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카네기의 그림

하마사 2009. 9. 6. 14:03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철강왕이며 자선가로 유명한 카네기의 사무실 한쪽 벽에는 아주 낡고 묵은 큰 그림 하나가 걸려 있었다. 그 그림은 유명한 작가의 그림도 아니고 그렇다고 골동품 가치가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그 그림은 카네기와 일생을 같이 한, 그의 좌우명과 같은 그림이었다.
그림의 내용인즉 커다란 나룻배 한 척이 썰물에 좌초되여 모래사장에 아무렇게나 나뒹굴어져 있고, 배를 젓는 노가 힘없이 뱃전에 걸려 있는 모습이었다. 언뜻 보면 아주 절망스럽고 처절하게 까지 보였다. 그런데 그 그림의 밑에는 아주 선명하게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 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카네기에게 그 그림은 아주 인상적이었고 특히 ‘반드시 밀물때가 온다’는구절은 그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던 것이다.
카네기가 젊었을 시절에 한 때 세일즈맨으로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았는데, 어느 노인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 그 집의 대청 마루에 그 그림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늘 그 그림을 생각하며 행상을 하던 카네기는 28살 되던 해에 기어코 그 노인을 다시 찾아 가서 용기를 내어 청을 드렸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 에는 이 그림을 저에게 주시기를 원합니다. 제가 잘 보관하며 그 좌우명을 명심하겠습니다.”
노인은 젊은이의 청이 갸륵하고 마치 자기가 못 이룬 뜻을 그 젊은이가 대를 이어 이루어 줄 듯한 예감이 들어 쾌히 승락을 하였다. 그래서 카네기는 그 그림을 일생 동안 소중하게 보관하였고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는 그 말씀을 생활 신조로 삼았던 것이다.
이후 앤드류 카네기(1835-1919)는 ‘밀물 때’가 올 때를 기다리며 부단한 노력을 계속 하였다. 그는 록펠러같이 부정하게 돈을 모으려 하지 않았고 항상 준비된 자세로 새로운 시대와 미래를 맞이 하였다. 썰물이 다 지나고 어떻게 밀물이 그의 인생에 다가 왔는지 그의 인생 역정을 한번 살펴 보자.
유년시절(1835-1850) - 그는 영국 Scotland의 가난한 베틀집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부모님이나 친척들은 정기 교육은 못 받았어도 교양이 있는 집안이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Robert Burns 나 Shakespeare를 익힐 수 있었다. 1848년 (13세) 에 미국에 이민와서도 그는 스스로 공부를 하였다. 그의 부단한 노력과 인내심과 투철한 능력은 곧 준비된 미래를 달리게 하였다.
자수성가(1850-1960) - 1851년 16세 때 주당 $2.50 전보배달원으로 첫 취직을 했다. 2년후에는 펜실바니아 철도국에 주당 $4.00의 국장 비서관이 되고 이후 급속승진을 하여 철도청장이 되였다. 1855년에는 $600을 투자하는 기업인으로 성장, 장거리 기차 침대간 설치로 성공해 상당한 돈을 벌었다.
남북전쟁(1860-1865) - 전쟁이 터지자 그는 연방군의 미 동부지구 철도청장 및 통신망의 수장으로 진두지휘, 반란군을 격퇴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후 승승장구 하여 1864년에는 4만$을 펜실바니아 유전에 투자해 일년 사이 100만$을 벌어 밀물이 아닌 돈벼락이 떨어진 것이었다.
철강사업(1865-1900) - 전후 철강 사업이 활기를 띄며 수요가 급부상하자 그는 다른 사업체를 전부매각하고 철강업에 전념했다. 이로부터 세계 제일의 철강왕이 되었고 1901년에 그가 U.S. Steel Corp.에 철강재산을 전부 매각하고 자선가의 생애를 살았는데 그 때 매각서에 $480 million 이었다니, 2007년말로 계산하면 약 $120 billion쯤이라고 한다.
자선사업(1901-1915) - 카네기가 쓴 “The Gospel of Wealth”에서 그는 “The rich should use their wealth to help enrich society” 라고 전재산이 자선사업에 쓰여질 것을 선언하였다. 그는 영어권 47개국 3,000도서관에 재산을 헌납하고 수많은 학교와 예술의 전당을 마련하는 데에 기증했다. 그가 죽을 때까지 쓴 돈은 $350,695,653 이었다는데 이는 현재 $4.5billion쯤 된다. 그의 사후 잔액 약 3천만$도 재단, 자선단체, 연금등으로 모두 처분 되었다. 이렇게 카네기는 한 폭의 그림이 주는 밀물의 철학을 확신하며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순리 속에 많은 부(富)를 축적하고 우리 인류에게 그 부를 환원하는 아름다움을 남기고 갔다.

<강신봉 - 전 한인회장/스코필드박사동상 및 추모공원건립 공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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