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건강

멍 때리기

하마사 2014. 10. 29. 11:27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리는 것 같아서 꺼내 보면 전화도 메시지도 없는 때가 있다. 일종의 진동 착각증이다. 스마트폰 사용자의 60%가 하루 평균 30번 이상 액정 화면을 무심코 들여다본다는 통계가 있다. 자는 시간 빼고 6분에 한 번씩 습관적으로 휴대전화를 꺼내 본다는 얘기다. 그만큼 뇌는 항상 촉각을 세우고 '온'(on) 상태가 된다. 정보 검색과 소통의 홍수 속에서 뇌는 냉각수가 바닥나 열이 오른 상태다.

▶뇌에는 휴식할 때 거꾸로 활성화되는 부위가 있다. 전두엽과 측두엽 안쪽 DMN(Default Mode Network)이라고 하는 곳이다. 이 부위는 멍하니 가만히 있을 때 켜지고, 뭔가 일을 시작하면 꺼진다. 그런데 현대인은 1분도 머리를 쉴 시간이 없어 DMN이 항상 꺼져 있단다.

[만물상] '멍 때리기'
▶27일 서울광장에서 '멍 때리기 대회'란 이색 행사가 처음 열렸다. '멍 때리기'는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는다'는 뜻의 은어다. 참가자들은 정오부터 3시간 동안 서로 누가 멍하니 있나 겨뤘다. 평가를 위해 심박수 측정기가 동원됐다. 멍을 잘 때려서 심리적 안정이 취해지면 심박수가 내려갈 것이란 논리다. 우승은 아홉 살 초등학생에게 돌아갔다. 참가 경쟁률 3대1을 뚫고 들어온 어른들은 아이에게 밀렸다. 나이 들면 생각이 많아 멍 때리기가 쉽지 않다는 게 드러난 것이다.

▶때론 멍 때리는 게 병일 수 있다. '결여 간질'이 그렇다. 20~30초 간질 뇌파가 나와 정신을 잃고 멍하니 있는 병이다. 누가 툭 치면 그때에야 정신을 차린다. 수면 무호흡증에 걸려도 낮 시간 집중을 못 하고 멍하니 있게 된다. 만사가 귀찮은 우울증일 때도 아무 생각 없이 있기 쉽다. 뇌졸중 초기 잠시 멍 때리듯 의식을 1~2분 잃곤 한다.

'뇌 세탁(washing)' 이론이 있다. 잠자는 동안 뇌가 그날 들어온 정보를 분석해 요긴한 것은 기억 창고에 저장하고, 쓸데없는 것은 씻어 버린다. 실제로 잠잘 때는 뇌 속 신경 독성 물질이 뇌척수액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입증됐다. '멍 때려라!'는 책을 쓴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신동원 교수는 낮에는 '멍'이 그 역할을 한다고 했다. 참선(參禪)과 명상과 같은 의식적 침잠(沈潛)도 괜찮지만,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좋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놔두는 멍 때림이 효과적이란다. 뉴턴이 사과나무 아래서 멍 때리던 순간 만유인력의 실마리를 발견했다. 때로 멍한 상태는 뇌가 휴면하고 새로운 창조를 준비하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4/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