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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5번째로 PGA 투어 우승한 재미교포 존 허

하마사 2012. 2. 28. 21:51

 

허시카고 단칸방의 '父子 약속' 10년 만에 지키다

한국계 5번째로 PGA 투어 우승한 재미교포 존 허
소년, 가난을 스승으로 - 새벽 5시에 골프장 아르바이트, 전철·버스 갈아타고 연습장에
날 키운 건 한국서 배운 기본기 - 정확한 드라이버 샷 비결은 한국 골프장의 OB 말뚝

 
27일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마야코바 클래식에서 우승한 재미 교포 존 허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는 3년 전만 해도 서울 미아리에 있는 어머니 친구 집에 머물며 경기도 분당까지 골프백을 메고 2시간 동안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연습장에 다녔다.그래도 꿈이던 프로 골퍼의 삶을 고국에서 시작한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그는 주변의 시선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재미 교포인 그는 어릴 적 골프 천국이라는 미국에서 연습장 볼을 몰래 주워 치다가 쫓겨나기도 했다.

27일 멕시코의 휴양지 리비에라 마야의 엘 카멜레온 골프장에서 끝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마야코바 클래식에서 투어 데뷔 5번째 대회 만에 우승한 재미 교포 존 허(22·한국명 허찬수)는 "PGA 투어에서 뛰는 게 꿈이었는데 우승까지 하다니, 이 기쁨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하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존 허는 대회 4라운드에서 8타를 줄이는 맹타를 휘둘러 연장전에 들어간 데 이어, 호주의 유명 골퍼 로버트 앨런비(41)와 무려 연장 8차전까지 가는 대접전을 벌인 끝에 승리를 거뒀다.

존 허는 최경주·양용은·앤서니 김·나상욱에 이어 한국(계) 선수로는 다섯 번째로 PGA 투어를 제패한 선수가 됐다. 우승 상금 66만6000달러(약 7억5000만원)를 받은 존 허는 시즌 상금 104만7132달러로 상금 랭킹 9위까지 오르며 유력한 신인왕 후보가 됐다.

작년 한국프로골프투어에서 상금 순위 14위(1억3400만원)를 기록했던 존 허는 "미국 투어에서 잘할 수 있는 건 한국에서 프로의 기본을 잘 배운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처음엔 익숙하지 않은 선후배 위계질서 때문에 힘들었다"면서도 "따뜻하게 대해주신 분들께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주특기인 정확한 드라이버 샷이 OB(아웃오브바운즈) 말뚝이 많은 한국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덕분이라고도 했다. 2010년 국내에서 열린 신한동해오픈에서 우상이던 최경주를 꺾고 처음 우승하면서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존 허다.

스물두 살 청년 존 허가 꿈을 이뤄가는 과정은 가난에 쫓기며 가족과 함께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고단한 여정이었다. 1990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존 허는 두 살 때 한국으로 와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12세 때 다시 미국 시카고로 떠났다. 그때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사는 생활이 시작됐다. 아버지는 막노동, 어머니는 식당일을 해야 했다. 그래도 골퍼가 되겠다는 존 허의 꿈을 꺾지는 않았다. 그의 형도 의류 장사를 하며 동생을 도왔다.

아버지 허옥식(60)씨는 "애가 열네 살 때 시카고 청소년 대회 우승자 자격으로 참가한 일본 국제대회에서 우승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했다"며 "아들을 위해 골프 환경이 좋은 캘리포니아 지역으로 이사했다"고 말했다. 존 허는 새벽 5시면 일어나 로스앤젤레스 인근 골프장에서 공을 줍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연습을 했다.

존 허(왼쪽)는 2009년부터 3년간 한국프로골프투어(KGT)에서 뛴 경험 덕분에 미국 무대에서도 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2010년 신한동해오픈에서 우승하던 당시 존허와 캐디를 맡고 있던 아버지 허옥식씨. /KGT 제공

대학 진학을 포기한 존 허는 2009년 한국프로골프투어(KGT) 외국인 퀄리파잉스쿨을 통해 프로가 됐다. 한 푼이라도 아끼겠다는 생각에 아들의 캐디를 맡았던 아버지 허씨는 2009년 삼성베네스트오픈 때 너무 힘이 들어 카트를 타고 이동하는 규정 위반을 해 아들이 벌타를 받게 되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아버지 허씨는 "다른 선수들이 고기를 먹을 때 순댓국으로 아들의 허기를 채우게 한 것도 두고두고 가슴에 남는다"고 했다.

존 허는 지난해 말 미 PGA 투어 퀄리파잉스쿨에서는 커트라인인 25위 이내에 들지 못하고 27위를 했다. 하지만 상위 입상자 가운데 2명이 다른 자격으로 투어 카드를 따내면서 존 허에게도 출전권이 돌아왔다. 존 허는 "가난 때문에 누구를 원망해 본 적은 없다"며 "제 골프는 아버지와 어머니, 형의 꿈이 함께 녹아 있는 가장 소중한 재산"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2012/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