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렇게 주변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할 시간도 허락받았습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날아든 한 통의 이메일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이메일이었다. 이메일을 보낸 이는 강영우(68·사진) 박사. 시각장애인으로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 국가장애위원(차관보급)을 지냈던 그가 생애 마지막이 될 이메일을 국민일보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냈다. 그는 부인과 가족, 가까운 사람들, 그리고 세상과 담담하게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강 박사는 이달 초 췌장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지난 10월부터 담석으로 치료를 받긴 했으나 정상을 회복했고, 당시 정밀검사에서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갑자기 발견된 것이다. 그는 이메일에서 “최근 여러 번 검사와 수술, 치료를 받았으나 앞으로 저에게 허락된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이 의료진의 의견”이라면서 “저로 인해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작은 바람”이라고 썼다.
강 박사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참으로 복되고 감사한 한평생을 살아왔다”며 “저의 실명을 통해 하나님은 제가 상상할 수 없는 역사들을 이뤄내셨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두 눈도, 부모도, 누나도 잃은 고아가 됐으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이 자리에 섰고, 실명 때문에 열심히 공부해 하나님의 도구로 살겠다는 생각도 했다는 회상도 했다. 또 실명으로 인해 책도 쓰고, 세상을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인연을 맺었고, 이 인연들로 받은 게 너무 많아 봉사를 결심하게 됐으며,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하는 강연들도 하게 됐다는 소감을 적었다.
그는 “두 눈을 잃고 한평생을 살면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얻게 됐다”면서 “이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는 현실”이라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도 “저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축복받은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여러분으로 인해 저의 삶이 더욱 사랑으로 충만했습니다. 은혜로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 박사의 마지막 이별의 말이었다.
강 박사는 현재 집에서 요양 중이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
-국민일보, 2011/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