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용사들, 국민 가슴에 잠들다] 해참총장 "이젠 슬픔을 딛고 일어나, 다시 바다로 나아갈 것…"
"못 다 이룬 꿈그곳에서나마…" 어제까지 70만명 분향소 조문
천안함 46용사(勇士) 영결식이 엄수된 29일 오전 10시 전국에 울려퍼진 사이렌 소리가 국민의 마음을 울렸다. 분향소를 찾거나 가정과 사무실에서 TV를 통해 용사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일상을 멈추고 고개 숙여 묵념하며 고통 속에 스러져 간 젊은 영혼들을 기렸다.
'청춘의 아름다운 날개를 바다에 묻고 떠난 그대여, 못다한 이승의 날갯짓을 가시는 그곳에서 활짝 펼 수 있기를….'
서울광장 합동분향소에는 이날도 검은색 정장을 맞춰 입고 온 직장인, 머리가 허연 노부부, 엄마 손을 잡은 초등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하얀 국화꽃 한 송이를 가슴에 모아들고 영정 앞에 선 시민들은 용사들의 영정을 차마 바라보지 못했다.
- ▲ 29일 오전 경기도 평택 2함대사령부 안보공원 합동 영결식장에‘고(故) 천안함 46용사’의 이름이 새겨진 근조 플래카드 앞쪽으로 이들의 영정과 위패가 나란히 모셔져 있다. / 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사회자가 나직이 말했다. "고(故) 천안함 마흔여섯 용사들에게 경례. 일동 묵념…. 소중한 목숨을 바치신 용사들이여! 대한민국은 당신들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호국 전사여! 서해 바다에서의 아픔과 슬픔 모두 잊으시고 이제 편히 잠드소서."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쏟아내는 참전 용사, 원통함에 가슴을 치는 할머니…. 그렁그렁한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하늘을 바라보며 울음을 참던 해군 출신 30대 직장인은 상주(喪主) 노릇하는 젊은 수병의 거수경례를 받고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아내와 함께 분향소를 찾은 이창용(68·서울 구로5동)씨는 "천안함 용사들의 희생을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한다"면서 "이런 일을 겪고도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아 제2, 제3의 천안함 사태가 발생한다면 그건 나라도 아니다"라고 했다.
분향을 마친 주부 김현주(47·서울 진관동)씨는 "46명의 실종자 중 한두 명이라도 살아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완전한 절망으로 바뀔 때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며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 국가가 존재 이유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들도 젊은 넋을 추모했다. 프랑스에서 온 알렉산드르 피비리(Pibiri·28)씨는 "통일이 돼서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서 28일에는 압둘라만 알 타니(Thani) 카타르 도시계획부 장관이 조문했다.
"너무 춥고 무서우셨죠. 죄송합니다. 이제는 편히 쉬세요." "우리 아들들, 아름다운 곳에서 편히 쉬도록 해. 사랑한다. 그리고 미안하다." "영원히 잊지 못할 형제들이여, 고이 가소서. 평안하소서." 눈물 범벅이 되어 분향소를 떠나는 시민들은 우리의 형·오빠와 아들, 형제의 영면(永眠)을 간절히 바랐다.
이날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8000여명이 분향소를 찾았다. 25일부터는 모두 4만4000여명이 조문했다. 국방부는 이날까지 70여만명이 전국 52곳 시민분향소와 92곳 군부대 분향소를 찾아 조문한 것으로 집계했다.
경기도 평택 2함대사령부에서 영결식이 시작된 오전 10시 서해 백령도 연화리 해안에서는 육·해·공군 장병과 백령도 주민 등 400여명이 46용사를 위한 진혼제를 열었다.
인터넷 공간의 추모 열기도 뜨거웠다. 해군 홈페이지의 천안함 사이버 분향소에는 이날 하루 5800여명 등 지금까지 6만9500여명이 다녀갔다. '저 하늘 별이 되어…, 그들의 희생은 더욱 빛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내 전우들. 대한민국 최고의 용사들이여'(김택진) '천안함은 살아있습니다. 조국 수호를 위해 끝없는 항해를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필승!'(윤정문) 등 추모의 글도 8500여개가 달렸다. 안승태씨는 싸이월드 추모게시판에 "해군 부사관 228기 1차에 합격했습니다. 바다를 저희에게 맡겨주세요. 필승!"이라고 썼다.
네이버와 다음의 추모 게시판에는 이날 오후 9시 현재 각각 10만4000여개와 1만4300여개의 추모글이 올랐다. 아이디가 '행복'인 네티즌은 "못다 핀 3월의 꽃이여, 그대들은 정녕 영웅입니다. 이제는 편안히 쉬소서…"라는 글을 남겼다.
-조선일보, 20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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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한포기·물 한방울이라도 건드리는 자, 용서않겠다
"그동안 응징안해 '도발 허가증' 내준 꼴"
원로·전문가 '군사적 대처' 필요성 제기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은 29일 천안함 46용사 합동영결식에서 “사랑하는 우리 조국, 아름다운 우리나라, 소중한 우리 바다를 그 누구도 해치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며,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물 한 방울이라도 건드리는 자, 우리의 바다를 넘보는 자 그 누구도 용서치 않겠다”고 강조했다.
우리 군과 외교안보 분야의 원로와 전문가 중에도 이렇게 결연한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북한의 소행이란 점이 어느 정도 드러난 만큼 철저하게 응징하고 국가안보태세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발하면 대가 치러야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를 지낸 이동복 전 의원은 "북한이 대남 무력도발을 계속하는 것은 그동안 도발에 상응하는 응징을 하지 않아 사실상 '도발허가증'을 우리가 내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엔헌장에 기초한 군사적 보복 등 자위권 행사, 남북관계 전면 동결 등을 통해 무모한 도발에는 그 이상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걸 반드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 29일 오전 경기도 평택 2함대사령부 안보공원 합동 영결식장에‘고(故) 천안함
46용사’의 이름이 새겨진 근조 플래카드 앞쪽으로 이들의 영정과 위패가 나란히
모셔져 있다. /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외교안보 분야의 원로와 전문가들 중엔 군사적 대응을 포함한 '단호한 대처' 필요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김석우 전 통일원 차관은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도발이나 테러에 대해서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한다는 국민적 컨센서스를 모아야 한다"고 했다. 김장수 전 국방부 장관(한나라당 의원)도 "제한적 타격을 통해 추가적인 도발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희상 전 청와대 국방보좌관은 "지난 10년(김대중·노무현 정부)을 거치면서 북한문제의 경우 적당히 넘어가면 된다는 식의 비겁한 분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며 "북한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오면 바로 포격하고 도끼만행사건 때처럼 군사 양동작전을 펼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그러나 군사적 대응의 한계를 감안해, 국제사회를 통한 압력 등의 방안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은 "국민적 분노를 감안하면 당장이라도 북한 잠수함 기지를 폭파해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오는 11월 G20 정상회의 등을 감안해 유엔, 미국·중국과의 협력을 통한 대북제재 방안을 이끌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민주당 의원)은 "감정의 과잉은 경계해야 한다. 북한 소행으로 밝혀져 국지적 무력보복을 하려면 한미동맹과 중국의 묵인 등 정지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무진 경남대 교수는 "국제사회가 동의할 만큼의 객관적 증거를 찾는 게 중요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가 확실하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안보태세 재정비 시급
우리나라 위기대응 체제의 총체적인 보완과 안보의식 고취 등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어뢰 한 발에 나라가 이렇게 흔들리는 것을 보고 너무 걱정스러웠다"고 했고, 이종찬 전 원장은 "이번 사태를 보면서 안보태세가 '무방비에 가깝지 않나' 할 정도로 위기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제성호 외교부 인권대사(중앙대 교수)는 "지난 10년의 안보 불감증과 낭만적 대북관을 바로잡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서해 해상안보태세의 취약성을 보완할 수 있게 전반적인 육해공 대비 태세를 재점검하고 전시작전권 전환 문제도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민순 전 장관은 "안보능력, 사회 응집력, 군 기강 등 국가안보를 떠받치는 기둥이 모두 흔들리는 상황"이라며 "미국이 9·11 테러 이후 여야 동수 추천으로 전문가 위원회를 만들었듯이 우리도 중립적이고 권위 있는 위원회를 만들어 안보체계를 총점검할 것"을 제안했다.
대북정책 기조의 재정립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과거 정부보다 강경하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어정쩡했다. 정부는 강하게 가고, 민간단체를 통한 지원은 허용하는 투 트랙 전략이 유효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20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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