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적 病室문화 바꾸자] 情 때문에 우르르 病문안…
면회시간 어기고, 음식 먹으며 '왁자지껄'
[上] 집단감염 위험 키우는 '도떼기 市場'같은 병실
-규정 무시, 막무가내 문병
외부 음식 반입 금지해도 치킨 사오고 컵라면 끓여
알레르기 유발하는 꽃 반입, 애완견 데려가는 경우도 있어
환자와 같이 술 마시거나 병실서 담배 피우는 사람도
-한국 특유의 문화
매정하다는 소리 듣지 않으려 病문안 가는 경우 많아
9일 오후 서울의 한 대학병원 어린이 병동 5층에는 양념치킨 냄새가 진동했다. 병문안을 온 어른 4명이 병상에 걸터앉아 치킨을 꺼내자 어린 환자는 신이 났다. 환자의 아버지 신모(37)씨는 "외부 음식 반입이 안 된다는 것은 알지만, 아이의 성화에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어린이병원 면회 종료 시각인 오후 8시를 넘겼지만 문병객의 발길은 이어졌다. 2층 출입구를 폐쇄하는 10시 직전에야 20여명의 문병객이 우르르 병원을 빠져나왔다. 면회를 온 오모(61)씨는 "면회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알았지만 다리를 다쳐 입원한 손자를 어떻게 안 보고 가냐"고 말했다. 일반 병동 8층 오모(67)씨의 병상에선 즉석 계 모임이 열렸다. 6명의 계원이 병문안을 온 것이다. 이들은 병실 내 사용이 금지된 전기 포트로 물을 데워 컵라면을 끓여 먹으며 수다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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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4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으로 병문안 온 한 가족과 환자가 병원 로비 밖에서 애완견을 쓰다듬고 있다(왼쪽). 지난주 인천 남동구의 한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병문안 온 친구와 함께 컵라면·떡볶이·닭강정 등 외부 음식을 들여와 먹고 있다(오른쪽). /오종찬 기자·인스타그램 캡처
이 대학병원은 면회 시간제한과 더불어 15세 이하 어린이 문병 금지, 알레르기 유발 물질 반입 금지 등 문병객이 지켜야 할 세부 지침을 갖고 있다. 하지만 문병객은 지침을 확인하거나 지키려 하지 않았고, 병원 측은 이를 방문객에게 알리려 노력하지 않았다.
이 병원 보안 관계자는 외부 음식 반입은 애교 수준이라고 했다. 실제 알레르기성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꽃을 반입하려는 문병객도 있었다. 그는 "문병객이 애완견을 데리고 오기에 출입을 막자 '애완견용 가방에 넣었으니 된 것 아니냐'며 따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게임기를 대여해주는 업체 직원들이 병실에 들어와 영업할 때도 있다고 했다. 근처 노점 상인도 화장실을 찾아 매일같이 병원에 손쉽게 드나든다.
병원 측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 문병객 때문에 의료진은 골머리를 앓는다. 본지가 입원 병동이 있는 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진 100명을 대상으로 '한국 병문안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응답자들은 큰 소리로 떠드는 경우(19.7%), 술 마시고 방문하는 경우(18.7%), 여러 명이 한 번에 몰려오는 경우(15%), 문병객이 환자의 침상에 앉거나 눕는 경우(10%) 등을 꼽았다. 치료에 방해되는 건강보조식품을 사와 환자에게 먹이는 문병객도 있다고 했다.
문병객 중에는 정(情)에 이끌리거나 매정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친척과 지인의 병문안을 가는 한국적인 문화 때문에 불가피하게 병실을 찾아가는 경우도 많다. 지난 10일 김모(35)씨는 11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시누이가 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는 한 대형병원을 찾았다. "돌도 안 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게 찜찜해 잠시 망설였더니 함께 간 시어머니 표정이 싸늘하게 바뀌었다"며 "결국 아이를 데리고 시누이 병문안을 했다"고 했다.
-조선일보, 2015/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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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적 病室문화 바꾸자]
학교 친구가 아프다고 너도나도 문병… 집단 감염돼 '단기 방학' 들어간 경우도
[병문안으로 인한 감염사례]
아버지가 이질로 입원하자 자식·사위·동생, 같은 날 문병… 며칠뒤 고열·복통 집단증세
지난해 1월 경북 포항의 도립 노인 전문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던 신모(66)씨는 개선충(옴진드기) 때문에 생긴 피부 질환으로 치료받고 있었다. 입원 기간에 신씨를 문병한 아들 권모(34)씨 등 가족 2명과 간병인, 병원 근무자 등 4명이 신씨와 같은 증세를 호소해 치료를 받았다. 2008년 11월 전남 목포에 사는 A(82)씨는 육회를 잘못 먹고 세균성 이질균에 감염돼 병원에 입원했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 날 두 아들과 딸 내외, 그리고 여동생까지 문병을 왔다. 며칠 뒤 이 문병객들도 고열과 복통 등 이질 증세가 나타났다. 남편을 병간호하던 아내도 이질에 걸려 입원했다.
같은 반 친구가 입원하자 병원으로 우르르 병문안을 갔던 학생들이 단체로 병을 얻은 일도 있다. 2009년 5월 서울 도봉구의 한 고등학교에선 학생 11명이 집단으로 A형 급성 간염 판정을 받았다. 질병관리본부 측은 "학교에서 A형 간염이 집단 발병한 건 처음"이라며 의아해했다. 역학조사 결과 처음 A형 간염에 걸린 친구를 병문안 갔던 학생들이 한꺼번에 감염된 것으로 밝혀졌다.
2008년 4월에는 경기도 안성의 한 고등학교에서 볼거리에 걸린 학생을 병문안 갔다가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학생이 11명까지 늘어나 일주일 넘게 단기 방학에 들어가기도 했다.
-조선일보, 2015/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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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적 病室문화 바꾸자] [上]
통제없는 問病, 폐렴 감염 7배 높았다
환자와 함께 먹고, 눕고… 메르스 감염 10명 중 4명은 환자의 보호자와 문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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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강남·서초는 휴교 풀리고… 부산 43곳은 학교문 닫고 - 서울 강남·서초구에 내려졌던 유치원과 초등학교 일괄 휴업령이 해제된 15일 오전 서울 양전초등학교 학생들이 마스크를 쓰고 등굣길에 올랐다(왼쪽). 반면 부산지역 유치원과 초등·중학교 43곳이 이날 메르스 확산을 우려해 휴업에 들어간 가운데 부산 수영구 광안초등학교에서 방역요원이 빈 교실을 방역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장련성 객원기자
메르스 감염 우려가 커지며 일부 병원은 뒤늦게 공항 검문·검색 수준으로 문병객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고려대구로병원은 지난 13일부터 문병객을 비롯해 모든 병원 방문자를 대상으로 체온 측정과 손 소독을 하고 신원 확인까지 마친 후에야 병실에 들어갈 수 있도록 조치했다.
-조선일보, 2015/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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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적 病室문화 바꾸자]
환자 바로 옆에서 돌보는 보호자·간병인… 예방교육 제대로 안 받아
감염위험 노출환자용 음식도 같이 먹고 샤워실을 같이 쓰기도
문병객이 모두 돌아간 밤에도 병실엔 여전히 평상복 차림의 외부인들이 있다. 환자의 보호자나 고용 간병인이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수발을 들기 위해 간이침대까지 두고 병상을 24시간 지키는 이들 또한 엄밀한 의미에서 '문병객'이다.
9일 오후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한 병원 병동. 딸을 병간호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온 박모(56)씨는 환자 병상 옆에 '살림'을 차렸다. 반바지에 반소매 셔츠 차림으로 딸을 돌보며 병원 구석구석을 누볐다. 딸의 옆 침상에 누워 있던 환자가 자리를 비우자 그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그는 환자 샤워실에서 목욕하고 가끔 병원에서 나오는 환자식(食)도 함께 먹는다고 했다. 냉장고엔 '외부 음식 반입 금지'라고 안내 문구가 부착돼 있었지만, 안에는 먹다 남긴 죽, 두부, 고추장, 식혜 등 캔 음료, 김치와 각종 마른반찬으로 꽉 차 있었다. 장기 입원 중인 환자 송모(85)씨의 보호자는 병실 슬리퍼 차림으로 상점에 가 떡을 사왔다. 병실 입구에 손 세정제가 부착돼 있었지만, 본지가 지켜보는 1시간여 동안 사용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가족이 직접 환자를 돌보지 못하는 경우에는 간병인을 고용한다. 요양보호사 자격증 등을 취득하면 간병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의료계는 간병인이 감염 관리 측면에서 충분한 교육을 받지 않은 채 투입된다고 지적했다. 취재 중 병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간병인들이 자신의 빨래를 널어놓거나 수시로 담배를 피우는 등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간병인들이 환자를 돌보다 환자의 질환에 감염될 수도 있다. 15일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현재까지 메르스에 걸린 걸로 확인된 간병인은 7명에 이른다.
김현정 고려대 의대 교수는 "기본적으로 보호자나 간병인이 환자를 돌보는 서비스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병원이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할 환자 관리 업무가 전문성 없는 가족이나 간병인에게 전가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좁은 병실에 환자용 침상들은 1m도 채 떨어져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사이를 보호자·간병인을 위한 간이침대가 연결하고 있다. 그만큼 감염 위험성도 촘촘하게 연결된 셈이다.
-조선일보, 2015/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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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적 病室문화 바꾸자] 전문가들이 본 병실문화
문병객이 울거나 종교의식 하는 것도 옆 환자엔 나빠
병원을 공공장소로 인식, 타인에 대한 배려 있어야
아이들은 증상 없더라도 호흡기 질병 보균자 많아
최준용 연세대 감염내과 교수는 병원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은 역설적으로 가장 병균이 많은 공간이라는 점을 문병객들이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윤석 서울아산병원 교수는 병원은 공공장소고, 공공장소에 걸맞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했다. 문병객이 우르르 몰려와 큰 소리로 울면 옆 환자의 맥박 수가 올라간다. 다인(多人)실 위주인 한국 병실에서 종교의식을 하거나 외부음식 냄새를 풍기는 것은 결국 다른 환자의 치료와 안정을 방해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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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왼쪽부터)최준용 교수, 고윤석 교수, 전병율 교수, 김태형 교수.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전병율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문병 부조(扶助)' 문화를 없애야 한다고 했다. 입원할 때 서로 봉투를 주고받다 보면 병문안을 결혼식·장례식 오는 것처럼 의례(儀禮)로 여기는 문화가 고착된다는 것이다. 김태형 순천향대 감염내과 교수는 "병문안 갈 때 어린이를 데려오지 말라는 것을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아이가 위험에 처할 수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독감 등 호흡기 질환의 주된 전파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증상이 없더라도 호흡기 감염원을 보균하고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병실에 데리고 오는 것은 입원 환자들에게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병실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환자를 전문성 없는 가족이 아닌 간호사가 돌보는 포괄간호서비스가 정착돼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2015/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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