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역사/한국교회역사탐방

[스크랩] 국내 수도원 탐방 (끝) - 서울 평창동 삼각산 기도처

하마사 2014. 3. 11. 16:14

 

 

국내 수도원 탐방 (끝) - 서울 평창동 삼각산 기도처


언젠가부터 삼각산의 기도소리가 잦아들고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언젠가부터’ 삼각산 능력봉 일대에서 주야로 끊이지 않던 기도소리가 현저히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삼각산’은 북한산 국립공원의 주봉이라기 보다 개신교 ‘기도의 영산’으로 일반인도 인식하고 있을 정도다. 특히 남북의 긴장과 위기가 고조되고 민족복음화에 대한 열기가 뜨겁던 1970년대를 최고조로 삼각산의 기도소리는 수도 서울의 상징처럼 되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삼각산의 자연적인 기도처에는 ‘기도용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곳에 세워진 밀알기도원, 감람산기도원 등은 연일 계속되는 집회로 발 들여 놓을 틈조차 없을 정도였다.

70년대 초에 신학교를 다닌 필자도 복음에의 열정을 안고 삼각산을 찾아 통회기도하고 찬이슬을 맞으며 밤을 지새웠다. 오늘날 한국 교회 지도자 중 삼각산과 인연을 맺지 않았던 분들은 거의 없으리라.

삼각산의 기도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고 목회자와 평신도의 구별이 없었다. 비 오는 여름에는 처연히 비를 맞으며, 매서운 혹한이 몰아치는 겨울에는 모포 한 장을 덮어쓰고 절규하고 몸부림치며 민족의 위기를 가슴에 안고 기도했다. 교회 부흥을 위해 단장의 눈물로 기도하고 개인의 문제를 주님 앞에 내놓고 금식하며 기도했다.

이러한 기도의 성전(聖戰)으로 중요한 고비마다 국가는 위기를 극복했으며, 연합집회를 통해 교회는 전무후무한 대부흥을 이룩할 수 있었다. 무장간첩이 침투했을 때나 일촉즉발의 남북간 무력충돌의 위기도 ‘삼각산의 기도’로 막아냈다. 특히 민족의 자부심을 일깨우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져다준 88년 서울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삼각산의 기도는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가? 언젠가부터 삼각산은 말이 없다. 딱히 언제부터라고 단정할 수 없으나 90년대말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삼각산 출입이 통제되기 시작했다고 이곳 단골 기도꾼들은 증언한다.

그러다가 정부는 북한산에 자연 휴식년제를 도입,2000년 1월1일부터 지금까지 삼각산을 폐쇄함으로써 기도자들의 출입이 제한되고 결과적으로 기도의 발길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훼손된 자연에 휴식을 주고 환경을 회복하겠다는 취지에서 정부는 삼각산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주·야간 보호감시반을 두어 규정을 어기고 기도하는 사례를 적발하여 벌금을 물릴 정도로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산중턱을 넘어선 고급 주택가의 확장으로 안면방해를 해서는 안된다는 또 하나의 이유가 덧붙여져 있지만 삼각산에서의 ‘기도불허’ 이유가 어디 그뿐이겠는가.

궂은 비 내리는 주일 오후. 필자가 삼각산 능력봉을 찾았을 때 마침 등산객들에게 입장료를 받는 매표소는 문이 닫혀 있었다. 주일이고 비까지 내려 그런 것이지만 이날 따라 더욱 인적이 끊겨 삼각산은 말이 없었다. 이따금 이름 모를 산새가 구슬피 울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삼각산은 말이 없는지 통제하는 당국이나 여기에 밀려 산행을 포기하고 있는 ‘기도당번’들 모두 안타까울 뿐이었다. 산정을 향하던 중 그 옛날 가끔 기도하던 낯익은 바위에서 잠시 국가를 위한 중보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삼각산 일대에 30∼40년전에 세워진 몇몇 기도원을 기웃거리며 삼각산의 기도소리에 관심을 갖자 한 기도원의 남자집사가 “특히 올해 들어 발길이 뚝 끊어지네요. 기도하다가 적발되면 벌금 무는 시대가 되었으니….”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민주주의 국가에 아무렴 기도까지 통제하는가? 안면을 방해하는 무분별한 통성기도가 골칫거리일 법하다.

2000년 교회사는 국가마다 위기가 닥칠 때 더욱 기도함으로써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일으켜 왔음을 가르쳐주고 있다. 불과 한 세기를 막 넘어선 한국 교회의 전무후무한 급성장도 기도의 동력으로 가능했다. 지상의 마지막 분단국가로 고난이란 날줄과 시련이란 씨줄로 직조된 연단의 땅 대한민국이 수많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한국 교회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님만이 아시는 은밀한 골방과 토굴, 암혈에서 그리고 수도 서울의 삼각산 마루에서….

하나님의 시간으로 지금이 몇 시일까? 이 민족을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본 즉 얼마나 남았을까? 모르긴 해도 지금이야말로 주님께서 한국 교회를 향하여 비상기도 총동원령을 내리고 계시리라. 민족과 교회의 위기를 알려주는 삼각산의 침묵을 깨워야 할 때다.



*. 민족의 위기와 기도용사

성도들은 개인이나 가정, 그리고 국가와 민족이 위기에 직면할 때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기도로 이것을 극복한다. 성경의 사건을 통해서나 교회사에 나타난 사례를 통해 우리는 그것을 배울 수 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서 뒤쫓아 온 바로의 군대로 말미암아 진퇴양난의 지경이 되었을 때 지도자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함으로써(출14:15) 민족의 위기를 극복했다.

아하수에로왕 시대에 하만의 음모로 유대인이 멸절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자 왕비 에스더는 금식기도를 통해 동족을 구원했다(스6:16,7:10).

유다 4대왕 여호사밧은 요단 동쪽의 이방족속 연합군인 모압과 암몬 자손이 막강한 군사력으로 침략해 올 때 백성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옷을 찢으며 기도함으로 적군을 물리쳤다(대하 20:1∼23).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인 존 낙스는 부패한 가톨릭 교황권으로부터 조국을 구하고 복음화하기 위해 ‘스코틀랜드가 아니면 죽음을 주옵소서’하고 목숨건 기도를 드렸다.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은 1861년 시작된 남북전쟁을 끊임없는 비상기도로 마침내 승리하여 노예해방의 숙원을 이루었다. 한 번은 부관이 “대통령 각하! 하나님은 우리 북군 편입니다”라고 보고하자 링컨은 다음과 같은 의미있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오직 나의 염려는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 하는 것일세.”

링컨은 전쟁의 와중에서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1863년 4월30일 ‘국가금식기도일’을 선포하고 온 국민에게 함께 금식하며 기도할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일제 치하에서 광복된 것을 감사하며 이승만 대통령이 기도로 제헌국회를 개원한 역사적 사실이 있다.

이처럼 하나님은 시대마다 기도의 용사들을 세우시고 국가와 민족을 경영하신다. 지금 우리나라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비상하게 기도의 불씨를 모아야 할 절체절명의 시기를 맞았다.


※그동안 주요 수도원(기도원) 답사를 통해 ‘세속화 시대의 영성 강화’를 호소한 본 연재를 애정어린 마음으로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신 전국의 목회자와 성도, 그리고 신학생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글. 김성영 / 정리. J>

출처 : 예.아 -YEAH- 그 환한 빛
글쓴이 : yeahjigi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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