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관련자료/광성교회 분쟁

광성교회 분쟁 회고록

하마사 2016. 2. 25. 16:41

2001년 12월 30일, 광성교회에 부임했다. 당시 담임목사였던 김창인목사님의 부름을 받아 11교구를 담당하며 2년 동안 교구담담목사로 사역했다. 2003년 11월 16일, 이성곤목사가 담임으로 부임하고 12월 21일, 아름다운 이 취임식이 거행되었다. 김창인목사 원로목사 및 공로목사 추대 및 이성곤목사 위임식을 증경총회장들을 모시고 은혜롭게 은퇴하고 위임했다.

2004년 2월 11일부터 심방권사 제도가 시행되었다. 그해 10월까지 심방권사들과 함께 부목사들이 심방을 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2004년 3월 16일, 김창인목사 대통령 표창으로 오후 1시에 교역자들이 집합했다.

2004년 3월부터 목회자들 간에 양분되기 시작했다.

이성곤목사님이 부임하여 회의가 많아졌다.

교회를 새롭게 하려는 의지가 강해 목회자 회의시간에도 열정을 가지고 회의를 진행했다.

불만을 가지고 투덜대는 목사님들이 생겨났다.

담임목사님을 반대하는 부목사님들끼리 모임을 갖고 있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3월 중에 김형우목사님이 함께 식사를 하자고 했다. 특별히 식사할 이유가 없었는데 식사를 하자고 하여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둘이서 식사를 하는 줄 알았는데 식당에 도착하니 이금호, 지철홍목사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화를 하는 중에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세 명이 함께 나를 설득하기 위해 만든 자리였다. 그들은 이성곤목사님의 흉을 보기 시작했다. 여자문제, 술 문제, 돈 문제를 거론하면서 조만간 당회가 열리고 담임목사님을 내보낼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 일을 위해 도와달라고 했다. 어떻게 부목사들이 담임목사님을 반대하고 모함하여 교회를 혼란하게 할 수 있느냐고 하면서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단호하게 이야기를 하고 헤어졌다.

그 후에 김창인목사님이 전화를 걸어 자리를 지키고 있으라고 했다. 당시에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알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얼마 후에 임시당회가 소예배실에서 모였다. 이미 김창인목사님이 부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의 성향을 판단하고 설득하여 담임목사님을 쫓아내려는 작업을 했던 모양이었다. 그 때 윤석원목사님이 회의를 진행하며 담임목사님의 문제를 거론했다. 표결로 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사전에 입을 맞춘 사람들은 일사천리로 회의를 진행하려 했다.

한수봉 원로장로님과 방덕선 장로님 같은 몇 몇 장로님들이 반대의견을 개진했고 회의는 무산되었다. 단 한 번의 회의로 일을 끝내려던 그들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그 때까지 물밑에서 진행되던 교회분쟁의 파열음이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담임목사님을 반대하는 부목사님들은 목회방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였다. 본격적으로 목회자들이 두 부류로 갈려 대립하기 시작했다.

원로목사측 부목사들은 김성철, 김형우, 남광현, 민현기, 윤석원, 이금호, 이진희, 지철홍목사였고, 담임목사측 부목사들은 고영준, 공광승, 김신영, 김진현, 박재신, 배용우, 유한구, 이근호, 이한우, 조영익, 한영승목사였다.

부목사들이 나뉘자 교구식구들도 함께 나뉘기 시작했다.

2004년 12월 23일 담임목사에 의해 사역에 위기를 느낀 원로목사측 부목사 8명이 기독교노동조합에 가입하여 노동조합원들이 교회마당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했다.

2008년 8월 8일, 새벽에 수 백명의 용역들을 동원해 교인들을 내쫓고 본당을 점거한 후에 사방에 울타리를 쳐서 출입을 막았다.

당장에 예배처소를 구할 수 없어 교회주차장에 임시로 천막을 치고 수 천 명이 예배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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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이어서 써야하는데~~~ 언제가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