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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력 있는 설교의 방법

하마사 2010. 2. 18. 09:54

 

설득력 있는 설교의 방법
  
<법칙1> 심리적 측면을 정복하라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_ 리 아이어코카

설교 못하는 사람들의 공통점

중요한 건 알지만 따로 노력하지 않는다
설교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다 설교 전달의 중요성을 인정하기 마련이다.
설교의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설교의 내용보다는
전달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하지만 설교를 하고나면 언제나 자신의 설교전달에 만족하지 못한 채 고개를 떨구기 마련이다.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함을 절감하면서도
대개 다음과 같은 변명을 늘어놓으며 바쁜 목회사역에 쫓겨 세월을 흘려보낸다.

“난 역시 설교에 은사가 없어!”

“지금까지 매넌 그렇게 설교해왔는데, 새롭게 할 필요가 있을까?”
“별다른 돌파구나 비법이 어디 있다고!”
“설교의 내용만 괜찮으면 됐지, 전달이 좀 부족하면 어때!”

어디서 한번쯤 들어본 소리 같지 않은가?

확실한 안전을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해보지 않은 일은 절대 시도하지 않는 것이다. _매그너스 파이크

똑똑한 것과 설교를 잘하는 것의 차이를 모른다
수년간의 목회와 교수생활을 통해서 필자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이 신학교만 졸업하면 설교를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신학교 졸업장이 탁월한 설교를 절대 보장하지 않는다.
신학교를 다니고 졸업해서 전도사 강도사 목사란 직책이 주어지니 설교를 하게 되는 것이지,
설교할 수 있는 능력을 테스트해본 후 설교할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아닌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신대원에서 목회학 석사 과정을 졸업한 사람이라면
다 기본은 갖춘 사람들이며 소위 똑똑한 축에 속하는 재목들이다.
하지만 똑똑하고 아는 것이 많다고 설교 잘할 수 있음을 보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정규 과정을 다 마치고 목회에 대한 기본 소양을 다 갖추고 심지어 똑똑함까지
갖췄다는 것과 설교 잘함은 전혀 별개의 문제일 수가 있다.

쉬운 말도 어렵게 한다

그럼에도 설교자들은 종종 자신들을 대단한 말장이로 생각한다.
목사들은 평신도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교리나 신학용어 사용 및
복잡하고 어려운 설교원고 만드는 일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전문적인 것이 사실이다.
“원어적으로나 성경해석학적으로 본문을 살펴보자면..
” 이런 식으로 신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처럼 보임에 적격인 사람들이다.
꼭 신학자나 목사티를 낸다고나 할까?

배움을 통해 얻는 유일한 결실은
얼마나 더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깨달음뿐이다. _마셀드 몽테뉴

설교자들이 가장 넘기 어려운 장애물은
자신들의 설교가 형편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많은 설교자들이 강단에서 청중들을 향해 유식한 설교를 외쳐대지만,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쉬운 말도 좀 학적으로 있어보이게 설교하는 설교자는
말하는 법부터 제대로 배워야 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설교자들이 있다.
어떤 설교자는 비디오로 녹화된 자신의 설교를 보면서 엉성하고 옹색한 말솜씨에 충격을 받는다.

그 민망함과 당혹함이란!
어떤 설교자는 차마 눈뜨고 못봐줄 자신의 설교를 보고서도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는 한술 더 떠서 이렇게 말한다. “음, 그런대로 괜찮군.
그런데 넥타이 색깔과 양복 색깔이 잘 안 어울려.
다음에는 조화가 잘되는 넥타이를 매어야겠군.”

멋진 타이와 정장, 말쑥한 외모가 설교자의 전달 능력을 향상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신학교 설교학 교수조차도 옷차림에 신경쓰라는 정도 이상은 가르치고
지적해주는 부분이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두서없는 설교를 듣느라 벙벙하거나 졸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음에도
유독 설교자 자신만 그걸 못보는 것일까?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렇듯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을 하는 이유는 몇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정말 강력한 설교전달을 한번도 본 적이 없어 비교할 만한 기준 자체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는 그저 그런 다른 사람들의 설교와 자신의 것을 비교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자신의 말솜씨가 엉망이라는 사실 자체를 아예 인정하려 들지 않는 성향이거나,
자신의 설교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설교자에게 있어서 가장 큰 자존심에 관한 부분이 바로 설교이기 때문이어서 그럴 것이다.

시도하지 않는 사람만이 실수도 없다. _요제프 콘래드

설교를 잘하기 위해 밟아야 할 단계

그렇다면 설교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과정을 밟아야 하는가?
첫 번째 단계는 자만심을 버리고
자신의 설교 전달에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자신의 설교 전달 능력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정직한 평가와 분석을 구하고,
거기에서 나온 의견들을 받아들여 고쳐나감이 필요하다.
또 자신의 설교 비디오를 직접 보고 비판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강력하고 효과적인 설교를 행하는 설교자처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설득에 능력있는 기술은
학습과 꾸준한 연습을 통해 갈고 닦아야 획득할 수 있는 노력의 산물이다.
험난하고도 기분 상하는 여정이 될지 모르지만 그 결실은 아주 크다.

목회자에게 있어서 설교보다 더 중요한 자산과 무기는 없다.

아니 설교가 그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정과 파워가 넘치고 설득력 있고 감동적인 설교를 전하기 위해서는
그 비법을 배우고 노력함이 필수적이다.
할 수만 있다면 목회하는 동안 대부분의 청중들에게 큰 영향과 감동을
주는 설교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설교자라는 막중한 사명을 가졌음에도 청중은 물론이요
전하는 자신조차 무슨 말을 전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면 되겠는가?

결코 변화하지 않는 사람만큼 우스꽝스러운 경우는 없다_어거스트 바셀레미

이제 문제는 용기를 내는 것이다.
기존의 잘못된 방식을 깨뜨리고 자신에게 도전하며 기준을 높여 잡는 것,
이것이 첫 번째 단계이다.
자신의 부족한 설교 전달 능력을 적나라하게 노출시켜 드러나는 것을
대수롭잖게 생각할 설교자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해야 한다. 능력있는 설교자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그 일을 우선적으로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  신성욱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