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역사/한국교회역사탐방

한국교회 최초의 순교자 토머스 선교사의 영적 고향을 가다

하마사 2015. 3. 16. 20:51
한국교회 최초의 순교자 토머스 선교사의 영적 고향을 가다 기사의 사진


유재연(왼쪽 세 번째) 하노버교회 목사와 영국 성도들이 지난 6일 서울 사랑의교회 성도들과 드린 예배에서 특송하고 있다.


‘HANOVER United Reformed Church(하노버 개혁교회)’ 

빛바랜 간판에 적힌 고풍스런 영문체가 교회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했다. 지난 6일(현지시간) 서울 사랑의교회 성도들과 함께 찾아간 영국 웨일즈 란오버의 하노버교회는 아담했다. 란오버는 런던에서 서쪽으로 240㎞ 떨어진 시골 마을이다. 짙은 흑갈색 돌로 세워진 예배당과 이끼 낀 돌담, 교회 앞마당에 늘어선 100여개의 비석들은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었다. 

◇한국교회 최초 순교자 토마스의 영적 고향=하노버교회는 한국교회 최초의 순교자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1839~1866) 선교사가 청소년기를 보낸 신앙의 ‘모판’이다. 역사적인 이 교회는 영국교회가 처한 현실과 한국교회의 미래, 희망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하노버교회는 1644년 설립돼 1839년 지금의 예배당을 헌당했다. 토마스 선교사의 아버지 로버트 토마스 목사는 아들이 8세 때인 1847년 이 교회에 부임했다. 교회 출입문 위에는 전도서 5장 1절, 시편 84편 1절 등 성경구절 4개가 새겨진 반원 형태의 돌판이 붙어 있다. 토마스 선교사는 이 문을 지날 때마다 ‘하나님의 집’(전 5:1)을 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겼을 것이다.  

예배당 내부는 80㎡ 규모로 좌석 사이에 붉은색 카펫이 깔려 있었다. 바닥은 나무로 돼 있어 걸을 때마다 삐거덕 소리가 났다. 고동색 강대상과 칠이 벗겨진 장의자, 주황색 방석 등을 보니 1970년대 한국교회 시골 예배당이 생각났다. 

복층은 가파른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다. 강대상을 중심으로 ‘ㄷ’자 모양이다. 가로 4m의 나무 강대상은 2m 높이에 위치해 있다.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런던대 뉴칼리지로 진학한 토마스 선교사는 1863년 졸업한 뒤 이곳 예배당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설교도 했다. 그는 그해 런던선교회 소속 선교사로 중국에 파송됐다.

그러나 3년 뒤 성도들은 토마스 선교사가 미지의 땅 조선에서 복음을 전하려다 평양 대동강변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끔찍한 소식을 접한다. 당시 분위기는 교회 벽에 붙어 있는 토마스 선교사 순교패에 잘 나타나 있었다.

‘토마스 선교사는 선교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26세 때인 1866년 두 번째로 코리아를 방문했다가 주민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나의 날이 지나갔고 내 계획, 내 마음의 소원이 다 끊어졌구나(욥 17:11).’ 욥의 고통스런 절규는 토마스 선교사뿐 아니라 하노버교회 성도 모두의 것인 듯했다. 

그러나 슬픔도 잠시, 아버지 토마스 목사와 성도들은 ‘죽어야 사는’ 기독교의 역설적 진리에 공감하며 천국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대했다. 토마스 선교사의 아버지는 1884년까지 이 교회를 맡았다. 순교한 아들을 가슴에 묻고 18년 간 목회한 것이다. 

◇2014년 한국인 목사 청빙 후 활기 되찾아=하노버교회는 안타깝게도 순교정신을 잇지 못했다. 세속화와 종교다원주의, 자유주의 신학 앞에 성도들이 떨어져 나갔다. 2000년대 초반부턴 목회자 부재상황이 벌어졌다. 60~70대 성도 10여명은 10년 넘게 자체 예배를 드렸다. 지난해 1월 영국 개혁교단(URC)으로부터 유재연(56) 목사를 파송 받은 뒤에야 비로소 생기를 되찾고 있다.  

유 목사는 장신대 학부와 신대원을 졸업했으며, 바울선교회 소속으로 2000~2011년 모로코 선교사로 활동했다. 그는 2010년 URC에서 하노버교회 목회자를 청빙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유 목사는 “2004년 안식년 때 1명의 목사가 서너 개 교회를 순회해야 하는 영국교회의 열악한 상황을 목격했다”면서 “역사적인 하노버교회를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금도 웨일즈 지역엔 URC 교회 99개가 있지만 목회자는 21명밖에 없다.  

2014년 기준으로 URC에는 13개 노회, 1472개 교회, 5만800여명의 성도가 등록돼 있다. 전년과 비교해 15개 교회가 문을 닫았고 800여명이 줄었다. 유 목사는 “URC에 소속된 교회는 성도 수가 20명 미만인 곳이 많고 이들 성도는 대부분 70세 이상”이라면서 “교인이 계속 줄어 URC는 문 닫은 교회 건물을 매각해 본부를 운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영국 재복음화 위해 목회자·청년 필요”=유 목사는 URC에 소속돼 있지만 본부 재정 부족으로 사례비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유 목사 부부는 매일 새벽기도를 드린 뒤 심방을 하고 성경공부를 인도한다. 수요예배, 주일 아침·저녁예배를 꼭 드리면서 1년 만에 성도가 30명으로 늘었다. 주요 절기 때 마을 주민들을 초청해 미니 콘서트 등을 개최했다.  

유 목사는 “영국 재복음화에 한국 목회자와 청년들이 꼭 필요하다”면서 “영국 젊은이들은 복음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세대나 마찬가지이고 교인의 자녀들도 99%는 신앙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이슬람교 등 타종교들이 젊은층을 적극 공략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복음전도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복음전파의 열정과 영어실력을 갖춘 목회자라면 URC나 감리교, 침례교, 구세군, 오순절교회 등 현지 교단을 통해 영국선교의 문을 두드려 달라”면서 “영국인들은 특히 찬양을 좋아하는데 한국 젊은이들이 와서 찬양사역을 해준다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목회자들은 면접 후 목사신분을 취득하면 비자가 나오고 자녀교육과 의료 등의 혜택을 무료로 제공받는다.  

유 목사는 “한국교회나 영국교회나 복음의 원초적 능력, 열정만 있다면 부흥하게 돼 있다”면서 “영국교회든 한국교회든 교회를 살리는 힘은 목숨을 건 기도”라고 강조했다.  

매년 1000여명의 한국교회 성도들이 하노버교회를 찾지만 교회 상황은 열악하다. 예배당 옆에 30㎡ 정도의 공간이 있지만 담임목사 사무실, 식당, 친교실 등으로 사용하다 보니 어린이 교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화장실도 남녀 공용이다. 마룻바닥이 썩고 있지만 재정 부족으로 손도 못 대고 있다. 교회 옆에 토마스 선교사가 거주했던 사택도 있지만 교회 운영비 부족으로 오래 전 매각됐다.  

란오버(영국)=글·사진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국민일보, 2015/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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