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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사용 설명서-이럴 때는 전화하세요.

하마사 2016. 3. 20. 09:24

어르신들이 많이 거주하는 농어촌 시골에서 실버목회 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시골교회의 목사가 어르신들에게 나눠준 ‘목사 사용 설명서’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지난 15일 충북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에 있는 물한계곡 교회(기독교대한감리회)의 김선주(50)담임목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목사 사용 설명서’라는 글과 사진을 포스팅 했습니다.

김 목사는 “어제 주일에 교인들에게 ‘이럴 때는 전화하세요’라는 안내문을 성도들에게 나눠주며 전화기 옆에 붙여 놓으라고 했다”는 글로 시작했습니다.  

김 목사는 “몇 명 안 되는 노인이 전부인 시골교회에서 목회를 하다 보니 내 진심을 가로막는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목회자에 대한 교인들의 지나친 분리의식이었다. 목사는 기도만 하고 말씀만 연구하며 교인들의 현실적인 삶의 문제에서 분리된 영역에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면서 “이들의 오래된 신앙 관념들이 목회자를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 사람을 섬기는 일을 방해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어서 김 목사는 “목회자는 섬기는 직분이라고 누누이 설교를 해도 하나의 잘못된 빗장질린 그들의 마음은 열린 기미를 보이지 않아 성도들의 손에 들려주고야 말았다”며 안내문을 작성한 취지를 밝혔습니다.

김 목사가 성도들에게 나눠준 ‘이럴 때 전화하세요’ 안내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1. 보일러가 고장 나면 전화합니다.  

2.텔레비전이 안 나오면 전화합니다. 

3.냉장고, 전기가 고장 나면 전화합니다. 

4.휴대폰이나 집전화가 안 되면 전화합니다. 

5.무거운 것을 들거나 힘쓸 일이 있으면 전화합니다. 

6.농번기에 일손을 못 구할 때 전화합니다. 

7. 마음이 슬프거나 괴로울 때 도움을 요청합니다. 

8. 몸이 아프면 이것저것 생각 말고 바로 전화합니다. 

9. 갑자기 병원에 갈 일이 생겼을 때 전화합니다. 

10. 경로당에서 고스톱 칠 때 짝 안 맞으면 전화합니다. 

김 목사는 “10번 항목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노인들은 경로당에 모일 때마다 화투를 친다. 그런데 예고 없이 경로당을 방문하는 나를 볼 때마다 화투장을 부챗살처럼 펴 들고 있던 교인들은 화들짝 놀라며 안절부절 못한다”며 “화투는 목사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이고 예수님의 복음이 교인들의 작은 기쁨까지 빼앗는 옹졸한 규범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 목사는 “내가 교인들에게 자유를 주듯이 그들도 나에게 자유를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당신들의 삶의 현장으로 나를 깊이 초대해 주었으면 좋겠다. 목사는 불상처럼 모셔두는 게 아니라 필요에 따라 써먹어야 하는 존재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며 글을 마무리 했습니다.  

이 글은 네티즌들의 큰 관심을 받으며 공감을 표시했습니다.  

네티즌들은 “멋진 생각입니다”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진정한 목사님입니다” “목사님 글에 도전받아갑니다” “글 읽다가 미소를 지었어요 “섬김을 몸으로 실천하는 목회자”라며 뜨거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김 목사는 이 안내문을 지난 13일 예배 후 광고시간에 성도들에게 나눠줬다고 밝혔습니다. 안내문을 받은 성도들은 ‘경로당에서 고스톱 칠 때 짝 안 맞으면 전화 합니다’라는 항목에서 폭소가 터졌다고 합니다.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김 목사는 “개인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 이렇게 큰 관심을 받게 될지 몰랐다. 내가 섬긴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면서 “나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 훌륭하게 사역하는 시골교회 목회자들도 많다”고 말했습니다. 

끝으로 김 목사는 “이 문구들을 성도들이 한 번씩 읽을 때마다 목사가 성도들의 삶의 현장에 있어야 하는 존재라는 걸 의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김 목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시골 목회자들을 향한 기도와 격려가 더 많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시골목회는 많이 힘들다고 합니다. 젊은이들이 떠난 시골에서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힘든 환경 속에서도 성도들의 삶의 현장에서 섬기고자 노력하는 김 목사의 안내문은 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울림을 줍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골에서 자신의 인생을 드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섬기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인해 한국교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국민일보, 2016/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