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본질/교육

영월 산골 학교가 전국 1등 '강남'을 이긴 강원

하마사 2009. 2. 17. 07:52
영월 산골 학교가 전국 1등 '강남'을 이긴 강원
군부대 엘리트 장병 초빙해 英·數수업
 
이인열 기자 yiyul@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작년 9월 강원도 영월읍의 봉래중학교에 부임한 장웅익(51) 교감은 '택시'를 떠올렸다. 옥수수·고추 농가의 자녀들인 전교생(116명)의 62%가 학비도 못 내는 두메산골. 이곳 학생들에게 밤 늦게까지 공부시키려면 택시뿐이었다. 오후 6시면 버스가 끊겼고, 셔틀버스로 산골 구석구석을 돌기엔 역부족이었다.

궁하면 길이 있다던가. 영월군청이 학교 지원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도시로 하나 둘씩 떠나고 있는 주민을 붙잡기 위해 군청은 교육 투자를 아까워하지 않고 있었다.

장 교감은 월 570만원의 군청 지원을 끌어냈다. 덕분에 학생들이 방과 후 더 공부하겠다고 희망만 하면 근처 식당에서 배달되는 저녁식사를 하고, 밤 9시30분까지 교사들과 보충수업을 받은 뒤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장 교감의 생각은 적중했다. 전교생 116명 중 75명이 방과 후 수업을 희망한 것이다.

▲ 밤늦게 방과 후 수업을 마치면 택시로 귀가시켜주는 영월 봉래중학교의 장웅익 교감(가운데)과 학생들. 학업성취도 평가 가 발표된 16일, 체감온도 영하 20도의 매서운 추위도 이들의 미소를 얼어붙게 하지 못했다. 영월=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문제는 강사진이었다. 보조교사를 구하고 싶어도 산골로 오려는 사람을 구할 수 없었다. 11명의 교사들이 밤마다 가르쳐도 한계가 있었다. 그때 떠오른 게 군부대였다.

강원도는 전국 각지의 인재들이 군부대에 몰려 있다. 인근 부대에 찾아가 연대장에게 호소했더니 흔쾌히 도와줬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재학생을 비롯, 사범대 출신 장병 5명이 일주일에 이틀씩 와서 영어·수학을 하루 2시간 집중 지도했다. '장병 교사' 중에는 서울 강남의 학원강사 출신도 있었다.

노력은 보상을 받았다. 16일 교육과학기술부가 처음으로 발표한 초·중·고교 학업 성취도 평가에서 강원 영월의 성적이 전국 최상위권이었다. 초등 국어에서 '보통학력 이상'(교육 목표를 50% 이상 이해한 학생) 비율이 91.4%로 서울 강남(90.8%)을 제치고 전국 1등을 차지한 것이다.

초등 수학과 중등 국어는 각각 전국 5등이었다. 학원도 없는 가난한 농촌 지역의 성과로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장 교감을 비롯한 교사들은 내친 김에 겨울방학도 없앴다. 방학 내내 설 연휴 이틀을 빼고 모든 교사들이 방학을 반납하고 희망 학생들을 상대로 수업에 매달렸다.

봉래중학교는 올해 100% 고교 진학률에다 경기도 특목고(양서고)에 진학한 학생도 나왔다.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김서윤(16·여)양이었다. 서윤양은 책을 손에서 떼지 않는 도서관의 터줏대감으로 유명했다. 지난해 12월 강원도 학력 평가에선 1학년 박영빈(14)군과 2학년 정현정(15)양이 전 과목 만점으로 도(道) 전체 수석을 했다.

영월군만 그런 게 아니다. 교과부의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초등 국어의 경우 보통학력 이상 비율 상위 20위권 지역 중 강원이 절반에 가까운 9개를 차지했다. 초등 수학에선 강원 양구가 서울 강남에 간발의 차로 뒤져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강원도가 인구 감소를 막자며 교육에 집중 투자를 한 것이 주효했다.

여기에 열악한 교육 인프라를 탓하지 않고 열정으로 학생들의 잠재력 키우기에 나선 교사들이 있었다. 장웅익 교감은 "최상위권 영재 밀어주기 경쟁은 우리 같은 시골이 버거울지 몰라도 중하위권을 포함한 전체 학생들의 잠재력을 키워주는 교육이라면 자신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009/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