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가정

아버지 속 썩이다 예술가의 길로

하마사 2008. 5. 19. 09:17
[Why][왜 그는] '탱크주의' 배순훈 前대우전자 회장의 아들 배정완씨
"아버지 속 썩이다 예술가의 길로"

 

경주 보문단지 내 '아트선재미술관'에서 독특한 젊은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MIT 공대를 졸업하고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은 연세대 공대 겸임교수 배정완(34)이다.

이 작가는 화려한 이력 못지않게 가족 배경이 독특하다. 아버지는 대우전자 회장과 정보통신부장관을 지낸 배순훈(65) 카이스트 부총장이다. 어머니는 서양화가 신수희(64)씨다. 이모는 유명 피아니스트 신수정(66)씨다.


 

 

▲ 아버지 배순훈(왼쪽) 카이스트 부총장, 조카와 함께 있는 작가 배정완씨. 배씨는 "지금까지 한번도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신 적이 없는 부모님께 감사한다"고 했다. / 배경완씨 제공
배순훈 부총장은 1990년 대우전자 사장 시절 광고에 직접 출연해 '탱크'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그런 아버지가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오히려 제가 문제아여서 아버지가 부담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고1 때 학교에 다니기 싫어 외국으로 보내달라고 떼를 썼다. 부모가 '안 된다'고 강경하게 나왔지만 그는 학교에 안 가는 '시위'를 벌인 끝에 1년 만에 '탱크'의 고집을 꺾고 미국 유학 길에 올랐다.

그 뒤 남들이 부러워하는 명문대 MIT 공대에 입학했지만 예술가 기질 다분한 둘째 아들의 '방랑'은 멈추지 않았다. 전공으로 선택한 건축에 재미를 붙여 밤새워 집 만들기를 하더니 졸업 후 갑자기 '건축을 때려치워야겠다'며 샌프란시스코로가 식당 요리보조원이 된 것이다. 그가 본업인 건축으로 되돌아온 것은 한 일식당 주방장의 조언 때문이었다.

"어느 날 그 주방장이 저를 앉혀놓고 몇 시간 이야기를 하더니 '너는 건축을 참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은데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느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시 돌아가 건축을 하라는 겁니다. 그때 '띵' 하는 충격이 오면서 '아, 내가 할 일은 건축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주 전시관은 방 5개를 천천히 걸으며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전시 제목 '메리에게는 양 한 마리가 있다네(Mary Had a Little Lamb)'는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했을 때 처음 녹음한 노래 제목과 같다.

에디슨의 육성, 과거의 기억을 얘기하는 배우 고현정의 내레이션,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백조의 호수' 음악, 그 음악에 맞춰 추는 듯한 전통무용의 영상이 사방에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강릉에 있는 참소리 박물관에서 희귀한 골동 축음기 26개를 빌려와 오브제(설치작품 재료)로 썼다.

그는 "영화처럼 만들고 싶었다"며 "한 여성이 다락방에서 옛날 물건을 뒤지면서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이야기로 극(劇)을 쓰고, 각 장면을 미술로 풀어냈다"고 했다. 그는 "건축만으로 부족한 게 바로 이런 내러티브(narrative)"라고 했다.

그는 "좋은 집안에 명문대 학벌, 번듯한 외모까지 지녔으면서 뭐가 절실해 작가가 됐느냐"고 묻자 갑자기 기자에게 "아이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두 살 된 아들이 있다고 하자 그가 말했다.

"아이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마세요. 제가 부모님께 가장 감사하는 건 바로 그거예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저에게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신 적이 없어요."

그러면서 그는 몇 년 전 아버지 회갑 잔치 때 자기가 카드에 쓴 글을 이야기했다.
"세 가지 이유에서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첫째 남자로서 순수한 이상을 가지고 거기에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둘째 남편으로서 아내를 존중하고 사랑했습니다. 셋째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조선일보, 입력 : 2008.05.1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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