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내가 여기서 막아야 이긴다"

하마사 2016. 5. 26. 11:23
올해 꼴찌를 맡아놓은 줄 알았던 프로야구팀 넥센 히어로즈가 뜻밖에 잘 싸우고 있다. 히어로즈는 중심 타선과 에이스 투수를 지난 2년에 걸쳐 몽땅 팔아 당분간 별 볼일 없으리란 전망이 많았다. 팬으로서 올해는 마음을 비우려고 했더니만 '영웅'들이 그렇게 놔두지는 않을 모양이다. 현재 스코어, 안정적인 5위권이다.(시즌 5위까지는 '가을 야구'를 할 수 있다.)

차 떼고 포 뗀 히어로즈가 선전(善戰)하는 배경엔 염경엽 감독이 '가장 강한 카드'라고 표현하는 마무리투수 김세현이 있다. 옛 이름 '김영민'을 버리고 개명한 그는 원래 히어로즈의 선발투수로 성장해 왔다. 지난가을에 첫 완투승을 거둔 후 안 보였는데 올해 마무리투수로 변신해 나타났다. 약한 투수진이 불만이었던 히어로즈 팬들은 힘센 직구로 승부하는 김세현에 갈채를 보낸다. 그가 지난해 갑자기 사라졌던 이유가 백혈병 때문이었고 아직도 치료 중임을 아는 이들은 더 그렇다. 지금까지 그의 성적은 세이브 12개로 1위다. 18경기 동안 볼넷 하나 안 내준 김세현의 호투가 없었다면 팀 성적은 많이 내려갔을지 모른다.

투수전(戰)을 즐기다 야구장 밖으로 눈을 돌리면 '마무리투수' 명찰을 단 정치인과 관료가 적잖이 눈에 들어온다. 정권이 후반기에 들어서며 하나 둘 늘어나는 모양이다. 정진석 새누리당 신임 원내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마무리투수"가 되겠다고 했고, 유일호 경제부총리도 경제의 마무리투수 역할을 자임한다. 지난 19일 임명된 강석훈 청와대 경제수석도 '박근혜 경제의 마무리투수'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맥락이 약간씩 다르지만 이들이 처한 상황은 비슷하다. 우리 사회 각 분야가 위기에 맞닥뜨려 더 실기(失期)하면 무너질지 모른다. 너무 미뤄 곪을 대로 곪은 산업 구조조정, 중국에 밀려 곤두박질하는 수출, 불어나는 청년 실업과 분노 등 사방에 시급한 문제가 겹겹이라 위태롭다. 이르면 내년 초부터 차기 대선 모드라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반년 남짓 남은 시간이 이런 문제와 정면으로 승부를 겨뤄야 할 '위기의 9회'인지 모른다. 이들이 구원투수인지 패전 처리 투수인지는 구질(球質)에서 곧 판가름이 날 것이다.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마무리투수 마리아노 리베라는 자서전 '클로저(The Closer)'에 마무리투수의 조건으로 둘을 꼽았다. 집중력 그리고 절박함이다. 김세현의 성공적 변신을 이끈 염경엽 감독은 마무리투수가 흔들려도 잘 교체하지 않는다. '내가 마지막'이란 절박함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세현은 25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값진 세이브 하나를 추가한 뒤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여기서 막아야 팀이 이길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가운데만 보고 던졌다." 정권의 '마무리투수'들도 이 정도 각오는 하길 바란다. 그리고 이건 알았으면 한다. 팬들은 혼신을 다해 정면 승부를 하다가 홈런 맞는 마무리투수는 격려하지만 연거푸 볼넷만 날리는 비겁함엔 등을 돌린다. / 김신영 기자

 

-조선일보, 트렌드돋보기, 2015/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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