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크로싱'(2008년)은 결핵에 걸린 아내의 약을 구하려고 두만강을 넘은 아버지, 그리고 북한에 남겨진 어머니와 열한 살 아들 준이의 이야기다. 중국에 간 아버지는 소식이 끊기고 병든 엄마마저 죽자 준이는 고아가 된다. 중국 공안에 쫓기다 한국까지 온 아버지는 브로커를 통해 아들을 데려오려 안간힘을 쓴다. 준이는 탈북에 성공하지만 8000㎞ 떨어진 중국·몽골 국경까지 가야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준이는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아버지와 상봉할 장소를 코앞에 두고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 죽는다. 준이가 어렵게 토해낸 마지막 한마디는 "엄마 아빠"였다. 영화는 탈북자 유상준씨의 실화를 토대로 만들었다. 유씨의 아들은 2001년 아버지를 따라 탈북했다가 몽골 국경지대에서 탈진해 숨졌다. 준이처럼 탈북 길에 부모를 잃거나 3국을 떠도는 어린이가 2000명쯤이라고 한다. 탈북 여성과 중국 남성 사이에 태어난 무국적 어린이는 2만명을 넘는다.
▶중국을 떠도는 탈북 어린이들은 보살핌을 받기는커녕 돈벌이에 동원되기 일쑤다. 어떤 중국인들은 고아나 다름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있으면서 탈북자 지원단체에 돈을 요구한다. 여자 어린이들은 성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북으로 송환 당할까 겁이나 숨어 살다시피 하다 보니 가장 기본적인 교육·의료 혜택도 누리지 못한다. 북에서 버림받고 남에서도 외면받은 아이들이 낯선 땅에서 '국제 미아'가 돼 지금도 헐벗고 굶주리고 스러져 가고 있다.
▶미국 의회가 탈북 어린이들의 보호와 가족 상봉, 입양을 미국 정부가 지원하도록 하는 '탈북어린이복지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탈북 어린이들의 실태와 보호, 입양 전략을 보고서로 만들어 의회에 내야 한다. 우리 국회가 9년 동안 '북한인권법' 하나 처리하지 못하는 사이 미국은 2004년 북한인권법에 이어 탈북어린이법까지 만들었다. 버림받은 아이들을 오랜 세월 미국에 입양시켰던 한국이 우리의 또 다른 미래인 탈북 어린이들의 뒷바라지까지 미국에 맡기고 말 건가.
-조선일보 만물상, 20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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