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집 연 친구에게 치킨 선물… 허 찌르면 '빵' 터지죠
웃지 않고는 못 배길 걸! 개그맨들의 '영업 비밀'
캐릭터가 생명
영구 분장한 심형래 보면 사람들은 일단 웃고봐
독특한 외모·말투도 필수
타이밍도 중요
시청자들 예측보다 반박자 빠르게 웃겨야
치밀한 스토리는 기본
웃음을 구걸 말라
개그맨은 웃기는 사람이지 우스운 사람 돼선 안돼
바보 보면 웃는 이유? 우월감 느끼기 때문
KBS '개그콘서트'(이하 개콘) 제작진은 매주 목요일 오후 아이디어 회의를 한다. 60~70여명의 개그맨과 작가들이 모여 웃고 떠든다. 개콘은 매주 15~16개의 코너를 녹화하고 1~2개 코너는 통편집한다. 웃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웃기는 게 직업인 개그맨들은 어떻게 새로운 웃음거리를 만들어낼까.
- 20일 서울 여의도 KBS신관에서 ‘개그콘서트’에 출연 중인 개그맨 김기리, 이수지, 송영길, 김성원(왼쪽부터)이 박성광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 김지호 기자
바보 캐릭터는 단골 손님
지난 20일 오후 개콘에 출연하는 개그맨 김기리, 김성원, 박성광, 송영길, 이수지를 여의도 KBS 연습실 앞에서 만났다.
먼저 웃음이 나오는 상황을 어떻게 만들까. "치킨집 개업한 친구집에 치킨 선물 사가지고 가듯, 예상을 뒤집으면 웃음이 터져나온다."(박성광) "비슷한 말이나 행동을 조금씩 변형하면서 반복하는 건 개그의 기본틀 중 하나다."(김성원) "'생활의 발견' 코너같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보여주면, '맞다. 우리가 저렇게 살고 있지'라는 공감을 자아낼 수 있다."(김기리)
재미있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심한 곱슬머리가 특징인 송영길은 "바보 영구 분장을 한 심형래 선배가 무대에 서면 사람들은 일단 웃고 본다. 사람들이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인상적인 캐릭터다. 내 머리 모양과 뚱뚱한 몸매가 풍기는 이미지를 활용하고 싶다"고 했다. 김성원은 "자신의 신체적 특성이나 개성을 개그의 소재로 삼으면 성공확률이 높다"고 했고, 김기리는 "바보 캐릭터가 언제 봐도 우스운 것은 사람들이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보고 웃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성광은 "그래서 개그맨은 장난을 걸거나 놀려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 이수지는 "눈에 띄는 외모도 중요하지만, 독특한 말투와 행동을 결합하면 캐릭터가 더 산다. 김영희의 '앙돼요~'라는 말은 유행어가 됐다"고 말했다.
개콘 개그작가 남혜진은 "웃기는 상황을 설정하면 시청자들도 언제 웃음이 나올 지를 예측하는데, 그 예측보다 반 발 먼저 '빵' 터지는 타임을 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개그작가 윤기영은 "젊은 사람들은 복잡한 내용 대신 쉽게 웃을 수 있고, 전개도 빠른 코너를 좋아한다"고 했다.
30여년 동안 코미디 프로그램을 연출한 김웅래 인덕대 방송연예과 명예교수는 "개그맨들은 신문, 방송, 책, 페이스북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꼼꼼히 체크해 재미있는 장면이나 콩트가 될 만한 것을 메모한 후 개그 아이디어로 발전시킨다"고 했다. 그는 "웃길 만한 것을 찾아 읽고 메모하고 여러 번 연습해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상대를 웃길 수 있다"고 했다.
예상 깨는 결말에 웃음 터져
유머는 사람들의 의표를 찌르고 상식을 뒤엎는다. 이야기의 끝이 엉뚱할수록 웃음소리도 커진다. '웃음과 유머, 그 비밀의 문을 열다'를 쓴 이상준 품위유머닷컴(www.pumur.com) 대표는 "이야기의 흐름상 예상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결말과는 다른, 생소하고 엉뚱한 결말 간 격차(隔差)가 벌어질 때 웃음이 터진다"고 했다.
'어느 날 꼬마가 일기에 이렇게 썼다. 우리 집은 가난해서 ( )가(이) 하나밖에 없다.' 괄호 안에 들어갈 말은 '방'이나 '창문'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실제로 써넣은 말은 '포르셰'였다. 허름한 창문과 화려한 포르셰 간의 격차, 가난한 아이인 줄 알았는데(예상 결말) 부자였다는 사실(실제 결말) 간의 격차 때문에 유머가 된 것이다.
미팅 나온 영문과 여학생이 남학생에게 물었다. "로미오와 줄리엣 읽어봤어요?" 남학생이 대답했다. "로미오는 읽었는데… 줄리엣은 아직 못 읽었어요." 여기서 빵 터진다. '나는 저 정도로 멍청하지 않아' 하면서 유머 속 주인공보다 낫다는 우월감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경북 청도에서 개그 전문 공연장 '철가방 극장'을 운영하는 전유성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비틀어보면 웃음거리가 눈에 보인다"고 했다.
"요즘 셰프들이 방송에 많이 나오는데, 조폭 출신 셰프가 있다면 어떤 음식을 만들까. 누구 먹으라고 만들까. 칼질도 다르겠지. 조폭 출신 셰프는 감옥에 갇힌 형님들 면회 갈 때 들고 갈 음식을 만들 것이다. 혹은 지가 감옥에 있을 때 먹고 싶은 음식에도 관심이 있을 것이다. 맛있는지 없는지 여부는 부하 똘마니에게 먹여본다. 맛없다고 하면 '니가 아직 감옥에 안 가봐서 그래, 인마!' 하면 되지 않을까."
웃음이 될 만한 단어나 몸짓을 반복하는 것도 웃음의 강도를 높이는 장치가 된다.
'한 어수룩한 효자가 귀가 안 들리는 어머니에게 집을 방문한 친구를 소개한다. 아들: (어머니의 귀에 대고 버럭) 엄니! 친구 왔어요! 어머니: 뭐라고? 침구가 젖었다고?! 나 안 쌌어! 아들: 그게 아니라! 친구가 왔다니까요. 어머니: 글쎄 이놈아! 나 안 쌌다니까! 아들: 엄니! 그것이! 아니라! 친구가 왔다니까요! 어머니: 이놈아! 글쎄! 난 침구에 쉬 안했다니까! 아들: 어유!'
개그작가들은 "반복될 때마다 말이나 행동의 정도가 심해져야 하고, 마무리는 반복이 아닌 단발로 해야 효과가 있다"고 했다.
엉덩방아 찧고 미끄러지는 슬랩스틱(과장된 액션이 특징인 희극)은 영원한 웃음의 주제다. 양복을 빼입은 신사가 바나나 껍질을 밟고 미끄러지면 웃음이 터져나온다. 단, 엉덩이를 문지르며 주위를 둘러보면서 쑥스러운 표정을 짓고 일어서면 웃을 수 있지만, 큰 상처를 입고 바닥에 누워 움직이지 않으면 웃어서는 안 된다. 일상에서는 보기 힘든 부조화지만, 그 상태는 심각하지 않아야 한다.
김현철 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개그학과 교수는 "개그수업 첫 강의에서 잘 맞고 때리는 법을 가르친다"며 "진짜로 때리고 맞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맞는 사람은 아픈 표정을 지으면 안 된다. 그러면 웃음은커녕 어색한 분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개그작가 마미성은 "다른 사람을 웃기려면 치밀한 구성과 스토리텔링 질서를 갖추어야 한다"며 "이를 무시하고 대충 넘어가려고 하면 웃음 구걸이 되고, 한마디로 실없는 사람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개그맨은 웃기는 사람이지 우스운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나왔다.
말을 이용한 유머를 유발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한성일 가천대 교수는 "결말을 예측하지 못해 방심하고 있을 때 마지막 순간 급소를 찌르는 게 웃음을 유발하는 핵심전략"이라고 했다.
'바보가 별을 세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백다섯, 백여섯… 아, 더럽게 열받게 많네. 그래도 별이 몇 개인지 알고 싶은 바보는 지구과학자에게 가서 별이 몇 개냐고 지겹게 물어봤다. 과학자는 짜증 나서 소리쳤다. "그만두게, 젊은이!" 그러자 바보는 좋아하면서 말했다. "구만두 개나!"
말을 살짝 바꿔 가면서 엉뚱하고 우스운 표현을 만들어 웃음을 자아낼 수도 있다.
'사오정1: 야, 도시락 반찬 싸 왔어?
사오정2: 어, 난 반장이랑 싸웠어.
사오정1: 난, 풋고추 싸 왔는데.
사오정2: 뭐? 피카추랑 싸웠다구?
사오정3: 난 빨간 고추 싸 왔는데.
사오정2: 뭐? 넌 빨가벗고 싸웠다구?'
"억지 웃음도 좋은 약"
최근에는 웃음의 생리적 효과를 치료에 이용하는 병원들이 많다. 신일식 한국유머웃음치료학회 사무국장은 "웃음은 스트레스 대처 능력을 높이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등 우리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 번 크게 웃을 때마다 우리 몸의 231개 근육이 움직이기 때문에 웃음을 우리 몸의 '내부 조깅'이라고도 한다"며 "1분 정도 억지로 웃는 거짓 웃음도 울적한 기분을 달래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했다. 신현정 부산대 심리학과 교수는 "대개 기뻐서 웃지만 웃다 보면 기뻐진다는 심리학 이론(안면피드백 이론)이 있을 정도로 웃음을 생활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조선일보, 2015/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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