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십니까” 바울이 물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그리스도교에서 ‘바울(바오로)은 칼’로 통한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성령의 칼은 하나님(하느님)의 말씀이다”라고 말했다. [성 바오로 수도회 제공] | |
다소에 있는 바울 생가 터의 옛 우물. 순례객들이 생가 터에서 바울의 자취를 더듬고 있다. | |
바울은 이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이렇게 생긴 거리를 걷고, 저렇게 생긴 나무 아래서 쉬었을 것이다. 바울의 집안은 천막을 만들어 팔았다. 지금도 다소에는 염소 가죽을 이용한 천막제조업이 성하다. 바울의 집은 부유한 편이었다. 당시 다소에도 큰 대학이 있었으나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갔다. 정통 유대교 교육을 받기 위함이었다.
바울의 생가 터에서 나왔다. 거리를 걸었다. 생가 터 옆에 공원이 하나 있었다. 공원의 입구에는 터키어로 ‘SAINT PAUL PARKI(성 바울 공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바울과 예수, 그리고 12사도들은 동시대 사람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목격하지 못했다. 그는 예수를 본 적도 없었다. 그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됐을까.
◆스테파노의 죽음과 바울=예수가 죽은 지 2년쯤 지나서였다. 예루살렘에 있던 바울은 예수의 가르침을 좇던 스테파노(스데반)의 죽음을 목격했다.
스테파노는 유대 법정에서 “예루살렘 성전 예배는 우상 숭배에 지나지 않는다”며 유대교의 율법을 정면으로 비판하다가 성밖으로 끌려나가 돌에 맞아 죽었다. 바울은 그 현장을 지켜봤다. 스테파노는 사람들이 돌로 칠 때도 무릎을 꿇고 “주님, 제 영혼을 받아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지우지 말아주십시오”라고 간청했다. 그건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 저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모릅니다.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했던 예수의 목청과도 통했다.
스테파노의 죽음은 바울에게 무엇이었을까. 바울은 충격을 받았을까, 아니면 분노했을까. 스테파노의 죽음을 통해 바울은 나자렛 사람 예수를 다시 보기 시작했을까. 구원의 통로라고 믿는 유대교 율법을 정면으로 부정하고도 저렇게 당당하고 온화한 죽음을 맞을 수 있다니. 어쩌면 바울에게 그 죽음은 거대한 물음표가 아니었을까.
그 사건 직후 예루살렘에선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가 이어졌다.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 외곽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바울은 그들을 쫓았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남녀를 가리지 않고 그리스도인을 잡아서 감옥에 처넣었다. 바울은 다마스커스(현재 시리아 영토)까지 쫓아갔다. 거기서 바울은 말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사울(바울의 유대식 이름)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바울은 그 목청을 향해 물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러자 음성이 들렸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다소의 거리를 걸으며 그 순간을 묵상했다. 그랬다. 그건 바울의 율법, 바울의 신념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종교의 율법과 계율은 늘 방편이다. 그걸 너무 세게 움켜쥐면 이념이 되고 만다. 율법이 이념이 될 때 신앙은 박제가 된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하늘의 음성을 통해 바울에게 던져진 물음은 ‘예수냐, 율법이냐’였다. 그건 갈림길이었다. 숨 쉬는 생명이 될 건가, 아니면 율법의 박제가 될 건가.
다소의 거리에 바람이 불었다. 그랬다. 우리의 눈도 마찬가지다. 생명에 눈 멀고, 진리에 눈 멀 때 우리의 눈도 비늘에 덮인다. 그러니 예수를 박해하는 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지지고 볶는 일상에서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예수를 박해한다. 예수의 가르침에 눈을 감고, 예수의 이웃에게서 고개를 돌리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예수는 묻는다. “○○야, ○○야,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우리는 바울처럼 묻는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때마다 우리의 가족, 우리의 친구, 우리의 이웃이 그 답을 대신 한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예수를 박해하는 순간은 로마 시대만이 아니었다. 종교가 세상의 권력이 됐던 중세 때만도 아니었다. ‘아버지의 뜻’을 외면하고 ‘나의 뜻’을 고집하는 그 모든 순간이 예수를 박해하는 순간이다. 그러니 우리는 매 순간 물을 뿐이다. “나는 지금 예수를 외면하고 있진 않나. 나는 지금 예수를 박해하고 있진 않나.” 그걸 묻고, 또 물을 뿐이다.
바울은 그렇게 회심했다. 그리고 내달렸다. 바울은 전도 여정에서 유대인들에게 다섯 차례나 몰매를 맞았고, 돌에 맞아 죽을 뻔했고, 파선도 세 번이나 당했다. 밤과 낮, 하루를 꼬박 바다에서 둥둥 떠다니며 표류한 적도 있었다. 바울은 결국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인 박해 때 로마에서 죽임을 당했다.
버스에 앉아 바울의 생가를 바라봤다. 다시 눈을 감았다. 무엇이었을까. 목숨을 걸고 바울이 전하고자 했던 건 진정 무엇이었을까. 빗방울이 차창을 때렸다. 순례객의 가슴도 때렸다. 그랬다. 그건 종교의 틀, 종교의 껍질이 아니었다. 율법도 아니고, 제도도 아니고. 교회의 벽돌도 아니었다. 그건 생명이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산다”(갈라디아서 2장20절)고 바울이 고백했던 영원한 생명이었다. 버스는 다소를 떠났다. 그러나 우리의 순례는 끝나지 않았다.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살 때까지 말이다. 거기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다소(터키)=글·사진 백성호 기자
-중앙일보, 201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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