업 안 나갔으면 결혼도 못 했을 건데 영업사원이어서 다행이었죠(웃음)."
―다들 힘들다는 영업사원이 좋습니까.
"영업사원처럼 좋은 직업이 세상에 어딨습니까. 사람이 좁은 곳에 앉아서만 일하면 생각이 좁아지고 아이디어도 잘 안 떠올라요. 영업사원은 밖에서 친구도 사귀고 매일 다른 사람 만나서 이야기도 듣잖아요. 세상을 제일 많이 배울 수 있는 게 바로 영업사원이에요. 직원들한테도 항상 말하는 건데, 난 지금도 영업사원이 제일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업사원,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
―사회 초년생 때는 쓰레기통도 뒤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병원 화장실 쓰레기통에 처방전이고 뭐고 서류들이 버려져 있는 걸 보고 본격적으로 쓰레기통을 뒤지기 시작했죠. 청소하시는 분들한테 커피나 아이스크림으로 로비를 해서 서류를 어디다 버리는지 정보를 얻었어요. 나중엔 노하우가 생겨서 종합병원같이 큰 거래처에 가면 경비하시는 분들하고 먼저 친해졌어요. 그분들이 약품 드나드는 트럭 관리까지 하시거든요."
―그만큼 실적 압박을 받았다는 거겠죠.
"나도 사람인데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죠. 제약회사 영업은 특히 또 약을 몇 개 팔았는지 하나하나 따지는 싸움이라 압박이 심해요. 상대 회사에 거래처를 뺏기면 그날은 얼굴이 벌게져서 밤에 잠이 안 왔어요. 회사에 큰소리쳐 놓았는데 창피하기도 하고 가슴이 벌렁벌렁 뛰고요. 그런데 거기서 끝나버리면 슬럼프가 와버려요. 영업사원은 슬럼프에 빠질 위험이 커요. 자존심 상하는 일도 자주 생기고 계약이 한 번 틀어지면 내가 뭘 잘못했나 계속 고민하게 되고요."
―그걸 이겨내는 방법이 있나요?
"몸을 가만히 있으면 안 돼요. 축 처져 있으면 될 일도 안 되더라고요. 슬럼프가 왔다고 늘어져 있으면 더 실적이 안 나오고 그러면 더 스트레스받고 더 깊은 슬럼프에 빠지는 악순환이 생겨요. 영업사원들만 느끼는 서글픔 같은 거죠. 당장 누워 있고 싶은 그 한고비만 넘기면 사람이 금방 살아나요. 슬럼프에 빠졌을 때 오히려 더 규칙적으로 일어나고 자고, 잘 먹고 해야 돼요. 지금도 나는 아침 4시 30분에 일어나서 집 앞 공원 산책을 해요. 그러면 제품 홍보 설명서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이번엔 어떤 신약을 개발할지 아이디어가 번뜩인다니까요."
영업은 자신감이다
회사 이름은 덜 알려져 있지만 삼진제약은 '게보린'을 만드는 회사다. '맞다, 게보린'이란 광고 문구가 매우 유명하지만 게보린은 한때 각종 악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게보린 8알을 먹고 콜라를 마시면 구토를 유도할 수 있다, 마약 성분이 들어 있어 백혈병에 걸릴 수 있다는 둥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악소문이 한창 확산된 때는 2008년 시작된 광우병 파동 때였다.
―게보린과 광우병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광우병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였어요. 신문에 광고를 싣고 있었는데 그걸 하지 말라고 압박이 들어왔습니다. 내 생각에도 광우병과 게보린이 무슨 상관인가 싶어서 광고를 빼지 않았어요. 나중에 보니까 우리 회사와 어느 관광회사 두 군데만 계속 광고를 하고 있었대요. 보수 정권과 깊은 관련이 있다, 어느 신문사 사장과 친·인척 관계다, 이런 얘기가 나오고 인터넷에 게보린에 안 좋은 성분이 들어 있다는 헛소문이 떠돌아다녔지요." 그러나 식약처가 그런 소문을 재검증한 결과 게보린 성분에는 부작용이나 안정성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영업사원으로는 몇 년이나 일한 겁니까.
"1971년 제약회사(일동제약)에 처음 들어갔으니까 올해로 46년 됐네요."
―지금은 영업사원이 아니라 사장이지 않습니까?
"사장도 영업해야죠. 고객이 줄어들면 영업사원은 끝이에요. 영업사원이 회사의 절반이나 되는데 사장이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그 회사가 잘되겠어요?(웃음)"
빽빽한 반백(半白)에 엄한 표정이었던 그가 웃음을 지으니 다른 사람 같았다. 웃을 때마다 눈가에 굵은 주름이 생겼다.
영업은 내 인생, 나의 모든 것
해방둥이 이성우 사장은 고등학교 때 고향인 경기 가평군 설악면에서 서울로 유학 왔다. 더 나은 곳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고향에 고등학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기도 안 들어오던 고향에서 벗어났지만 가난은 그를 줄곧 따라다녔다. 고교 시절 내내 어머니가 매달 보내주시는 쌀 한 바가지와 된장, 간장, 장아찌로 버텼다고 했다. 가끔 친구들이 꽁치 한 마리를 사 들고 오면 몇 끼에 나눠 먹었다.
―가난하게 산 만큼 돈 욕심이 많았습니까.
"그땐 우리 집뿐 아니라 다들 없이 살았어요. 대학 입학금 9000원이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운 좋게 어느 집 입주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됐어요. 고등학교 친구 어머니가 소개해주셨죠. 그 덕분에 온전히 졸업할 수 있었어요. 그때도 내가 친구 어머니들께 영업을 꽤 잘했나 봐요(웃음)."
중앙대 약대를 졸업한 이성우 사장의 첫 직장은 삼진제약이 아닌 일동제약이었다. 당시 약대를 졸업한 약사는 제약회사에서 2~3년간 영업사원으로 일하다가 독립해 약국을 여는 게 일반적이었다. 제약회사 월급은 30만~50만원이었지만 약사 한 달 수입은 200만원을 웃돌던 시절이었다. 일동제약에서 만 3년을 근무한 그는 개업(開業)은커녕 생긴 지 5년이 채 안 된, 요즘 말로 스타트업 회사인 삼진제약으로 자리를 옮겼다.
―약국 열기를 마다한 이유가 있나요?
"약국을 했다면 돈을 많이 벌었겠죠. 그때는 5층짜리 건물 1층에 약국 열면 몇 년 안 돼서 그 건물을 살 수 있을 정도로 약사가 돈을 벌던 시대니까요. 그런데 그 두어 평짜리 약국 안에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하잖아요. 앉아 있는 게 좋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인생이 참 갑갑하겠더라고요. 약사가 되면 꼭 그렇게 재미없게 살아야 하나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제약회사에 남았겠지만 대기업에서 신생기업으로 이직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에겐 각자 맡은 병원이나 약국이 있는데 영업하러 갔다가 삼진제약 최승주 회장님을 만났어요. 그때 삼진제약 직원이 10명도 안 됐어요. 창업자인 최 회장님도 영업하러 다닐 때였죠. 그때는 나도 젊었으니까 열혈사원으로 안 다닌 데가 없었는데 갈 때마다 꼭 그분을 마주쳤다니까요. 그러다가 어느 날 삼진제약에서 같이 일하자고 하더군요. 그때 삼진제약 전 직원이 다 약사였어요. 이런 회사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영업하다가 회사를 제대로 만난 거였어요."
―부인도 영업하다가 만나셨다던데요.
"집사람이 적십자병원 약국 약사였어요. 병원에서 무슨 약 처방이 많이 나가는지 몇 마디 물은 적이 있는데, 자꾸 말을 걸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내가 (아내에게) 빠져서 쫓아다니다 결혼했어요. 거기 영업 안 나갔으면 결혼도 못 했을 건데 영업사원이어서 다행이었죠(웃음)."
―다들 힘들다는 영업사원이 좋습니까.
"영업사원처럼 좋은 직업이 세상에 어딨습니까. 사람이 좁은 곳에 앉아서만 일하면 생각이 좁아지고 아이디어도 잘 안 떠올라요. 영업사원은 밖에서 친구도 사귀고 매일 다른 사람 만나서 이야기도 듣잖아요. 세상을 제일 많이 배울 수 있는 게 바로 영업사원이에요. 직원들한테도 항상 말하는 건데, 난 지금도 영업사원이 제일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업사원,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
―사회 초년생 때는 쓰레기통도 뒤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병원 화장실 쓰레기통에 처방전이고 뭐고 서류들이 버려져 있는 걸 보고 본격적으로 쓰레기통을 뒤지기 시작했죠. 청소하시는 분들한테 커피나 아이스크림으로 로비를 해서 서류를 어디다 버리는지 정보를 얻었어요. 나중엔 노하우가 생겨서 종합병원같이 큰 거래처에 가면 경비하시는 분들하고 먼저 친해졌어요. 그분들이 약품 드나드는 트럭 관리까지 하시거든요."
―그만큼 실적 압박을 받았다는 거겠죠.
"나도 사람인데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죠. 제약회사 영업은 특히 또 약을 몇 개 팔았는지 하나하나 따지는 싸움이라 압박이 심해요. 상대 회사에 거래처를 뺏기면 그날은 얼굴이 벌게져서 밤에 잠이 안 왔어요. 회사에 큰소리쳐 놓았는데 창피하기도 하고 가슴이 벌렁벌렁 뛰고요. 그런데 거기서 끝나버리면 슬럼프가 와버려요. 영업사원은 슬럼프에 빠질 위험이 커요. 자존심 상하는 일도 자주 생기고 계약이 한 번 틀어지면 내가 뭘 잘못했나 계속 고민하게 되고요."
―그걸 이겨내는 방법이 있나요?
"몸을 가만히 있으면 안 돼요. 축 처져 있으면 될 일도 안 되더라고요. 슬럼프가 왔다고 늘어져 있으면 더 실적이 안 나오고 그러면 더 스트레스받고 더 깊은 슬럼프에 빠지는 악순환이 생겨요. 영업사원들만 느끼는 서글픔 같은 거죠. 당장 누워 있고 싶은 그 한고비만 넘기면 사람이 금방 살아나요. 슬럼프에 빠졌을 때 오히려 더 규칙적으로 일어나고 자고, 잘 먹고 해야 돼요. 지금도 나는 아침 4시 30분에 일어나서 집 앞 공원 산책을 해요. 그러면 제품 홍보 설명서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이번엔 어떤 신약을 개발할지 아이디어가 번뜩인다니까요."
영업은 자신감이다
회사 이름은 덜 알려져 있지만 삼진제약은 '게보린'을 만드는 회사다. '맞다, 게보린'이란 광고 문구가 매우 유명하지만 게보린은 한때 각종 악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게보린 8알을 먹고 콜라를 마시면 구토를 유도할 수 있다, 마약 성분이 들어 있어 백혈병에 걸릴 수 있다는 둥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악소문이 한창 확산된 때는 2008년 시작된 광우병 파동 때였다.
―게보린과 광우병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광우병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였어요. 신문에 광고를 싣고 있었는데 그걸 하지 말라고 압박이 들어왔습니다. 내 생각에도 광우병과 게보린이 무슨 상관인가 싶어서 광고를 빼지 않았어요. 나중에 보니까 우리 회사와 어느 관광회사 두 군데만 계속 광고를 하고 있었대요. 보수 정권과 깊은 관련이 있다, 어느 신문사 사장과 친·인척 관계다, 이런 얘기가 나오고 인터넷에 게보린에 안 좋은 성분이 들어 있다는 헛소문이 떠돌아다녔지요." 그러나 식약처가 그런 소문을 재검증한 결과 게보린 성분에는 부작용이나 안정성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런 소문이 날 때 사장이란 자리가 참 곤란하겠습니다.
"게보린은 입소문으로 진통제 부문 1위를 차지한 약이에요. 약효가 좋다는 뜻이죠. 1979년 게보린이 출시됐을 때 내가 영업을 하러 다녔어요. 그때는 우리 회사 전 직원이 30명 안팎일 때라 체계적으로 판매하지 못하고 친구들과 선후배들 약국에 두세 개씩 갖다 놓는 수준이었어요. 그 당시 진통제 1위는 독일계 회사의 사리돈이란 제품이었어요. 드링크는 박카스, 소화제는 훼스탈, 진통제는 사리돈이라고 할 정도로 제약 업계에서 '넘을 수 없는 3대 벽'으로 불리는 품목들이었죠. 그런데 게보린을 사 간 사람들이 금세 또 와서 사고 또 사고 한다는 거예요. 영업이고 뭐고 빨리 약 가지고 오라고 난리를 치더라고요. 그때 알았죠. 아, 이게 효자 상품이 되겠구나 하고요. 괴소문이 돌아도 약효에 자신이 있으니까 흔들리지 않습니다."
점심은 부산에서, 저녁은 광주에서
'한국인의 두통약'이란 광고 문구로 유명한 게보린은 그러나 지난해 삼진제약 매출의 7%를 차지할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전문의약품인데 그중에서도 5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품목은 2007년 출시된 혈전 용해제 '플래리스'다. 이 사장이 직접 영업을 다녔다.
―2007년이면 62세에 영업을 했다는 말인가요?
"이 약 잘 팔릴 거라고 내가 자신 있게 말했는데 어떻게 가만히 앉아 있습니까. 이미 선두 주자도 있는 상황이라 직원들 부담이 클 거로 생각했죠. 외부 사람들 만나는 건 당연했고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지방 영업소 직원들을 만나러 다녔어요. 부산에서 점심 먹고 서울 와서 일 보고 광주 가서 회의하는 식으로 출장을 반복했어요. 사장이 "이거 된다"고 말하면 직원들 자신감이 배가돼요. 물건 파는 사람이 자기 물건에 자신이 없으면 제대로 말이나 꺼내겠어요?"
―직원들한테 자신감 심어주려고 임상시험을 자원한 적도 있다면서요?
"오메가3 제품 출시를 준비할 때였어요. 제품 원료를 캐나다산 최고급으로 확보했고 잘 만들어보자고 했죠. 의약품 허가를 받는데 1년 안팎 걸려요. 그래서 그때 혈당약을 먹고 있던 내가 일단 실험 대상자가 돼보기로 했죠. 의사랑 상의하고 결정했는데 약을 먹으니 정말 혈당이 잡히는 거예요. 직원들 싹 다 불러서 말했죠. 어디 가서 누가 약효 물어보면 우리 사장이 직접 먹고 증명했다고 얘기하라고요."
―영업사원으로 일할 때 그 자신감이 참 중요했었나 봅니다.
"그게 핵심이에요. 내가 자신이 없으면 그게 밖으로 비쳐서 다른 사람 눈에 보여요. 약은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인데 상대가 '이 사람이 약을 제대로 알고 파나' 의심하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직원 셔츠 다려주는 회사
제약업계에서 삼진제약은 직원들에게 엄마 같은 기업으로 통한다. 회사에서 아침밥을 챙겨주고 셔츠를 빨아 다려주고 구두도 닦아주기 때문이다. 한때는 이 사장이 직원들을 데리고 찜질방에 다녔다. 팀별로 돌아가며 사장과 소주를 마신다. 노사 분규가 한 번도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이 사장이 취임한 뒤로는 연봉협상 테이블에 노사가 앉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봉 인상률이 매년 5%를 넘고 근속연수도 10.7년으로 제약업계에서는 두 번째로 길다.
―연봉협상을 안 하는 이유가 있나요?
"예전에 1월부터 6월까지 연봉 협상한다고 노조위원장과 직원들 몇 명이 와서 밀고 당기기를 해요. 얼굴은 잔뜩 붉히는데 협상이라고 제시하는 게 전년보다 2%, 좀 많으면 3% 올려달라는 거죠. 이게 시간 낭비에 에너지 낭비 같더라고요. 2001년 말 노조위원장을 모셔서 '연봉 협상 대신 임금 인상률 발표할 테니까 불만 있으면 찾아오라'고 했어요. 그해 인상률 5%를 제안했어요. 불만 있는 사람 있느냐 했더니 한 명도 없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연봉만 올리는 게 아니라 주식도 나눠줬지요.
"2012년 정부에서 한꺼번에 약값을 내린 일이 있었어요. 우리 회사 매출 2000억원 중에 24.8%가 깎일 위기였죠. 매출은 2000억원인데 사실 수익은 얼마 안 됐어요. 매출 500억원이 깎이면 직원들 월급 줄 돈도 없는 상황이었죠. 회사 걱정에 하루종일 눈물이 줄줄 나던 때였어요. 노조에서 직원들을 데리고 찾아왔더라고요. 연차와 성과급을 반납하고 일하겠다고 온 거예요. 그 마음이 정말 너무 고마웠습니다. 직원들이 전부 위기를 느낀 덕인지 그해 매출이 전년도를 월등히 뛰어넘었어요. 전부 직원들이 고생해 준 덕분이잖아요. 수익 중 83억원어치 자사주를 직원들에게 나눠줬어요. 일부 주주들은 직접 만나서 설득해야 했지만 직원들 격려차 무상지원하겠다고 일일이 찾아갔더니 이해해줬습니다."
삼진제약은 회사 근처 세탁소 2곳과 계약해 모든 사원이 셔츠를 비롯한 어떤 옷이든 횟수 제한 없이 세탁할 수 있게 해주고, 주 2회 회사 로비에 사람을 불러 전 직원의 구두를 닦아주고 고쳐주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셔츠 세탁에 구두 닦아주는 것도 직원 복지정책입니까.
"내가 영업사원 시절 좀 난감했던 것들이 있었어요. 총각 시절 셔츠를 매일 깨끗하게 입고 다니기가 어렵잖아요. 근데 밖에 다니려면 언제나 맵시가 깨끗해야 해요. 그래야 영업할 때 자신감도 붙고요. 행색이 초라하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어요. 회사 근처 세탁소랑 계약해서 일주일에 몇 벌 양복바지와 와이셔츠를 세탁하고 다려달라고 했죠. 구두 닦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내가 승용차 타고 움직이고 밖에 걸어 다닐 일이 별로 없지만, 가끔 많이 돌아다니는 날에는 구두 위에 먼지가 뽀얗게 앉더라고요. 그거 닦으려면 구둣방 찾아 돌아다녀야 하고 거기서도 구둣방 옆에서 어정쩡하게 서서 기다려야 하고···. 그런 수고를 좀 덜어주고자 한 거죠."
―직원들과 찜질방도 가신다면서요.
"젊은 친구들 이야기 좀 들으려고 시작했어요. 연초에 10~20명 정도 부서마다 모아서 찜질방에 가서 다들 찜질복으로 갈아입고 수다 떠는 거죠. 뭘 물어보면 발로 뛰는 친구들이 제일 잘 알지 임원들은 잘 몰라요. 뭘 해보자고 결심해도 임원급에서는 자꾸 안 된다고 하지 도전을 안 하게 되니까요. 그런데 연차가 어린 친구들은 자유롭게 이야기를 해요. 밖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회사에서 불편한 건 뭔지 이야기하면 최대한 불만을 해결해주려고 해요. 최근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회사 식권으로 점심 먹을 수 있는 곳이 중국집, 설렁탕집같이 한정돼 있는데 한 여직원이 샐러드 파는 곳을 넣어달라고 하더라고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거니까 당장 해줬어요. 그 직원이 상당히 감동받았나 보더라고요."
―요즘은 찜질방 안 간다면서요.
"여직원들이 찜질방에서 땀을 흘리니까 화장을 다시 해야 하는 게 불편한가 보더라고요. 그리고 사실 내가 찜질방 투어를 하다가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있어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직원들과 매일 찜질방에 가던 때였는데 금요일 저녁에 갑자기 열이 나고 얼얼해서 병원에 실려 갔어요. 건조한 곳에서 말을 너무 많이 하니까 목이 퉁퉁 부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다음부터는 죽을까 봐 못 하고 대신 아침을 같이 먹어요(웃음)."
'찜질방 대화'하다가 실려 가기도
―요즘 영업은 예전과 다릅니까.
"의사 선생님, 약사 선생님들 만나는 건 똑같아요. 인간적으로 친해지면 판매가 어느 정도 가능했던 감성 영업이 요즘엔 잘 안 통한다고 하더라고요. 예전에는 같이 등산 가고 낚시하고 술도 한잔하고 그러면 매출이 조금 올라가기도 했는데 요즘 그렇게 영업하는 사람은 드물어요. 영업이라는 게 무조건 가서 판다고 되는 게 아니고 그쪽에서도 우리한테 뭔가를 얻어갈 수 있어야 기분이 좋아지니까요."
―약을 사는 사람이 약 말고 뭘 얻을 수 있습니까.
"나한테 손해만 끼친다, 약만 팔아먹고 간다 이렇게 이미지가 박히면 상대해 주겠습니까. 약에 대한 새로운 정보뿐 아니라 자동차나 골프 같은 취미에 대한 정보를 줘도 좋고요. 의사 선생님이나 약사 선생님이나 사람은 다 똑같아서 뭐라도 이득이 있어야 기분 좋아진다니까요."
―업계 분위기가 퍽퍽해진 겁니까.
"그래도 나는 아직도 감성 영업이 통한다고 믿어요. 작년 겨울에 지방 한 병원장이 전화했어요. 그 의사 선생님은 새벽에 나와서 손수 병원 청소를 하는 분이거든요. 그런데 아침마다 어느 젊은 사람이 보온병에다 따뜻한 차와 커피를 싸 들고 와서 따라 준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회사 직원이었던 거죠. 아내가 아침마다 차를 준비해 준대요. 그분이 감동받았다며 요즘도 이런 직원이 있느냐고 칭찬을 하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사람 사는 게 돈으로만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약사이면서 의사와 약사에게 매번 그렇게 선생님이라고 하나요.
"선생님들한테 선생님이라고 해야지요.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선생님, 나보다 어려도 많이 배웠으면 선생님 아니겠습니까(웃음)."
인터뷰를 마치고 사옥을 나서는데 그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대화가 즐거웠다는 내용이었는데 첫 단어가 '선생님'이었다. 이미 그에게 영업 당한 것이다.
"게보린은 입소문으로 진통제 부문 1위를 차지한 약이에요. 약효가 좋다는 뜻이죠. 1979년 게보린이 출시됐을 때 내가 영업을 하러 다녔어요. 그때는 우리 회사 전 직원이 30명 안팎일 때라 체계적으로 판매하지 못하고 친구들과 선후배들 약국에 두세 개씩 갖다 놓는 수준이었어요. 그 당시 진통제 1위는 독일계 회사의 사리돈이란 제품이었어요. 드링크는 박카스, 소화제는 훼스탈, 진통제는 사리돈이라고 할 정도로 제약 업계에서 '넘을 수 없는 3대 벽'으로 불리는 품목들이었죠. 그런데 게보린을 사 간 사람들이 금세 또 와서 사고 또 사고 한다는 거예요. 영업이고 뭐고 빨리 약 가지고 오라고 난리를 치더라고요. 그때 알았죠. 아, 이게 효자 상품이 되겠구나 하고요. 괴소문이 돌아도 약효에 자신이 있으니까 흔들리지 않습니다."
점심은 부산에서, 저녁은 광주에서
'한국인의 두통약'이란 광고 문구로 유명한 게보린은 그러나 지난해 삼진제약 매출의 7%를 차지할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전문의약품인데 그중에서도 5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품목은 2007년 출시된 혈전 용해제 '플래리스'다. 이 사장이 직접 영업을 다녔다.
―2007년이면 62세에 영업을 했다는 말인가요?
"이 약 잘 팔릴 거라고 내가 자신 있게 말했는데 어떻게 가만히 앉아 있습니까. 이미 선두 주자도 있는 상황이라 직원들 부담이 클 거로 생각했죠. 외부 사람들 만나는 건 당연했고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지방 영업소 직원들을 만나러 다녔어요. 부산에서 점심 먹고 서울 와서 일 보고 광주 가서 회의하는 식으로 출장을 반복했어요. 사장이 "이거 된다"고 말하면 직원들 자신감이 배가돼요. 물건 파는 사람이 자기 물건에 자신이 없으면 제대로 말이나 꺼내겠어요?"
―직원들한테 자신감 심어주려고 임상시험을 자원한 적도 있다면서요?
"오메가3 제품 출시를 준비할 때였어요. 제품 원료를 캐나다산 최고급으로 확보했고 잘 만들어보자고 했죠. 의약품 허가를 받는데 1년 안팎 걸려요. 그래서 그때 혈당약을 먹고 있던 내가 일단 실험 대상자가 돼보기로 했죠. 의사랑 상의하고 결정했는데 약을 먹으니 정말 혈당이 잡히는 거예요. 직원들 싹 다 불러서 말했죠. 어디 가서 누가 약효 물어보면 우리 사장이 직접 먹고 증명했다고 얘기하라고요."
―영업사원으로 일할 때 그 자신감이 참 중요했었나 봅니다.
"그게 핵심이에요. 내가 자신이 없으면 그게 밖으로 비쳐서 다른 사람 눈에 보여요. 약은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인데 상대가 '이 사람이 약을 제대로 알고 파나' 의심하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직원 셔츠 다려주는 회사
제약업계에서 삼진제약은 직원들에게 엄마 같은 기업으로 통한다. 회사에서 아침밥을 챙겨주고 셔츠를 빨아 다려주고 구두도 닦아주기 때문이다. 한때는 이 사장이 직원들을 데리고 찜질방에 다녔다. 팀별로 돌아가며 사장과 소주를 마신다. 노사 분규가 한 번도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이 사장이 취임한 뒤로는 연봉협상 테이블에 노사가 앉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봉 인상률이 매년 5%를 넘고 근속연수도 10.7년으로 제약업계에서는 두 번째로 길다.
―연봉협상을 안 하는 이유가 있나요?
"예전에 1월부터 6월까지 연봉 협상한다고 노조위원장과 직원들 몇 명이 와서 밀고 당기기를 해요. 얼굴은 잔뜩 붉히는데 협상이라고 제시하는 게 전년보다 2%, 좀 많으면 3% 올려달라는 거죠. 이게 시간 낭비에 에너지 낭비 같더라고요. 2001년 말 노조위원장을 모셔서 '연봉 협상 대신 임금 인상률 발표할 테니까 불만 있으면 찾아오라'고 했어요. 그해 인상률 5%를 제안했어요. 불만 있는 사람 있느냐 했더니 한 명도 없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연봉만 올리는 게 아니라 주식도 나눠줬지요.
"2012년 정부에서 한꺼번에 약값을 내린 일이 있었어요. 우리 회사 매출 2000억원 중에 24.8%가 깎일 위기였죠. 매출은 2000억원인데 사실 수익은 얼마 안 됐어요. 매출 500억원이 깎이면 직원들 월급 줄 돈도 없는 상황이었죠. 회사 걱정에 하루종일 눈물이 줄줄 나던 때였어요. 노조에서 직원들을 데리고 찾아왔더라고요. 연차와 성과급을 반납하고 일하겠다고 온 거예요. 그 마음이 정말 너무 고마웠습니다. 직원들이 전부 위기를 느낀 덕인지 그해 매출이 전년도를 월등히 뛰어넘었어요. 전부 직원들이 고생해 준 덕분이잖아요. 수익 중 83억원어치 자사주를 직원들에게 나눠줬어요. 일부 주주들은 직접 만나서 설득해야 했지만 직원들 격려차 무상지원하겠다고 일일이 찾아갔더니 이해해줬습니다."
삼진제약은 회사 근처 세탁소 2곳과 계약해 모든 사원이 셔츠를 비롯한 어떤 옷이든 횟수 제한 없이 세탁할 수 있게 해주고, 주 2회 회사 로비에 사람을 불러 전 직원의 구두를 닦아주고 고쳐주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셔츠 세탁에 구두 닦아주는 것도 직원 복지정책입니까.
"내가 영업사원 시절 좀 난감했던 것들이 있었어요. 총각 시절 셔츠를 매일 깨끗하게 입고 다니기가 어렵잖아요. 근데 밖에 다니려면 언제나 맵시가 깨끗해야 해요. 그래야 영업할 때 자신감도 붙고요. 행색이 초라하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어요. 회사 근처 세탁소랑 계약해서 일주일에 몇 벌 양복바지와 와이셔츠를 세탁하고 다려달라고 했죠. 구두 닦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내가 승용차 타고 움직이고 밖에 걸어 다닐 일이 별로 없지만, 가끔 많이 돌아다니는 날에는 구두 위에 먼지가 뽀얗게 앉더라고요. 그거 닦으려면 구둣방 찾아 돌아다녀야 하고 거기서도 구둣방 옆에서 어정쩡하게 서서 기다려야 하고···. 그런 수고를 좀 덜어주고자 한 거죠."
―직원들과 찜질방도 가신다면서요.
"젊은 친구들 이야기 좀 들으려고 시작했어요. 연초에 10~20명 정도 부서마다 모아서 찜질방에 가서 다들 찜질복으로 갈아입고 수다 떠는 거죠. 뭘 물어보면 발로 뛰는 친구들이 제일 잘 알지 임원들은 잘 몰라요. 뭘 해보자고 결심해도 임원급에서는 자꾸 안 된다고 하지 도전을 안 하게 되니까요. 그런데 연차가 어린 친구들은 자유롭게 이야기를 해요. 밖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회사에서 불편한 건 뭔지 이야기하면 최대한 불만을 해결해주려고 해요. 최근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회사 식권으로 점심 먹을 수 있는 곳이 중국집, 설렁탕집같이 한정돼 있는데 한 여직원이 샐러드 파는 곳을 넣어달라고 하더라고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거니까 당장 해줬어요. 그 직원이 상당히 감동받았나 보더라고요."
―요즘은 찜질방 안 간다면서요.
"여직원들이 찜질방에서 땀을 흘리니까 화장을 다시 해야 하는 게 불편한가 보더라고요. 그리고 사실 내가 찜질방 투어를 하다가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있어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직원들과 매일 찜질방에 가던 때였는데 금요일 저녁에 갑자기 열이 나고 얼얼해서 병원에 실려 갔어요. 건조한 곳에서 말을 너무 많이 하니까 목이 퉁퉁 부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다음부터는 죽을까 봐 못 하고 대신 아침을 같이 먹어요(웃음)."
'찜질방 대화'하다가 실려 가기도
―요즘 영업은 예전과 다릅니까.
"의사 선생님, 약사 선생님들 만나는 건 똑같아요. 인간적으로 친해지면 판매가 어느 정도 가능했던 감성 영업이 요즘엔 잘 안 통한다고 하더라고요. 예전에는 같이 등산 가고 낚시하고 술도 한잔하고 그러면 매출이 조금 올라가기도 했는데 요즘 그렇게 영업하는 사람은 드물어요. 영업이라는 게 무조건 가서 판다고 되는 게 아니고 그쪽에서도 우리한테 뭔가를 얻어갈 수 있어야 기분이 좋아지니까요."
―약을 사는 사람이 약 말고 뭘 얻을 수 있습니까.
"나한테 손해만 끼친다, 약만 팔아먹고 간다 이렇게 이미지가 박히면 상대해 주겠습니까. 약에 대한 새로운 정보뿐 아니라 자동차나 골프 같은 취미에 대한 정보를 줘도 좋고요. 의사 선생님이나 약사 선생님이나 사람은 다 똑같아서 뭐라도 이득이 있어야 기분 좋아진다니까요."
―업계 분위기가 퍽퍽해진 겁니까.
"그래도 나는 아직도 감성 영업이 통한다고 믿어요. 작년 겨울에 지방 한 병원장이 전화했어요. 그 의사 선생님은 새벽에 나와서 손수 병원 청소를 하는 분이거든요. 그런데 아침마다 어느 젊은 사람이 보온병에다 따뜻한 차와 커피를 싸 들고 와서 따라 준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회사 직원이었던 거죠. 아내가 아침마다 차를 준비해 준대요. 그분이 감동받았다며 요즘도 이런 직원이 있느냐고 칭찬을 하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사람 사는 게 돈으로만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약사이면서 의사와 약사에게 매번 그렇게 선생님이라고 하나요.
"선생님들한테 선생님이라고 해야지요.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선생님, 나보다 어려도 많이 배웠으면 선생님 아니겠습니까(웃음)."
인터뷰를 마치고 사옥을 나서는데 그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대화가 즐거웠다는 내용이었는데 첫 단어가 '선생님'이었다. 이미 그에게 영업 당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